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전등을 켰다. 룸메이트가 자고 있었지만 밖에서 들어오는 불빛은 짐을 싸기에 턱없이 모자랐다. '탁'하고 밝아지는 빛에 화를 낼만도 햇지만 그는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도 지금 일어나려 했다면 눈을 비벼댔다.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해주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최대한 빨리 가방을 싸고 다시 불을 껐다.
여자의 방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문을 여러번 두드리니 그재서야 우당탕탕 소리가 났다. 이제야 일어난게 분명했다. 10여분을 기다린 후에 그녀와 함께 페리 선착장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페리 회사마다 페리가격이 다르다 들엇지만 차이가 없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표를 사고 페리에 탑승했다. 야외석에 앉으니 바다 사이로 해가 뜨고 있었다. 기가 막힌 일출이었다. 몇 십분이 흐른 뒤 그 아름다웠던 해는 뜨거운 햇살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위대하며, 아름다운 태양에 대해 애찬했지만 곧 해를 피해 그늘 밑으로 숨어들어갔다. 대단한 이중성이다.
대형화면에서 나오는 기네스북 TV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잔지바르에 도착했다.
재밌게도 탄자니아에서 잔지바르 섬으로 들어갈 때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해야만 했다. 뭐 같은 나라에서 이런 짓거리를 하나 생각할 수 있지만 잔지바르는 탄자니아 본토와 합병이 되었을 뿐, 정치는 따로 한다. 당연히 탄자니아 대통령, 잔지바르 대통령이 따로 있다. 문화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잔지바르 사람들은 탄자니아, 잔지바르에 두번 세금을 낸다 들었는데 확실한지는 모르겠다.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한 후 호객꾼이 달라붙는게 귀찮았다. 몰래 동양인들로 이루어진 그룹투어에 몸을 숨겼다. 한 200여 미터 따라가다가 살짝 그룹을 이탈했는데 그 찰나를 발견하고 두 명의 호객꾼이 우리에게 뛰어왔다. 대충 돌려보내고 나와 그녀는 미리 알아본 만치롯지로 향했다.
꼬불꼬불 길을 걷는데 어디선가 진한 인도의 향기가 느껴졌다. 향기뿐만이 아니었다. 미로처럼 복잡한 길에 아랍, 인도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18세기 인도양 노예무역의 거점지로 사용된 곳이 이 곳, 잔지바르란다. 가슴아픈 역사였다.
만치롯지는 마음에 들었다. 13불에 도미토리였지만 깨끗하고 넓었다. 좀 더 괜찮은 곳이 있을까 싶어 몇 군데를 돌아다녀봤지만 숙소 질도 별로였으며, 와이파이가 접속되지 않았다. 그녀는 미리 스킨스쿠버를 예약해놨기에 그 곳에 가야만 했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개인적으로 일정을 보기로 했다.
그녀가 떠나고 막상 혼자 있으니 할게 없었다. 새벽부터 이동했기에 피곤하기도 했고 날씨도 더워 낮잠을 진하게 한숨 자고 나니 그녀가 숙소로 돌아와있었다.
저녁식사는 그녀가 사줬다. 비싼 레스토랑에 가고 싶은데 내가 부담스러워 할까봐 그렇던다. 이럴때마다 내가 더욱 미안하기에 서로의 음식값은 서로 계산하기로 하고 레스토랑으로 갔다. 그녀는 자신이 사겠다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가 자그마한 샐러드 하나 사는 것으로 합의했다.
역시나 비싼 레스토랑은 양이 적다. 간식들로 배를 채우기 위해 스톤타운 야시장에 나갔다. 인터넷에는 대략 꼬치하나에 500실링이라 했지만 내가 바가지를 씌인건지 그 가격에는 전혀 살 수가 없었다. 거의 꼬치하나에 로컬 식당 밥 한끼였다. 그래도 안 먹을 수는 없으니 사탕수수 주스와 함께 몇개를 주워먹었다.
이미 어둑어둑해진 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오는데 현지 택시기사를 우연히 만났다. 무슬림 지역이기에 맥주를 구하기 쉽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3병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저렴하지는 않았다. 그 술병 덕분에 나와 그녀는 숙소 정원에 조그마한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처음만난 사이가 아닌 듯 편하게 이야기했다. 오랜만에 좋은 여행친구를 만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늦은 시간 도미토리로 돌아왔다. 시원찮게 돌아가는 선풍기와 계속 침대위로 떨어지는 모기장, 어떻게든 틈새를 발견하여 들어오는 모기.
잠을 설쳤다.
2014. 0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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