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덜덜 떨면서 자서 그런지 피곤함이 풀리지 않았다.
오늘 홍콩에서 탕의 친형이 오기로했다. 일본 부부는 일찍 떠나야하는게 시간을 아끼는 것이지만 그의 형을 보고 간다했다. 다같이 교회 카페테리아에서 펜케익으로 식사를 했다.
방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중국대사관 직원과 함께 그의 형이 왔다. 딱 봐도 가족인 걸 알 수 있을정도로 닮아있었다. 큰 캐리어에 엄청난 양의 음식과 과자, 라면, 일회용품, 생활필수품을 갖고 왔다.
그는 오자마자 아무말없이 Hiroko를 안아주었고, Hiroko는 그제서야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그간 열심히 참았나보다. 상황설명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한참을 울었다. 시간은 어느새 아침 9시되었고 아침 면회를 하기위해 다함께 회복실로 올라갔다.
중환자 회복실에 처음 들어가봤기에 가운을 입는법도 몰랐고, 신발을 갈아신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얼타고 있으니 일본 부부가 하나씩 도와주어 입었다.
그는 머리카락을 남기없이 밀었고 이곳저곳에 온통 반창고 투성이었다. 호흡을 도와주는 장친인 듯 입안으로 호스도 들어가 있었다. 한 명씩 들어갈 수 있었기에 마지막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회복실에서 나왔다.
일본 부부는 이제 가야할 시간이 되었다. 정말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열성적으로 도와준 친구들이었다. 아와사 병원에 가서 보험처리를 하기 위해 입원 영수증을 챙긴 후 모얄레로 돌아갈 것이라 했다. 나만 혼자 비행기를 타고 가는게 많이 미안했다.
Ando와 Hiroko는 한참을 부둥켜 안고 펑펑 울었다. 나도 눈물이 났다.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주면서 탕의 형은 엄청난 양의 음식거리를 챙겨주었다. 부부가 돌아가고 나서야 Hiroko와 그의 형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홍콩어를 썼기에 전혀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아저씨는 침착하게 모든 이야기를 들었고, Hiroko는 중간중간 눈물을 흘리며 겨우겨우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상세한 이야기를 다 들은 아저씨는 호텔에 짐을 풀고 오겠다하여 나와 함께 호텔을 찾으러 나갔다. 미리 예약한 호텔을 가보니 싱글룸이 120불인 에디오피아 최고급호텔이었다. 안쪽 인테리어도 상당히 고급스러웠으며 호텔 입구에서 X-ray기계로 가방을 검사하고 경비원이 몸수색을 꼼꼼하게 한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다.
긴 침묵...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텔레비전이라도 틀어놔야만 했다.
오후에는 중국대사관측에서 뇌 전문 의사와 함께 우리 병실을 찾았다. 대사관직원, 뇌전문의사, 탕의 형, Hiroko는 서로 대화를 나눴고, 나는 한쪽 구석에다 밀린 빨래 몇가지를 널었다.
나도 내일 나이로비로 떠나기에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기로 했다. 그러나 병원측에서는 Hiroko가 휠체어를 탄 모습을 보고 환자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며 거부했다. 택시를 타도 안된단다. 어쩔 수 없이 병원 카페테리아에서 먹기로하여 가봤지만 시간이 늦어서 문을 닫았다.
결국 다 함께 방에서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끝냈다.
탕의 형은 저녁 8시쯤 숙소로 돌아갔다. 초행길이니 내가 같이 가겠다하였지만 혼자 간다고 했다. 걱정은 됐지만 별일 없겠지 싶어 그가 택시 타는 것을 배웅해주고는 병실로 돌아왔다.
Hiroko와 나 역시 피곤했기에 금방 잠이 들었다.
2014. 0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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