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라 기차는 화요일, 금요일 두 번 운행되는데 내가 탄 금요일 기차는 일반 기차였기에 수 없이 많은 정류장에서 정차했다. 창 밖은 지루한 풍경이 이어졌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복도에서 서성이고, 식당에서 사람들 사이에 앉아있었다.
기차가 정차를 할 때마다 동네의 아이들이 기차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의 눈망울에는 항상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신기한 눈빛이 가득했다. 그들에게 타자라 기차는 세상을 연결해주는 물건과도 비슷한 게 아닐까 싶었다.
작고 귀여운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줄게 없는 거지였다.
점심 무렵부터 기차내 식사칸 안으로 뜨거운 햇빛이 쏟아졌기에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위대한 게츠비' 미니북을 꺼내 정신을 집중하고 읽는데 어디선가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같이 탄 토시로의 입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는 끊임없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누워있었는데 전혀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서부 총잡이 모자는 이미 한 쪽 구석에 아무렇게나 내팽게쳐져 있었다.
내 배낭을 뒤져 감기약과 에디오피아에서 구한 말라리아 약을 손에 쥐어주며 그의 상태를 살폈다.
내 주변에 많은 살마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아픔을 겪는 모습에 지쳤다.
말라위에 거의 다 와가기에 그는 이를 악물고 아픈 몸을 버텼다. 이 상황을 본 탄자니아 교수와 잠비아 보부상은 말라리야를 의심했다. 끙끙거리면서 죽어가는 그는 그렇게 아픈 몸을 이끌고도 타자라 기차 중간에 내리지 않았다. 이 기차를 내리면 말라위로 가는 방법을 아는 것도 복잡했을 것이며,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을 것이다. 끝까지 버티고 버틴 그는 말라위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 도시에 도착해서야 타자라 기차에서 내렸다.
나였으면 어쨌을까. 아마 나 또한 버텼을 것이다. 제대로 짐조차 못 싸는 그를 보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반쯤은 정신을 놓은채로 그는 배낭을 메고 떠났다. 그에게 꼭 병원을 가라했지만 갔을지는 모르겠다. 인도에서 아팠던 경험이 떠오르며 그가 꼭 병원에 가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가 내리고 잠시 방안에는 정적이 찾아왔지만 금새 시끄러워졌다. 잠비아 아저씨와 탄자니아 아저씨가 성경에 대한 심각한 토론을 시작했다. 정확한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은 성경책을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아 서로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성경구절에서 찾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둘의 화법은 전혀 달랐다. 잠비아 보부상은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었으며, 탄자니아 아저씨는 목소리부터 높이는 거친 스탈일의 화법을 소유한 자였다. 역시나 승자는 탄자니아 아저씨였다. 약 1시간 동안의 긴 토론 끝에 잠비아 아저씨가 패배를 선언했다. 그 것도 아주 굴욕적인 방법으로 패배를 인정했는데, 탄자니아 아저씨가 자신의 주장에 쐐기를 박는 듯한 문장을 잠비아 아저씨에게 무려 11번이나 큰 소리로 읽으라 시켰다. 정확하게 7번을 따라 읽고 8번째에 잠비아 보부상은 방을 뛰쳐나갔다.
솔직한 말로 타자라 기차 엄청나게 지루했다. 일본인 아저씨가 병원에 갔기를 바라며 혼자 쓸쓸이 저녁을 먹고는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타자라 기차 침대에 누웠다.
2014. 0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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