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속엔 우리나라 사람들의 동남아 패션은 현지에서 파는 알라딘 바지 아니면 등산복이다. 내가 게스트하우스로만 다녀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조금 더 다양하다. 나에게 다른 여행자들의 어떤 패션이 멋지냐 묻는다면, 당당하게 '청바지'라 대답할 것이다.
겨우 청바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꾸민듯 안꾸민듯 없어보이면서도 있어보이는 듯 한 패션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물론 여행다니면서 가장 쓸데없는 옷을 꼽으라한다면 청바지를 세손가락안에 꼽지만 네팔과 인도를 여행할 때쯤에는 꼭 청바지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입는다고 멋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네팔에서부터 로컬시장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청바지가 있나 항상 기웃거렸다. 대부분의 청바지들이 가격은 저렴했지만 디자인이나 색이 너무나 촌스러웠다. 딱 하나의 마음에 드는 청바지가 있었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아 구매하지 못했다.
인도 바라나시 시장에서도 청바지를 사기 위해 로컬시장을 갔다. 일부로 찾아간 것은 아니고 혼자 돌아다니다 길을 잃어서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옷과 잡동사니들을 길 한복판에 깔아놓고 파는 중이었다. 하나같이 촌스러웠다. 청바지만 50여벌을 구경했지만 더 이상 구경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트로 돌아가려 하는데 한 인도인이 다가오더니 자신의 가게 물건을 구경해보라했다. 작은 규모의 매장이었지만 어차피 청바지 하나 사러 온 건데 잠시 들렸다 가야겠다 생각했다.
아저씨는 영어를 잘 하지 못했지만 원하는 것을 가리키고, 색을 보고, 사이즈를 물어보는 과정이 전부였기에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혹시 인도 시장 가게에서 바지를 사 본적이 있다면 알겠지만 옷의 디자인 별로 모든 사이즈를 구비해 놓지 않는다. 그냥 사이즈별로 정렬되어 있고 그 사이즈에 있는 옷을 구경후 골라가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디지안을 보고 고르면 안되고 사이즈를 보고 골라야한다.
연청색 바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입어 보고 사이즈만 맞으면 사야겠다는 생각에 가격을 물어보니 이 제품은 리바이스 정품 제품이라며 1500루피라 말했다. 1500루피 리바이스 정품바지가 있는 것도 재밌지만 바지 뒷 주머니에 붙어있는 빨간택이 너무나 조잡해서 15000루피라 해도 도저히 정품이라 믿을 수가 없었다.
비싸긴 하지만 사이즈가 맞으면 그 후에 흥정할 생각으로 입어보았다. 그러나 주먹이 2개가 들어갈 정도로 컸다.
주먹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여주고 너무 커서 살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니 그가 다른 바지를 찾아왔다.
나는 이 바지만을 원했다. 그가 벨트를 주었다. 그러나 벨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바지를 벗으며 안 산다 이야기하니 갑자기 그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내 가방을 가져가며 자기 테이블 서랍에 넣어버렸다. 무슨 황당한 일인가 싶어 가방을 달라하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안된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계속 가방을 돌려달라 이야기했지만 그는 바지를 사면 가방을 돌려준단다.
너무 크다 이야기하니 이번에는 한 번 입었으니 800루피를 내란다.
슬슬 짜증이 나서 나도 언성이 높아갔다. 그는 기도하는 몸짓과 하늘을 향하는 손가락, 돈을 보여줬다. 무슨 뜻인가 생각해보니 대충 신을 위해서 나한테 기부하라 대충 이런 뜻인 것 같다.
개자식...
나도 물불을 가리는 성격은 아니다. 정말 열이 받아 한국말로 욕을 하면서 가방을 내놓으라 했다. 몸싸움을 하기에는 내가 불리하고 경찰이라도 오는 날에는 상당히 골치 아파질 것이기에 시간을 끌지 않고 한방에 제압해야만 했다. 한방에 안 되면 돈을 준다하고 가방을 받은 후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테이블을 때려부술 듯이 손바닥으로 치며, 소리 질렀다.
"빨리 내놓으라고!!!!!!!!!!!!!"
그는 나를 더럽고 치사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내 가방을 테이블 던졌다. 다행이 작전이 통했다. 가방을 주워들고 나오는데 힌두어로 뭐라 떠들었다. 아마 저주겠지 싶다. 나도 한국말로 시원하게 욕한바가지 해주고 씩씩거리며 나왔다.
미친놈이랑 싸우느라 몰랐는데 얼마나 시끄러우면 가게주변에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있었다. 여기서 쫄면 안될 것 같아 어깨 탁 피고 천천히 걸어나왔다.
속으로 너무 겁이 났다. 갑자기 나를 때리지는 않을까. 누가 달려드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릭샤를 잡아탈 때까지 아무도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 날 밤새도록, 열받은 것이 잊혀지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이야기
2015/12/21 - [지구별 한바퀴 - 세계일주/아시아] - 인도 바라나시. #47 아프다... 아파 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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