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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7, 대만

난생 처음 둘이. #3 혼자만의 시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7. 9. 24.

오늘 밤에 떠날지, 내일 아침에 떠날지 고민을 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는 무조건 새벽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게 최고의 선택이지만 대만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아무리 느리게 달려도 4시간이면 타이페이까지 도착 할 수 있었다. 새벽에 도착해 하루종일 피곤함을 이끌고 타이페이 관광을 하게될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동기는 한번쯤 밤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싶어하였다. 그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밤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체크아웃을 하며 짐을 맡겨놓고 버스터미널에 들렀다. 타이난역 근처에 버스회사들이 모여있는데 모든 회사들이 가격과 운행시간이 같았기에 국왕버스에서 표를 사기로 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돈을 모두 털어도 버스티켓을 구매할 수가 없었다. 직원에게 잠시 후 다시 오겠다 이야기하고 환전할 만한 곳을 찾아다녔지만, 오늘은 일요일이라 모든 은행문이 닫혀있었다. 특별히 여행자거리라 할만한 곳도 업었기에 사설환전소를 찾기도 힘들어보였다.

타이난 역의 인포메이션센터에 들러 환전소를 물어보니 백화점에서 환전을 할 수 있다하였지만, 백화점이 어디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길을 방황하고 있는 도중 한국어 가이드북을 들고 있는 한국인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그녀에게 다가가 혹시나 100달러와 대만 달러를 교환해줄 수 있는지 물어보니 슬금슬금 피했다. 왠지 우리가 미덥지 못해보였나보다. 관광객이라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패션은 맞았다. 동기는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있었고, 나 또한 동네 편의점을 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누군가 이러한 복장으로 돈을 교환하자고 하면 나 역시도 의심부터 했을 것이었다.

결국 그녀는 퇴짜를 놓았고 우리는 방법이 없이 무조건 백화점을 찾아야만했다. 인포메이션 직원이 적어준 종이 한장을 들고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겨우 백화점에 도착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아까 백화점인줄 알고 갔던 곳 바로 옆이었다. 같은 백화점인줄 알고 가지 않은 우리의 잘못이었다.

굉장히 나쁜 환율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100달러를 주며 50달러만 환전하고 50달러는 달러로 거슬러 달라했지만 그들은 들은척도 안하고 100달러 모두를 환전했다.


새벽 1시반 버스티켓을 구매하고 안평수옥 방면 버스에 올랐다. 한참을 달리는데 나는 방송을 듣고, 어플을 보고, 사람들이 내리는 곳을 쳐다보며 언제 우리가 내려야하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동기는 자신이 다운받아온 무한도전을 보는데에 눈을 떼지 않았다. 순간 과거 내 동생과 인도여행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10일이 지나도 물건가격을 모르는 그때의 그 모습. 너무나 의존적이라 자기자신의 여행을 찾아가지 못하는 그 모습. 그와 잠시 떨어져야겠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안평수옥 근처 정류장에 서자마자 동기에게 와이파이 기계를 던져주고 저녁 8시에 숙소에서 보자는 말을 하고 버스에서 도망치듯 내렸다. 그는 눈이 똥그렇게 떠지더니 급하게 나를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왜 갑자기 내려?' 그의 목소리와 눈동자에서는 당황함이 짙었다.

'오늘 하루는 따로 여행하자. 나도 내 여행을 할 시간이 필요하고, 너도 너만의 여행을 해봤으면 해.'

촌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도 나 나름대로 나만의 여행과 시간이 절실했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걷던지 눈치를 보지 않을 필요가 있었고, 목적지 100m를 앞에 두고 1Km 를 돌아가는 멍청함도 필요했다.

나의 말을 이해했는지 그는 곧 나와 반대방향으로 돌아서 걸어갔다.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그 역시 그만의 여행을 하고 올 것이라 믿었다.












지도를 보니 근처가 바다였다. 바로 바닷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잠시 아둔한 두뇌를 꺼내 한참 돌아 바다로 향했다. 다리를 건너는데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그들을 만날 것 같은 마음에 골목을 한참 파고 들어가는데 큰 개가 길을 막았다. 무시하고 지나가려하니 미친듯이 짖으며 나를 물으려했다. 워낙 개를 무서워하니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큰 나무들이 즐비한 길을 따라 들어가니 모래사장이 나왔다. 신발을 벗고 발가락이 물을 만나니 그 어찌 신이 나지 않을 수 있는가. 파도를 타거나 물장구를 치는 사람들을 따라 해안가를 걸었다.

