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느낀거지만 그녀는 아침에 참으로 못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숙소를 옮길 예정이었는데 내가 다 씻고 가방을 싼 후에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깨우기 미안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인기척을 내며 흔들어 깨우니 그제서야 부스스 일어났다.
어제 혼자 돌아다니며 체크한 숙소를 가보니 그 사이에 가격을 다르게 불렀다. 어제 들은 가격보다 가격이 2달러 내려갔다. 흥정을 시도했지만 흔들리지 않는 그였다. 2달러가 싸진게 어딘가, 더 이상 흥정을 하지 않고 그 곳에 짐을 풀기로 했다. 생각보다 비싼 잔지바르 물가를 감안하면 비싼 금액도 아니었다. 도미토리에서 트윈룸으로, 화장실도 방 안에 있었으며, 에어컨은 시원했다. 냉장고가 전혀 시원치 못했다는 것이 한가지 단점이었다.
특별한 수입없이 관광으로 먹고 사는 섬이니 이해는 됐지만, 에디오피아에서 건너온 나에게 잔지바르의 물가는 너무나 참혹했다.
그녀는 곧 바로 스킨스쿠버 강의를 받으러 떠났다. 혼자 덩그러니 있으니 할게 없었다. 점심식사를 할 겸 동네를 산책하기로 했다. 로컬 식당에 가서 짜파티 2장과 감차칩, 꼬치구이를 2개 먹었다. 그나마 여행자 거리에서 떨어져 있었기에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짜파티를 손으로 찢어먹으니 마치 인도에 온 느낌이었다. 괜스래 인도가 다시 가고 싶어졌다.
근처 바다로 나가 시원한 바다를 구경하는데 호객꾼이 다가와 일일 투어를 제안했다. 마침 할게 없었으니 일일 투어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지만, 나는 돈을 내고 일일 투어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 일일투어에 관심을 보이며 여러가지 정보를 뽑아낸 후 그를 잘 타일러 돌려보냈다. 나름 나쁘지 않은 코스를 갖고 있었기에 기억나는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의 일일 코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프레디머큐리 하우스였다. 머물던 올드 시티를 떠나 조금 걸어나가니 다른 느낌의 신시가지가 나왔다. 사람들에게 머큐리하우스를 물어봤지만, 계속 머큐리 카페만 알려줬다. 머큐리 생각가 모습을 바꿔 카페로 운영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혼자 찾기가 귀찮아 머큐리 하우스를 방문하는 것은 포기했다.
현지 시장을 들러 구경을 더 하고 싶었지만 스킨스쿠버 수업을 간 그녀와 함께 오늘은 능위해변을 가기로 했으니 시간을 맞춰 숙소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그 전에, 능위해변행 달라달라를 어디서 타는지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달라달라 스테이션에 가서 가격을 흥정했으나 전혀 흥정이 되지 않았고, 그들의 페이스에 놀아놀수 밖에 없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금액보다 훨씬 비쌌지만 택시보다는 당연히 저렴했다. 일단 알겠다 이야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몸이 늘어져 에어컨 바람을 쐬며 누워있는데 아주 상기된 표정으로 그녀가 들어왔다. 난파선 구경을 하고 왔는데 나의 한쪽 팔을 꼭 붙잡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신나보였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그녀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줬다. 한참을 물속을 헤메었으니 피곤하지는 않은지 물어보니 어제 능위해변을 가기로 약속한거 아니냐며 샤워를 마치고는 바로 출발하자 했다.
스톤타운에서 능위해변까지는 약 40키로미터 정도 되지만 중간중간 사람을 태우고, 내리고 하기에 총 1시간 반정도 걸렸다. 그 안에는 외국인이 우리밖에 없었는데 도로 한복판에서 우리를 콕 집더니 내리라 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전혀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뭔가... 당했다... 라는 느낌이 들었기에 차가 출발하기전 차장을 붙잡고 다시 물어봤지만 이 곳이 능위해변이라 했다. 전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니 그는 직접 버스에서 내려 한 골목길을 알려주고는 쭉 들어가라 했다. 아주 찝찝했지만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시골마을이라 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깡촌이었다. 안으로 들어갈 수록 공기도 좋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좋은 풍경이 펼쳐졌다. 5분여를 걸어갔을까 몇몇의 비키니를 입은 외국인이 보였다. 맞게 온 듯 했고, 곧 넓은 해변이 펼쳐졌다. 오솔길가는 다른 멋진 바다말이다.
