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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사는 모습.

이번 2차 민중총궐기는 왜 갔을까.

by 지구별 여행가 2015. 12. 6.

첫 번째, 1차 민중총궐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반성의 이유.

 

 그 당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며 변한게 없는 세상에 대한 아픔과 분노를 안고 민중총궐기 포스터를 보았지만 무려 귀찮다는 이유로 가지 않았다.

나의 위선에 치가 떨렸으며 진정한 쓰레기는 여기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음.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서울시청으로 이끈 가장 큰 이유이다.

 

두 번째, 끝도 없이 본질을 흐리는 프레임 전쟁속에 갖혀버린 집회의 진정한 의미.

 

폭력시위냐 합법시위냐의 프레임안에 끊임없이 갖혀 집회의 본질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한 안타까움. 폭력시위냐 합법시위냐의 문제를 뛰어넘어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으나 실제로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결국 누군가의 머릿속을 거쳐서 나온 재생산된 정보를 보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내 눈으로 보고 판단하겠다.

 

 

 

 

내가 본 포스터다.

가장 큰 주제는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이며 위의 3명의 작은 피켓 속에 노동 개악, 국정교과서, 한국사 국정화 문제 등을 포함하기에 집회의 주제와 의미에 맞아 참석을 결정했다.

만약 무작정 '박근혜 독재 정권 타도'라는 본질 없는 아우성이라면 참여하지 않았 것이다. (공주님을 물론 좋아하지는 않지만.)

 

2시 50분에 문재인 대표의 연설이 있을 것이라 하여 시간을 맞춰가려 했지만 도착하니 3시가 되어 보지는 못했다.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 시청에 내리면서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혀를 끌끌 차는 어른들이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완전히 반대였다. 대부분 나이가 40~50대였다.

 

내 평생 이런 광경은 처음봤다. 사람 수에도 놀랐지만 수 많은 깃발에 놀랐다. 무슨 전쟁터 온 느낌.

대충 자리를 잡고 1부 2부를 참여하고 행진에 참여했다.

 

 

 

 

 

 

 

행진 전 집회.

 

 

 

 

 

행진의 선두는 풍물패와 학생단체에서 이끈 일명 바람개비 부대였다.

 

 

 

 

 

정의당 참석. 왼쪽 심상정 의원이 보인다.

 

 

혜화역 2호선까지 진출한 후 보이는 경찰벽. 행진을 하면서 가다보니 나도 모르게 최선두에 있었다.

별 다른 제제 없이 경찰이 서있다. 일어나서 경찰에게 욕하는 청년이 있었지만 경찰이 진압을 하지 않는 이상 욕을 할 필요는 없다 생각된다. 행진 신고도 대학록 혜화역까지만 신고가 되어있는 거니 충돌할 이유가 없다.

 

 

수 많은 사람들 이때쯤이 종로였는데 선두를 지휘하는 사람 말에 따르면 이때까지 서울 시청에서 후발대가 출발을 하지 못했다 하였다. 사람이 많기는 정말 많았다.

선두 그룹이 도착한 후 한참 뒤에 후발대 그룹이 도착했다. 나눠 주는 촛불을 들고 마무리 집회를 참여했다.

장흥에서 올라왔다는 분들이 소주 한 컵과 오징어 떡볶이 오뎅국물을 사줘 그나마 따듯하게 집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

9시에 끝나기로 되어있는 집회였지만 수만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해산하면 번잡할 듯 하여 8시쯤 빠져나왔다.

 

 

집회 참여 후 솔직한 후기.

 

1. '물대포와 차벽이 먼저냐, 시위대의 폭력이 먼저냐' 라는 문제로 초록포탈 사이트 댓글이 난리던데 물대포와 차벽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집회를 참여하면서 느낀건데 경찰들이 길을 막지 않는 이상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 때문에 부딪힐 일이 없다. 혜화역 2번 출구 앞에 도착하여서도 경찰들이 행진을 중단해 달라 이야기했을 때, 행진하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자리에 착석하였다. 사람마다 느낌은 다르겠지만 이번 경찰 정말 집회를 하는 사람들을 지켜준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안전한 집회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백남기 농민 딸인 백도라지씨께서도 경찰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는데 나 역시 이 공간을 빌어 이번 집회를 보호해준 경찰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2. 행진한다 욕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아무래도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을 하는 것이기에 교통흐름에 충분히 방해가 될 수 있고 시민들의 도보통행에도 방해가 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욕보다는 응원을 해줬다. 인터넷 댓글 보면 집회하는 사람들 다 빨갱이 취급한다. 그러나 집회 참여해서 거리를 돌아다녀 보면 '빨갱이가 도로를 점거 했네' 라는 미개한 소리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응원 20 %, 무관심 79%, 빨갱이 타령 노인 1% (딱 한명 봄, 그래도 그냥 불쌍해서 1%해줌)

 

3. 무겁지 않았다.

 

역시 해학의 민족답게 복면금지법에 반대하여 재밌는 복면들부터 다양한 피켓까지 생각보다 볼거리가 풍성했다. 집회 뒷부분은 민주노총이 자리 잡았기에 깃발도 많고 어두침침한 노조조끼의 압도되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시민들은 대부분 표정이 밝다. 30~40대의 부부와 5살정도의 아이가 함께 만든 가면을 쓰고 소풍 온듯이 돌아다니는 가족도 있었다.

그다지 준비를 하고 가지 않아 가면은 없었지만 즐겁게 행진할 수 있었다.

 

4.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 벗어나지 못하는 폭력시위, 평화시위의 프레임

 

끝나고 동네로 돌아와 밥을 먹을 때, 뉴스에서 집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들의 관심이 없다. 20살로 보이는 사람은 저 시간에 밥이나 한끼 더먹겠다는 말에 마음이 답답했다. 주변 반응 또한 냉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무관심과 집회에 대한 불신이 많았다. 내가 본 현실 세계에서만큼은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되는 평화시위 이야기. 결국 뉴스가 끝날 때 까지 집회의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나오지 않았다. 백남기 농민이 누군지, 어떤 이유로 병원에 있는지, 1차 집회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2차 집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밥 맛이 뚝 떨어졌다.

 

 

 

나는 대한민국이 굉장히 진보한 사회라 믿는다.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모든 걸 볼 수 없었겠지만, '대한민국', 이 나라 평타는 친다 생각한다. OECD선진국과 비교해서 문제인거지...

집회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을과 을이 싸워 나오는 결과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서로 이해해주고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는 것은 구태의연해보인다. 하지만 이 방법만이 '이해와 화합'만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우리의 무기일 것이다.

제발 을과 을끼리 싸우지 좀 말자.

 

 - 마지막으로 요즘 읽고 있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저자 장하준의 글 -

 

200년 전에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100년 전에 여자에게 투표권을 달라하면 감옥에 집어 넣었습니다.

50년 전에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테러리스트로 수배당했습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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