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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아프리카

탄자니아 아루샤. #106 호객의 끝판왕.

by 지구별 여행가 2016. 11. 14.

부산스럽게 픽업버스를 타기 위해 체크아웃을 했지만 역시나 버스는 바로 아루샤로 가지 않고 여러군데의 숙소를 들렸다. 자그마한 봉고차는 금새 꽉 찼다. '괜히 투어버스 티켓을 샀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봉고차는 오래 달리지 않아 멈췄고, 그 옆에는 깨끗하고 좋은 미니버스 한대가 서있었다.


아직 다른 여행자들이 모이지 않았는지 한쪽에서 기다려야만했다. 그 동안 거지 한명이 다가왔다. 보통 구걸을 할 때면 조금은 불쌍한 표정을 하지만 이 거지는 달랐다. 너무 당당했다. 거의 나한테 돈을 맡겨놓은 수준이었다. 

말을 섞기가 귀찮아 무시하니 다짜고짜 성질을 냈다. 버스 안으로 도망가듯 들어가니 버스의 유리창을 부술듯이 때렸다. 버스 운전기사가 휘휘 손을 저으니 한번 째려보고는 다시 유리창을 치기 시작했다. 내가 자리를 반대편으로 옮기면 버스를 반바퀴돌아 나를 따라왔다. 

결국 버스 운전기사한테 욕을 한바가지나 먹고나서야 자리를 떴다.


여행자를 다 태운 버스는 순조롭게 달려 국경에 도착했다. 50 달러를 지불하고 비자를 받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큰 돈을 받아갔으면 성의있게 예쁜 스티커라도 한장 만들어줘야지. 도장을 찍고는 볼펜으로 대충 끄적였다.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금새 다시 버스에 올라타야만 했고, 아루샤를 향해 순조롭게 달렸다.





아루샤. 정말 대단한 곳이다. 이 곳은 호객의 끝판왕이다. 나와 같이 버스를 탄 여행자는 여자1, 남자1였는데 두명은 미리 예약이 되어있었는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누군가의 차를 타고 자리를 떠났다.

여행자는 나만 남았다. 당연히 타켓이 되었다. 약 30명의 사람이 나를 둘러싸고 흔들어대는데 정신이 없었다. 인도애들이랑은 비교도 되지 않게 거칠었다. 가방을 흔들고 손과 옷을 잡아 끌었다. 미리 연락한 나누리 투어를 간다고해도 막무가내였다. 

정신을 못차리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니 버스기사가 문을 다시 열어주고 버스에 타라 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겨우 버스에 올라탔다.

이 곳이 호객이 심한건 사실 당연하다. 대략 450불 부터 투어가격이 시작이고, 호구 손님 잘 잡으면 1000불까지 받을 수 있는게 사파리투어다. 거기다 지금은 최고의 비수기였기에 모두가 나를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버스에 올라타고 주머니를 보니 동전이랑 사탕이 없어졌다. 그 사이에 주머니를 쓸어갔다. 핸드폰이라도 있었으면 큰일날 뻔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란 것은 내가 탄 버스 뒤를 줄지어 따라오는 호객꾼들의 차였다. 그들은 포기할 줄 몰랐다. 일단 버스에서 내려 나누리 투어 안으로 들어가니 호객꾼들이 따라 들어왔다. 

나누리 투어에 이미 예약을 마쳤다고 하니 자신들은 호스텔 직원이라며 명함을 한장씩 돌렸다. 너무 귀찮아 샵안으로 들어갔는데 반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반은 샵안으로 따라들어왔다. 정말 지독한 호객이었다.


잠시 기다리니 현지 직원이 나왔다. 사장님이 4시에 온다길래 일단 숙소를 구하러 밖으로 나갔다. 호객꾼들의 눈을 피해 돌아다니가 교회에서 운영하는 좋은 숙소를 발견했지만 값이 비쌌고 너무 외곽이라 포기했다.

누가 호객의 도시 아니랄까봐 나누리로 돌아가는 중에도 호객꾼을 만났다. 주변에 다른 호객꾼도 없기에 주변 시세도 알아볼 겸 그를 따라갔다. 작은 샵 안에는 서양인 두명이 앉아있었다. 내가 들어온 타이밍이 돈을 흥정할 타이밍이었는지 나를 안쪽 휴게실 같은 곳에서 기다려달라했다. 약 5~10분정도가 지나서 나를 부르고는 장황하게 투어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기에 말을 짤라먹고 가격을 물어보니 600불을 불렀다. 크게 코웃음을 치고 '400~450불로 알고 있다' 이야기하니 430불을 제시했다. 

나쁜 가격은 아니었지만 일단 나누리 투어로 돌아가 사장님을 만나는게 우선이었다.



사장님은 내가 케냐, 에티오피아에서 겪은 일을 알고 계셨다.

사고가 터지기 전에 미리 언제쯤 아루샤에 도착할지 예약 비슷하게 말했는데 사건이 터지면서 변경된 일정을 메일로 보냈었다. 나를 만난 사장님은 그동안 수고했다며 자신이 쓰던 오피스 키를 내주셨고, 이것저것 편의를 봐주었다. 투어 일정도 최대한 빨리 맞춰서 보내기로 약속을 해주셨다. 아무리 다른 곳이 싼 가격을 제시하더라도 이 곳에서 투어를 하는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사장님이 내어준 사무실은 너무나 좋았다. 나 혼자 지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디서 구해오셨는지 깨끗한 메트리스와 배개를 가져오셨다. 입구를 지키는 가드에게 내 얼굴을 소개시켜주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가드에게 말하라 하셨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얼굴의 가드는 주름살이 가득했지만 아주 순박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벙어리인듯 말을 못했지만 상관은 없었다. 눈에서, 손끝에서, 작은 몸짓들에서 배려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따뜻한 호의가 너무나 감사했다.



저녁 거리를 좀 걸어볼까 했지만 아직은 겁이났다. 가까운 식당에서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사서 방으로 돌아왔다. 봉지를 열어보니 내용물이 영 부실했다. 다음에는 안먹어야겠다는 생각을했다. 


오늘 하루 지독한 호객과 지독한 배려를 동시에 맛본 날이었다. 


2014. 0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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