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빤 침낭과 밀렸던 세탁물들은 뽀송뽀송하게 잘 말라있었다. 잊은게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짐을 쌌다. 어느새 심바형님의 와이프는 누룽지 숭늉과 빵으로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었다. 심바형님, 와이프, 드웬까지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와이프는 집 앞 문까지 청소를 하다말고 나와 배웅을 해주었고, 형님은 슈퍼마켓까지 함께 걸어나가 주었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기로 했는데 나중에 남미에 넘어가서야 보내드렸다. 잘 받았는지 모르겠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 점이 참으로 미안했다.
근처 우체국에서 남은 돈을 환전하려는데 소액권이 없다하였다. 나미비아로 넘어가면 잠비아돈이 가치가 없는 돈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방도가 없었다. 대충 가방에 쑤셔넣고 롱디스턴스 버스터미널에서 인터케이프행 버스에 올라탔다. 리빙스톤에서와 같이 늦게 출발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비싼 버스는 비싼 값을 했다. 출발시간이 땡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한참을 자다가 국경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대에 내렸다. 여권을 들고 서있는데 내 뒤에 서있던 영국남자가 말을 걸었다. 몇 마디를 나누다 그는 한국에서 배가 뒤짚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뉴스를 본지가 한참이 되었기에 잘 모르는 내용이라하니 많은 사람들이 배에 있다며 큰 사건이라했다. '오 마이 갓!'이라 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뭐 큰일이겠어?
내일 가는 숙소는 괜찮은 숙소니 그 곳에서 인터넷으로 확인한다 이야기하고 다시 버스를 타 나미비아 국경을 넘었다.
아침 8시 반, 덩그러니 인터케이프 버스정류장에 내려졌다. 영국인은 카멜레온 백패커스로 간다히길래 이 곳에서부터 헤어졌다. 나는 다르에르살렘에서 추천받은 카드보드박스 백패커스로 가기로 했다.
일단 걸었다. 그러나 이대로는 끝이 없었다.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고 물어보니 위로 올라가라했고, 그 곳에서 만난 현지인은 아래로 내려가라했다. 얼마나 답답하면 내가 택시를 다 타려고 했다. 그런데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무작정 걷다가 현지인에게 다시 물어보니 길을 아주 상세하게 알려줬다. 얼추 맞는 것 같아 따라가보니 제대로 잘못된 길을 가르쳐주었다. 시내한복판에 고립되고 말았다.
근처 인포메이션 센터의 도움 80%와 현지인 몇명의 도움 20%로 겨우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이 곳의 도미토리가격은 130나미비아 달러, 사실 그렇게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허나 이 곳에 군말없이 묵는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이는 나미비아 여행의 특수성과 연관성이 있다. 나미비아 땅이 굉장히 큰데 버스 인프라는 엄청 부실하고 여행자들이 찾아가는 대부분의 곳이 노선 연결이 되어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필수적으로 렌트카가 필요했다. 혼자 렌트카는 금액적으로 큰 부담이기에 결국 그룹을 만들어야하는데, 그 그룹을 만드는 전초기지 같은 곳이 카드보드 백패커스와 카멜레온 백패커스였다.
물론 투어회사를 이용해 투어를 하기도 하지만 스와콥문드, 나미비아 사막만 보는 코스가 약 30만원에 육박했다. 소수민족을 보기 위한 오푸오 투어, 물개 서식지의 케이프크로스, 나미비아의 세렝게티 에토샤까지 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주변 여행자를 탐색하기위해 수영장에 앉아있는데 일본 여자 한명이 보였다. 그는 이미 투어를 다녀왔는데 다리를 다쳐서 돌아왔단다. 조심스럽게 투어 만들 인원이 없는지 물어보니 오늘 아침 8시에 한명의 그룹이 출발했다하였다. 이런... 다시 언제 그룹을 만들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일본 여자 말로는 자기 친구가 7일동안 그룹을 만들지 못하여 그냥 남아공으로 떠나버렸다는 말을 하는 순간 덜컥 겁이났다.
잠시 후 한명의 남자가 또 내려왔다. 일본 여자는 저 남자는 아직 투어를 가지 않았다며 한번 물어보라 하였다. 그에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장발의 그는 나를 좀 경계하는 듯 했다. 허나 내가 계속 일행이 없어서 같이 그룹을 만들어 투어를 가고 싶다 징징거리니 나를 받아주었다. 함께 7일간 나미비아 렌트카 여행의 국민루트 나미비아 사막, 스와콥문드, 케이프크로스, 오푸오, 에토샤를 돌기로했다.
이미 세렝게티를 다녀와서 에토샤는 사실상 나에게 큰 의미가 없는 곳이었지만, 2박 3일 투어보다 훨씬 저렴하고 장시간 안정적으로 여행할 수 있었기에 군말없이 따르기로 했다.
함께 렌터카를 찾는 도중 나름 저렴한 차를 발견하여 보여주니 그와 그의 와이프는 7일에 2500나미비아 달러 차를 구했다. 대단한 실력이었다. 작은 소형차를 빌려 일요일날 떠나기로 결정을 했다.
24 나미비아 달러에 내 팔뚝만한 빵을 마트에서 구입하고는 그늘 밑에 앉아 무심결에 텔레비전을 틀었다. 화면에는 반쯤 잠긴 배가 나왔고, 익숙한 언어가 들렸다. 순간 어제 영국청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오열하는 모습이 나왔으며, 외국인 기자가 중간중간 코멘트를 달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집으로 연락해보니 사태가 심각했다. 멍하게 서서 화면을 바라보니 주변의 사람들이 다가와서 한국인인지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니, 내 어깨를 지그시 잡아주었다.
그렇게 나는 머나먼 타국, 나미비아 빈트훅 카드보드박스 숙소 야외 정원 그늘 밑에서 '세월호 침몰'의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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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세월호의 진실은 꼭 밝혀지길 바라면서,
다시 한번,
'금요일엔 돌아오렴'
2014. 04. 16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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