끝까지 걸으니 돌담으로 막혀있었는데 충분히 담을 넘을만하였다. 담을 휙하고 넘으니 너른 바다가 펼쳐졌다. 한참을 방파제 위를 걷다가 작은 사다리를 만나 밑으로 내려왔다. 미역처럼 보이는 해초를 양식하는 사람들 사이로 다가가 앉아있으니 아이들이 주변에 몰려왔다. 인사를 나누니 어른들도 다가왔다. 해초류 특유의 비린내가 코끝을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싫지 않았다. 후각이 깨어남을 느꼈다.


멀리 사람들이 연을 날리고 있었다. 시각을 깨어내기에 좋은 포인트였다. 무작정 걸어 항구에 도착했지만 길은 끊어져있었다. 주변의 낚시꾼들에게 건너편으로 어떻게 가는지 물어보니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돌아나가야만 했다. 굴딱지에서 굴을 분리하는 작업장을 지나 걸어가는데 오토바이 한대가 내 앞에 섰다. 아까 내가 건너편으로 어떻게 건너가는지 물어본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말 않고 손바닥으로 자신의 오토바이 뒷자석을 몇 번 쳤다. 한마리 나비가 된 듯 그의 뒷품에 조심스레 손을 올리고 그의 등판에 안겼다.

바람이 휙휙지나갔다. 걸어서 한시간이상 가야할 길을 5분만에 도착했다. 정중하게 고맙다고 인사하니 그가 쓱 웃었다. 이는 시커맿지만 미소는 예뻤다.









내린 곳에서는 퇴역함 행사를 진행중이었다. 돈을 내고 탑승해볼까 했지만 그다지 끌리 않았기에 공연을 하는 뮤지션들을 잠시 구경후 바로 나왔다. 어쨋든 나의 목적지는 이 곳이 아니라 수 많은 연이 날라다니는, 나의 시각을 만족시켜줄 그 곳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그 곳에는 아이들이 연을 날리고 있었고,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은 비눗방울을 공중에 날리고 있었다. 어느나라나 가족들의 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지게 만들었다. 

동상을 주변으로 넓은 공원이 조성되어있었는데 동호회 모임인지, 페스티벌인지 다양한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앵무새 동호회였다. 다가가서 한번 만져볼까 했지만 그들끼리 너무나 재밌게 놀고 있었기에 굳이 내가 다가가 분위기를 꺨 필요가 있나 싶었다. 멀찍이서 사진을 찍을 뿐이었다.




안평수옥에 입장 시간이 있다는 것은 모르는 사실이었다. 안쪽은 구경도 못하고 바깥만 구경하고 왔지만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버스를 탈까했지만 저무는 해의 노을과 그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강물의 색은 내가 버스에 올라타는것을 말렸다. 사람이 적당히 있는 식당에서 짜장면 비슷한 음식을 먹고 숙소 앞 시장 골목에 들어섰다. 

참으로 재밌게도 횡단보도에서 동기를 만났다. 그는 어디서 구했는지 머리띠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중에서 가장 밝은 표정이었다. 그만의 여행이 만족스러웠음이 분명했다. 나를 만나자마자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었다.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할지 난감했지만 금세 적응하고 돌아다녔단다.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농구를 하고 맛있는 식사도 하였으며, 유적지에서 자신만의 시간도 보냈단다. 

생기넘치는 그의 표정에서 내가 다 뿌듯함을 느꼈다.








함꼐 간단히 간식을 먹고 숙소로 돌아갔다. 긴시간동안 나는 책을 읽으며 전자제품을 충전했고, 그는 축구 동영상을 보며 피로를 풀었다. 너무 늦은 시간 걸어가기에는 꽤 먼거리였기에 10시쯤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짧은 숙면을 취하니 어느덧 버스에 올라탈 시간이었다. 천천히 달려 잠을 잘 시간을 충분하게 줬으면 좋겠다는 바램뿐이었다.


2017.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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