많은 호텔들이 줄지어 서 있는 해변을 걷는데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렸다. 한쪽에서 비를 피하며 날을 잘 못 잡고 왔나 했더니 15분만에 비가 그쳤다. 축구하는 아이들과 길을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바다를 즐겼다.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기에 그리 오랜 시간 바다를 즐길 수 없었지만, 조용하고 여유있는 해변이었다.
다시 달라달라를 타고 스톤타운으로 돌아오는데 운전이 참으로 난폭했다. 그녀는 불안에 떨었다. 도로를 보니 나름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사고가 발생할 도로는 아니라며 달랬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잠시 정차했다. 그녀에게 안전한 도로라며 달랜 내 의견이 무색하게 도로 한복판에 차가 뒤집어져있었고 화물들이 와장창창 쏟아져있었다. 다행히도 사람은 다치지 않은 듯 했다. 화물을 치우는 사람들을 한쪽으로 피해 다시 스톤타운으로 내달렸다.
야시장에 가서 꼬치를 집어먹는 도중 다시 압둘라를 만났다. 어제와 다르게 영어발음도 이상하고 눈도 풀린 상태로 말을 제대로 못했다. 약을 한 듯했다. 케냐 모얄레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이 떠오르며 그를 피해야겠따 생각했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누군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뭐지 하고 뒤를 쳐다보는 순간 날아오는 빈병. 다행히도 우리쪽으로 날아오지는 않지만 압둘라 쪽으로 날아가서 압둘라의 머리통이 깨질뻔했다. 방금 죽을 뻔한 놈이 실실 웃었다.
분명 약을 했다.
나는 쫄았다. 아주 심각하게 쫄았다. 몸이 굳었고 손이 떨렸다. 에디오피아 사건이 계속 떠올랐다. 주변을 보니 총을 찬 호텔의 가드가 보였다. 그녀를 데리고 그의 뒤에 숨으니 압둘라가 실실 웃으며 다가왔따. 병을 던진 사람보다 이 놈이 더 무서웠다.
잠시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데 두 무리의 사람들이 서로 병을 던지며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했다. 정말 나의 아프리카 여행은 왜 이 모양 이꼴인지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호텔의 가드는 우리를 지켜줬다. 옆에는 압둘라가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말 그대로 미친 장면이었다.
한 2~3분정도 쉴새없이 병을 던지던 사람들은 갑자기 병 던지기를 멈췄다. 그러고는 한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좆됐다' 이 표현 외에는 설명할 단어가 없다.
무서워서 걱정하는 우리에게 그는 'Sorry'라 말했다. 뭐지. 죽이기 전에 사과를 하는 것인가. 그러더니 싸움을 멈추고 두 무리 사이로 지나가라 했다.
'아.. 죽이기 전에 장난을 치는구나... 악마같은 놈들...'
그러나 가라는데 안 갈 수도 없었다. 미친 듯이 웃는 압둘라와 병을 가방속에 넣은 두 무리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1분간의 정적. 그 시간은 1시간과도 같았다.
우리가 지나가고 골목을 돌아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자 다시 병을 던져 깨지는 소리와 뛰어다니는 소리가 복합적으로 들려왔다. 숙소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조금은 웃기는 장면이었다. 가방을 앞으로 메고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뛰는 모습, 양손에 병을 들고 욕하는 모습, 싸우다가 우리를 보고 길을 내준 모습. 나름 동네에서 벌어진 세력다툼이었겠지만 아주 웃겼다.
기운이 쏙 빠져 일찍 자려는데 그녀는 스킨스쿠버 자격증 공부를 해야만 한다 했다. 자면 죽여버린다고 협박을 하여 어쩔 수 없이 그녀가 공부를 마칠 때까지 일기를 썼다.
2014.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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