아침식사로 나오는 팬케익 두장에 달달한 시럽을 뿌려 먹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로비에 앉아있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분명 한국사람 같았다. 한,중,일을 구분하는 촉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였다. 잠시 쇼파에 앉아있다가 밖으로 나자마자 리셉션에 가서 물어보니 역시나 한국사람이었다.
2박 3일 동안 세스림 투어와 스와콥문드 투어를 마치고 오늘 돌아온 그와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지만 꼭 가보고 싶은 레스토랑이 있다했다. 함께 같이 가겠는지 물어봤으나, 위치도 멀었고 가격도 비쌌다.
약 두달간의 일정으로 아프리카를 온 그는 어떠한 시험에서 떨어져서 여행을 떠나왔다하였다. 이번 여행을 기점으로 다시 시험에 도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했다. 그의 말투에 너무나 씁쓸함이 뭍어나와 무슨 시험이었는지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이 곳에 오면서 3000달러를 현찰로 들고왔는데 현금이 너무 많아 부담스러워했다. 그 순간 심바형님이 아르헨티나에 암환율 시장이 존재하니 꼭 달러를 준비해가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에게 수수료없이 구매하면 될 거 같았기에 내일 아침 네이버 고시환율로 800달러를 거래하기로 했다.
한두방울씩 내리던 빗물은 어느 방울이 먼저 수영장 물안으로 뛰어들어가는지 내기라도 하듯 쏟아졌다. 어차피 할 일도 없던 하루였으므로 조용히 책을 읽었다. 하지만 한쪽에 걸려있는 티비에서 세월호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나의 시선을 활자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바로 아버지께 연락하여 그와 거래를 했다. 운이 좋게도 아르헨티나 들어가기 전에 안전하게 달러를 구했다. 그는 아침식사 후 바로 짐바브웨로 떠났다. 빈트훅에서 짐바브웨로 한번에 넘어가는 버스가 없었기에 히치하이킹을 해야하는데 차가 많이 다니는 오전에 일찍 가서 차를 잡을 것이라 했다.
비가 개고 날씨가 깨긋해지니 괜스래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론리플래닛 책을 보니 근처에 박물관이 있어 그 곳을 거점으로 시내 곳곳을 구경하기로 했다.
시내는 그 어느나라보다 깨끗한 도로와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사이사이의 공간은 푸른 녹지로 이뤄진 공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어느날과 다름없이 평온한 날이었다. 귀여운 아이들의 아버지는 우리내 아버지와 다름없이 그네를 밀어주고, 시소를 흔들어주고, 미끄럼틀 밑에서 아이를 받았다.
공원을 끼고 언덕을 올라가니 성당이 하나보였다. 운이 좋아 성당의 종소리를 들었다. 이질적이라고 할만큼 깨끗한 성당을 지나쳐 작은 꽃, 가지들도 지나치니 박물관 앞에 도착했다. 국립박물관 치고는 규모가 상당히 협소했다. 사실 볼 것은 거의 전무하다 표현해도 무리가 아니였다.
숙소로 돌아가니 히로키와 나오미가 일주일동안 우리의 발이 되어줄 소형차 인수를 하러가기 위해 분주했다. 힐튼 호텔 1층에 있는 자그마한 렌탈샵에 가서 모든 돈을 히로키가 계산하고 투어가 끝난 후 한꺼번에 정산하기로 했다.
가끔씩 렌탈한 차를 찾으러가도 없는 경우가 있다하였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함께 마트에 들러 먹을거리를 사고 내일의 출발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2014. 04. 18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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