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했다. 배는 계속 아팠고, 속이 더부룩하니 가스가 가득차있었다. 며칠전부터 소화가 정말 안되었는데 오늘이 절정이었다.
많은 여행객들이 마추피추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버스를 탄다하였는데, 역시나 버스터미널에는 엄청난 인파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5시 30분부터 버스가 운행된다고 하였기에 여유롭게 5시즈음 나갔지만, 우리는 일찍 온편이 전혀 아니었다.
버스는 마추피추 개장시간인 6시보다 15분정도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 아침 6시에 열리자마자, 폭포수가 쏟아지듯이 사람들이 우르르 밀려들어갔다.
차례차례 작은 게이트를 통과하는데 가드가 나를 잡더니 가방을 맡기고 가라하였다. '왜 나만 가방을 맡기냐, 다른 사람들도 다 들고 들어간다'라고 이야기하니, 내 가방은 'Big'이란다. 'Big'과 같이 주관적인 단어가 어디잇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보관가격이 1솔 밖에 하지 않아 별 문제를 삼지 않고 가방을 맡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배낭을 메고 마추피추를 구경하는 것 보다 훨씬 나은 판단이었다. 물론, 안에는 나보다 더 큰 가방을 멘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럼 그렇지, 별다른 기준은 없었던 것이다.
짙은 구름에 둘러싸여있는 마추피추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 여행객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망지기의 집 앞으로 모여들었다. 우리가 자주 보는 마추피추의 사진은 이 곳에서 찍힌만큼 대표적인 사진 스팟이었다.
점점 해가 뜨고 구름이 걷혔다. 점점 온건한 모습을 보여주는 마추피추의 모습은 생각만큼 웅장하지는 않았다. 어찌보면 아기자기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기대가 높은만큼 실망도 컸다.
몬타냐 산으로 바로 올라가는 형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과거 마추피추인들의 삶에 빙의하기 위해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혼자가 되니 나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게되었는지, 배가 심각하게 아파왔다. 방귀는 계속 나오고, 배속에서 천둥치는 소리가 배 밖으로 들렸다. 마추피추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화장실이 어디있는지 물어보니 밖으로 나가야만한다 했다. 그말은 즉, 구경을 다하고 나가서 해결하라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추피추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기에 꾹 참고 구경을 마무리했다.
정말... 마추피추 푸른 잔디밭에서 쌀 뻔했다... 그랬다면 아마, 페루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지 않았을까.
제대로 구경을 못한거는 그렇다치고, 더욱 나를 열받게 만든것은 화장실이 돈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외국에서는 화장실 사용에 돈을 지불하는 경우가 많기에 '화장실에서 돈 받기' 자체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이 비싼 입장료, 무려 6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받아놓고 화장실을 무료로 개방하지 않은점에 대해서 화가난 것이었다. 아니 더럽고 치사했다. 그래도 어떡하겠나. 그냥 싸벌릴 수는 없으니... 돈을 내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개운치는 않았지만, 조금은 배속이 나아지니 그래도 '마추피추'인데 그냥 떠나기는 아쉬웠다. 아침보다 많아진 사람들 틈을 비집고 올라가 망지기의 집에서 전경을 한번더 보고 빠져나왔다.
시간 여유가 있었기에 산길을 걸어 내려왔다. 속은 다시 점점 안좋아졌고, 힘이 붙지 않았다. 한참을 빙빙돌아 아구아스깔리엔테스로 들어올때 지나쳤던 기찻길을 발견하고는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어느정도 걸으니 이제는 배가 꿀렁꿀렁함을 넘어 아프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소화가 될까 싶어 콜라를 하나 사 마셨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거의 기어가다싶이 하여 약 5시간 반이 걸려 버스타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안 싸기 위해 버스에서 엄청난 집중을 하고 시내로 돌아왔다. 배는 고팠지만, 먹기가 겁났다. 콜라를 계속 사마시면서 하루만 머물 싸구려 방에 짐을 풀었다. 호객꾼은 10솔이라하였지만, 15솔이었다. 가뜩이나 배가 아파 죽겠는데 짜증이나서 지랄을 해대니 10솔에 해주었다.
들어가자마자 아픈 배를 쥐어잡고 침대에 쓰러졌는데 누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코파카바나에서 쿠스코로 넘어올때 버스안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아르헨티나인이었다. 배도 아픈데 하도 말을 걸어서 머리까지 아팠다. 몸이 안좋아서 자야겠다 하니 그제서야 입을 다물었다. 오늘 이후로는 다시 만나고 싶지않은 남자였다.
2014. 0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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