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새벽에 타이페이에 떨어졌기에 버스 대합실에서 한숨 자고 아침 7쯤 미리 예약해둔 엔젤스 호스텔로 향했다. 스페이스인 호스텔 바로 윗층에 있는 숙소였는데 값이 조금 더 저렴했기에 이 곳에서 묵기로 결정했다. 직원이 아직 체크인이 안된다고 하였지만 우리 역시 바로 예.스.진.지 투어를 가야했기에 가방만 맡겨놓고 빠져나왔다.
타이페이 근교 투어중 가장 유명한 예.스.진.지 투어는 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을 통칭하는 줄임말이다. 보통 하루 일정으로 잡고 택시투어나 버스투어를 이용하는게 보편적이지만. 우리는 미리 예약할 시간도 없었고, 내 여행 스타일상 그렇게 가는 것을 선호하지도 않기 때문에 직접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투어를 하기로 했다. 스펀은 등불을 날리는 곳으로 유명한 곳인데 우린 등불을 날릴 계획이 없었으므로 스펀을 제외한 예.진.지 투어를 계획했다.
버스를 탄 후 졸음이 계속 몰려왔다. 중간중간 쪽잠을 자면서 사람들의 동향을 체크해보니 천하태평이었다. 얼마나 잤나 다시 눈을 뜨니 사람들이 슬슬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뒤돌아보니 자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내릴 때가 된 모양이었다. 주의깊게 정류장 전광판을 살펴보니 곧 예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사람들은 예류로 직행했지만 왼쪽에 펼쳐진 부둣가가 나를 좀 더 끌어당겼다. 곧 출항을 하는지 어부들이 분주하게 장비를 손보고 있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높은 담이 나왔는데 한쪽에 위태롭게 생긴 계단이 보였다. 옆에 낚시를 즐기는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귀찮다는 표정으로 올라가도 된다고 하였다. 담 위에 작고 빨간 등대 위로 올라가니 넓게 펼쳐진 바다에서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멀리 예류 돌덩이들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예류 입구에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깃발아래 집결해 있었다. 우리나라 투어사들의 이름도 보였다. 예류의 기암괴석은 터키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과는 느낌이 사뭇 다른데, 카파도키아 기암괴석이 거대하고 웅장한 멋이었다면, 예류는 귀엽고 세밀했다. 절대 예류의 기암괴석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디테일한 면에서 카파도키아 기암괴석은 예류의 기암괴석에 발끝에도 못 따라왔다. 어찌 그리 세심하게 구멍이 나있는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을 했다.
안쪽에 있는 언덕에 올라가면 예류의 전체모습이 한눈에 들어올 것 같았지만 나무에 가려 생각만큼 잘 보이지는 않았다. 높지 않은 언덕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가보기로 하고 길을 따라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엄청 긴 산책로였다. 더운 날씨에 땀을 한바가지 흘렸고 물도 거의 다 마셨다. 마지막 종착지에는 한 그룹의 사람들이 음식을 꺼내놓고 먹고 마시며 놀고 있었는데 전혀 남들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시끄러운 사람들 틈에 끼어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잠시 보고 기암괴석으로 돌아왔다.
이젠 진과스로 갈 시간이었다. 미리 인터넷으로 버스를 알아놨기에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꽤 되는지 사람들이 점점 쌓여만 갔다. 약 30여분을 기다리며 버스가 오는건가 하는 의구심에 지속적으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지만 태워줄 사람은 잡지 못했다.
약 40여분을 기다린 후에야 버스에 탔는데 안에서 아들과 같이 여행하는 어머님, 혼자 여행하는 여자를 만났다. 여자와는 목적지가 같았기에 함께 진과스 지우펀을 여행하기로 하였다. 꽤나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듯 한 그녀는 어디쯤에서 내려야하는지 알고 있었다. 예류에서 거리가 상당했으니 처음부터 히치하이킹은 말이 안되는 방법이었다. 아이의 부모님은 우리와 목적지가 달랐기에 버스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진과스는 광부의 마을이다. 금 채굴이 활발했던 과거에는 현지인들이 살아가던 생기넘치는 마을이었겠지만 현재는 예.스.진.지 투어에 편입되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필수로 방문하는 마을이 되었다. 그러나 솔직하게 볼게 없다. 광부도시락을 먹어보기에도 애매하고 진짜 갱도를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풍경도 없다. 지우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에 잠시 스쳐지나가는 여행자로 생각하는게 좋을 듯 하였다.
셋은 헤어져 여행을 했다가 시간을 맞춰 입구에서 보기로 하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다지 매력적인 곳이 없었는데 그나마 조금 나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것이 멀리보이는 동상이었다. 도착하니 한국인 가이드가 있었는데 귀동냥으로 주워들으니 이 동상이 관우상이었다. 작은 가게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쉬염쉬염 지우펀 구경을 했지만, 역시나 매력적인 곳은 아니었다.
진과스에서 지우펀은 버스를 타면 금방 가는 거리기에 걸어서 가려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꼭 버스타기를 권한다. 수많은 차를 피하고 좁은 길을 빠져나가는 버스 운전기사의 실력을 보는데에 그정도 돈이면 저렴하다. 정말 차들이 닿을락말락 지나간다.
지우펀은 센과 치히로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홍등거리가 유명한데 입구를 찾기가 여간 까탈스러운게 아니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회사 동기가 예전에 왔던 기억으로 겨우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등이 켜져야 아름다운 곳이기에 상점들을 쉬염쉬염 구경 후 맨 위이 계단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어둠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우리들 뿐이 아닌듯 많은 사람들이 아픈 다리를 쉬고 있었다. 30여분을 기다렸다가 하나씩 켜지는 홍등을 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홍등이 가장 많은 거리는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로 엄청난 정체가 시작되어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도 아니기에 눈으로 담는 것으로 만족했다.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 전에 지우펀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서 한 정거장 위로 올라갔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기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 지우펀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다. 창문을 열고 '한정거장 위로 올라가세요' 소리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함께 예.진.지 투어를 한 여자는 잘 맞았다. 내 기준에서 그녀는 여행자였다. 나름대로 여행의 철학도 있어보였고, 자기고집도 있어보였다. 그게 좋았다. 그녀의 숙소는 타이페이 동쪽이었고, 우리는 서쪽이었기에 내일 마지막 관광지인 야시장을 함께 구경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숙소 공동공간에 나가 맥주를 마시는데 한국사람들이 보였다. 남자2명, 여자 1명이었는데 모두 혼자와서 이 곳에서 만난 듯 보였다. 마트를 간다며 나갈채비를 하는중이었는데 일찍 돌아오면 맥주나 한잔 하자고 하였다. 허나 그들을 기다리기에 우리의 하루가 너무나 길었다. 밤 11시까지 기다렸지만 오지 않는 그들을 뒤로 한채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2017. 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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