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시간. 말이 50시간이지 밥을 7끼를 먹어야하며, 2박을 꼬박 기차에서 보내야하는 상당히 긴시간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기차처럼 즐길 거라도 많은가. 그렇지도 않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지옥같은 기차일 수 있지만 나는 꼭 이 기차를 타고 싶었다. 언제 50시간씩이나 기차가 탈 일이 있으며, 다시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렘으로 돌아와 TAZARA기차를 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아침부터 50시간을 버티기 위해 모든 전자기기를 완벽하게 충전했다. 체크아웃 후 1층 레스토랑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동양인 한명이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머리스타일을 한 그는 대략 100리터는 되보이는 커다란 가방을 한쪽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느낌이 한국인이엇다. 그에게 슬쩍 다가가 물어보니 역시나 한국인이었다. 새로운 인연이 생겨 길을 함께 떠나나 했지만 방향이 달랐다.
하지만 아쉬워할 틈이 없엇다. 곧 타자라 기차를 타러 가야했고, 그 또한 버스를 타고 아와사로 갈 예정이었기에 빠르게 정보를 교환했다. 간단히 메신져를 교환후 금방 헤어졌다. 15분 정도의 시간만에 아프리카 남부여행에 큰 도움이 될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가 레스토랑을 떠나자마자 멀리서 서부의 총잡이 모자를 쓰고 일본 동행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영화에서 볼 법한 미는 여닫이 문이 있었다면 그곳의 분명 잠시나마 모래바람이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참으로 봐도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 모자엿다.
이 곳에서 타자라 스테이션으로 가는 버스가 없었기에 어제 착한 현지인이 알려준 곳까지 걸어가서 달라달라를 타고 이동했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숨 막히는 정체가 이어졌다.
어제 먹었던 1000실링 식사를 하고 싶어 기억을 더듬어 노점상을 찾아갔지만 오늘은 장사를 하지 않는 듯 했다. 일주일에 두번 운행하는 기차 시간에 맞춰 장사하지 않고 뭐하나 싶었다.
간단히 스넥 2개와 물 한병을 구매 후 기차를 기다렸다. 괜히 값이 비싸보여서 조금 구매했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다. 잠비아의 비싼 물가를 대비해서 조금 더 사가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오랜만에 기차여행이라 기대도 됐지만 50시간을 뭐하고 보내지라는 걱정도 들었다. 문득 그냥 비행기를 타고 갈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타자라 기차는 인도의 기차와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인도기차의 슬리핑 칸과 타자라 기차의 1등석을 비교하면 안되겠지만, 기차의 내부는 상당히 깔금했다. 얼핏 2등급 칸을 보니 2등급 칸을 타고 가도 편안한 여행이 될 것 같이 보였다.
4인실로 구성되어있는 1등급 칸은 문을 안쪽에서 걸어잠글 수도 있었으며, 여직원이 왔다갔다 하면서 짐도 지켜주는 것 같았다. 승문원이 지켜준다하여도 짐을 잃어버리면 온전히 내 책임이었기에 귀중한 물건은 가장 안쪽 주머니에 넣어놨다.
우연인지 직원이 일부로 그렇게 해준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동행한 일본인은 같은 객실이었다. 서로의 짐을 지켜주기에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침대의 2층을 사용했고, 침대 1층의 두 자리는 탄자니아인과 잠비아인이 썼다. 탄자니아인은 자신을 교수라 소개했으며, 잠비아인은 엄청나게 큰 짐을 들고 있었기에 누가봐도 보부상이었다.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으니 바깥을 구경하는데 끝도 없는 녹색이었다. 몇 시간을 내다봤지만 울창한 나무는 끊임이 없었다. 변화가 없으니 그렇게 지겨울 수가 없었다. 시간을 떼우려 밥을 먹었지만 몇 시간씩 밥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늘이 어두워지니 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많은 벌레들이 들어와 창문을 더이상 열어놓을 수 없었다.
침대에 올라가 그리 높지 않은 천장을 바라보는 일 말고는 할게 없었다.
2014. 04.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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