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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아시아

인도 바라나시. #45 불교의 4대성지 사르나트, 환자와 가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5. 12. 18.

불교에는 크게 4대 성지가 있다. 룸비니, 보드가야, 사르나트, 쿠쉬나가르.

룸비니는 네팔 여행 때 다녀왔던 곳으로 부처가 태어난 곳, 보드가야는 깨달음을 얻은 곳, 사르나트는 처음으로 설법을 전파한 곳, 쿠쉬나가르는 열반에 든 곳이다.

가히 4대 성지라 할 만큼 부처의 일생이 한 눈에 압축되는 곳들이다.

그 중 사르나트는 바라나시에서 약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2012년 바라나시를 왔을 때, 사르나트를 가지 않았기에 이번에 시간을 내어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바라나시만 오면 몸과 마음이 쳐저 내일 가야지, 내일 가야지 하면서 미루고 있었다.

 

항상 짜이와 빵으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던 나에게 며칠 전 만난 같은 숙소 누나가 같이 아침식사를 먹으러 가자하여 조그만 카페로 들어갔다. 아침을 먹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는지 식당 안에 손님이 없었다. 둘이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남자가 카페안으로 들어왔다. 누나와 그는 아는 사이인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자연스럽게 우리 테이블 의자에 앉았다.

 

나는 룸비니에서 아침마다 드리던 예불에 심취해있었기에 누나와 명상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누나는 명상센터에서 10일을 보냈는데 만날 때마다 나에게 명상센터 3일 코스라도 가보라 추천했었다. 그 날도 명상센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는 가고는 싶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귀찮아서 반쯤 핑계를 섞어 사르나트를 다녀와 생각해보겠다 말했다. 그 순간 옆에 앉은 남자도 사르나트를 아직 다녀오지 못했다며 같이 가자 이야기했다.

갑작스럽게 다음 날 사르나트행이 결정되었다.

 

 

 

 

다음 날 아침, 아침식사를 했던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두툼한 긴옷을 입고 나왔다. 몸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괜찮아진 후 가자했지만 며칠 후 한국을 가야하기 때문에 시간여유가 없단다. 말려봤자 기여코 가겠다는 사람을 가지말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내게는 없기에 그의 의견을 따랐다.

고돌리아 근처까지 나가 오토릭샤를 탔다. 짧은 거리지만 길이 워낙 막혀서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걸렸다. 그 사이 그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걱정은 됐지만 너무 '괜찮냐, 괜찮냐' 물어보는 것도 실례같아 몇 번 물어본 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사르나트는 규모가 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서유기의 삼장법사의 모델로 알려진 현장법사가 쓴 대당서역기에 따르면 이곳은 3000명 정도의 승려가 지냈단다. 그러나 지금은 인도 인구 대부분이 힌두교를 믿기 때문에 현지인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데이트 장소가 되어버렸고 동아시아권 불교 신자들의 필수 관광지로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곧장 다메크 스투파 앞으로 향했다. 보수공사 철근들이 스투파를 둘러싸고 있었고 불교신자들이 흉물스러운 철근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철근이 있어도 건물자체에서 나오는 웅장한 힘이 있었다.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상당히 컸다. 스투파 주변을 3번 돌면 기도가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기에 조심스럽게 3바퀴를 돌고 기도했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형이 사라졌다. 어디 갔나 찾아보니 한쪽 그늘진 벤치에 누워있었다. 무리해서 온 것이 확실했다. 도저히 여행을 할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었기에 숙소로 돌아가자 했지만 그의 고집은 대단했다. 조금 있다가 스투파 구경을 할 것이니 혼자 돌아보고 있으란다.

그냥 무작정 끌고 숙소로 돌아갈까 했지만 역시나 나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었다. 일단 옷을 벗어 덮어주고 30분 후에도 몸이 안 좋으면 그 때는 돌아가자 하니 간신히 고개를 끄덕인다.

엄청난 똥고집이다. 얼굴이 창백한 사람이 30분만에 좋아질리가.

 

 

 

사르나트 공원을 나와 릭샤를 타고 오면서 본 부처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낮은 건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솟아 있어 다시 찾는데에는 어렵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태국사원이었다. 부처상 밑에는 4대 성지를 표현한 듯 4방향으로 부천의 탄생, 깨달음, 설파, 해탈의 조각이 있었다. 밖으로 나와 좀 더 배회를 하고 싶었지만 길가에 버려두고 온 그가 걱정되어 발걸음을 돌렸다.

 

입구에서 10여분을 기다리니 창백한 얼굴로 그가 나왔다.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민망한 얼굴이었다.

보통같으면 잠시 기다려 로컬버스를 타고 돌아갔겠지만 내가 먼저 오토릭샤를 잡아 고돌리아로 돌아왔다. 터벅터벅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그의 뒷모습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엎고라도 고돌리아로 돌아올 걸.

 

2014. 01. 25

 

다음이야기

 

2015/12/20 - [지구별 한바퀴 - 세계일주/아시아] - 인도 바라나시. #46 나를 호구로 봐? 청바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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