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벙어리이자, 귀머거리이자 까막눈이었다. 오늘 하루 이과수 폭포로 가는 버스표를 사야했고, 나름 신 7대 불가사의라는 예수상과 세계 3대 해변으로 불리는 코파카바나 해변까지 즐기려면 이른 시간 길을 나서야만 했다. 몸짓 발짓으로 보낼 시간이 상당할 것이었다.
예상은 정확했다. 버스표를 사러가야하는데 내가 아는 단어는 '테르미날 호도비아리누'뿐이었다. 몇 명의 사람들을 거친 후에야 도착한 버스정류장에서 우연찮게도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하는 현지인을 만나 어떻게 버스터미널로 갈 수 있을지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 때가 기회였기에 예수상이 있는 코르코바도를 어떻게 가는지 물어봤지만 나의 발음이 심각하게 나쁜 탓에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뭐, 어떻게든 가겠지 싶어 예수상 가는 길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였다.
버스터미널 안에 버스회사가 많아야 5~6개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 판단은 완벽한 오판이었다. 엄청난 수의 버스회사가 있었고, 일일이 이 곳에 들러 버스가격을 물어보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이과수라고 써있는 곳만 골라 물어보니 190헤알에 버스티켓을 파는 곳이 있었다. 가격은 가장 저렴했지만 아침 8시 버스였기에 이 곳에 적어도 7시 반까지 오는 버스가 있는지부터 확인하는게 먼저였다. 하지만 벙어리에 까막눈 귀머거리이기까지한 나에게 이는 상당한 시련이었다.
설마 버스가 아침에 운행을 안할까 싶어 에라 모르겠다 일단 구매하려는데 운이 좋게도 어여쁘게 생긴 여대생이 도와주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새벽 5시에 첫 버스가 버스터미널에서 코파카바나 해변으로 간다하니 6시쯤부터는 문제없이 버스에 탈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OK' 티켓을 구매하러 가는데 아까는 보지 못한 버스회사가 이과수 폭포로 가는 버스를 운행했다. 11시에 출발하여 아침 8시 도착하는 최고의 버스시간이었으나 문제는 파라과이를 들렀다가 나오는 버스였다. 순간, 파라과이가 무비자인지 헷갈렸지만, 충분히 국경에서 소명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무작정 구매했다. 물론 60헤알이나 저렴한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슬슬 예수상을 가기위해 버스를 알아보려는데 정말 가슴이 답답해 터질정도로 말이 안통했다. 다행히도 핸드폰에 예수상을 캡쳐해놓은 사진이 있었기에 지나기는 사람들마다 보여주며 무작정 '부스, 부스'를 말했다. 내가 안타까워보였는지 먼저 묻지도 않았는데 공사장 인부가 손수 내 손을 잡고 버스정류장에 세워주었다. 버스에 올라타 저 멀리 있는 인부에게 손을 흔드니 나를 발견하고는 큼지막한 손을 흔들어주었다. 버스에 탄후에도 역시나 핸드폰에 캡쳐해놓은 사진이 의사소통의 전부였다. 버스안내양은 사진을 보더니 아무말없이 엄지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예수상 트램앞에서 예수상까지 걸어갈까 하였지만, 하도 우범지대라 소문이 나있었기에 트램을 타고 가기로 했다. 허나 60헤알. 너무 비쌌다. 잠시 고민하는데 벤 운전기사가 왕복 44헤알에 운행을 한다는 호객에 꼬여 그의 벤에 탑승했다. 빙글빙글 벤을 타고 가면서 밖을 보았는데 그다지 위험해보이는 곳은 아니었다. 시간만 여유있다면 쉬염쉬염 올라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였다.
인도의 타지마할, 요르단의 페트라에 이어 보는 3번째의 7대 불가사의는 엄청난 실망감을 안겼다. 계단을 걸어올라가다보면 예수상의 뒷통수부터 보며 걸어가게 되는데 생각보다 규모도 크지 않았으며, 그냥 거대한 석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앞으로 돌아가 정면을 보니 딱 사진에서 보던 그정도의 위압감이 전부였다. 석상의 비율도 뭔가 오묘하게 맞지 않는 듯 하였다.
이게 도대체 왜왜왜? 7대 불가사의지?라는 의문을 품었지만 이는 나중에 궁금증이 풀렸다. 7대 불가사의는 투표로 인해 선정이 되어지는데 인구수가 엄청난 브라질 사람과, 전세계 각지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압도적인 투표가 한몫했다는 것이다. 이런말은 하면 안되지만 예수상은 전혀 대단치 않았고, 브라질에 지나가는 길에 들린다면 볼 정도의 가치이지 시간을 굳이 내어 볼만한 가치는 없다 생각했다.
3번째 불가사의 투어는 금세 끝났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상 아래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위해 몇 달전부터 예약을 한다하니 사실상 이곳은 종교적 상징성이 강한 건축물이라 보는게 정확했다.
벤에 타고 옆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불현듯 이과수행 버스티켓이 제대로 구매한건지 궁금했다. 티켓을 꺼내 보여주니 이과수 폭포로 가는게 아니라 파라과이 터미널이라 하였다. 이런... 환불해야하나 고민하니 그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며 파라과이 터미널에서 버스타고 20여분이면 이과수 폭포로 갈 수 있다하였다. 60헤알도 아끼고 파라과이에 도장이나 하나 찍으러간다는 생각으로 그냥 진행하기로 하였다.
어느새 벤은 우리를 코르코바도 트램 입구에 세워주었다. 코파카바나로 돌아가기위해 583버스를 기다리는데 40여분을 기다려도 버스한대가 오지 않았다. 혹시나 하여 '코파카바나 부스~, 코파카바나 부스~' 돌림노래를 부르니 584번 버스가 운행한다하였다. 제기랄. 584 버스를 몇대나 보냈는데...
해변 근처의 길은 어제 외워두었기에 해변 안쪽으로 들어갔는데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해변과 다르지 않았다. 발이라도 담구고자하는 마음에 처량히 파도치는 바다에 잠시 발가락을 담굴 뿐이었다. 날씨가 좋지 않은 탓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일광욕을 하면서 누워있다가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가방에 들어있던 버스표가 보이지 않았다. 망했다 싶은마음에 한참 걸어온 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니 다행히도 아까 누워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상당히 기대를 많이 했던 예수상과 코파카바나 해변이었지만, 나는 그저 그랬다. 당연하게도 여행을 마친 후 정한 남미의 3대 포인트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2014. 05.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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