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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아프리카

케냐 모얄레. #94 에디오피아로 불법입국,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6. 6. 28.

처음 봤다. 사람이 거품을 물고 발작하는 모습을. 장난치는 줄 알았다. 방금 5분 전만 해도 웃으며 피곤하니 한 숨 잔다고 한 사람이었다. 그의 몸짓이 격렬해질 수록 나의 몸은 굳어갔다. 머심장은 뛰지만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서웠다.


멍한 상태를 깨운 것은 와이프의 목소리였다. 나를 붙잡고 1층에 의사를 불러달라며 소리쳤다. 그녀는 어느 새 그의 옆으로 다가가 그의 얼굴과 가슴팍을 있는 힘껏 주먹으로 치고 있었다.

1층으로 내려갔지만 어떻게 설명할지 생각이 안나서 손을 잡고 데리고 올라왔다. 의사는 환자를 보더니 이곳 저곳 체크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지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했다. 의사는 1층으로 뛰어내려가 응급차를 불렀고, 나는 그를 엎고 계단을 내려왔다. 어찌나 초인적인 힘이 나오던지 축 처진 사람을 엎고 내려왔음에도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아직 응급차가 오지 않았기에 호텔 내의 클리닉에 잠시 눕혔다. 곧 차가 왔으나 우리가 생각하는 응급차가 아닌 트럭이 한대 와 있었다. 급해서 일단 이 차를 불렀단다. 물불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정신없이 그를 차에 태웠다.


차를 타고 3분 거리의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병원이라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실했다. 산소호흡기도 없었으며, 그 흔한 X-Ray 촬영기기도 없었다. 도데체 이 곳에 왜 온 건가 싶을 정도였다.

간호사들은 발작을 일으키는 아저씨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미친년들이 분명했다. 이게 어찌 간호사란 말인가. 그들의 눈에는 다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바라 보듯 느긋했으며, 조금은 신기해하기도 하는 눈빛이었다. 이런 사람에게 아저씨의 생명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했다. 무겁고 칙칙한 풍경이 나를 짖눌렀고, 심장의 박동은 줄지 않았다. 아니, 심장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터질 것만 같았다. 키득키득 웃는 간호사들에게 입닥치라 욕하고 쫓아냈다. 있으나 없으나 도움이 되지 않을 것들이었다.


와이프는 아까 머물던 호텔에 우리와 같이 버스 타고 모얄레로 온 일본인 커플도 있다며 찾아봐 달라했다. 호텔 카운터로 뛰어가 물어보니 방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들을 통해 일본 대사관에 연락을 했고, 상황을 설명해주기 보다 직접 보여주는 것이 빠를 것 같아 그들과 함께 병원으로 뛰었다.

상황은 최악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신은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일본에서 간호사였다. 어두웠던 풍경이 조금은 밝아짐을 느꼈다. 의사가 연락했는지 금새 경찰이 왔고, 1명의 의사가 더 우리 병실로 들어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끝에 큰 병원으로 옮기자 했다.


그는 다시 트럭을 타고 차로 약 10분 거리의 병원으로 이동했다. 그 곳은 그나마 X-Ray 촬영기는 있었다. 그리고 간호사들도 경박스럽게 웃지 않았다. 그러나 어쨋든 별다른 방도는 없었다. 그저 X-Ray촬영으로 그의 뼈에는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기다림의 연속이었다.그동안 나와 아줌마는 경찰에게 사건의 경위를 설명했고, 우리의 이름과 국적을 적어갔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병실 밖을 나가니 깜깜했다. 의사들은 더 이상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더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 했다. 그쯤은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2가지의 선택권을 제시했다. 

첫째, 나이로비로 가는 길. 이는 더 좋은 진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도착하는데 까지 시간이 50시간이 넘게 걸린다 했다. 버스로 달려도 25시간인데 환자를 태우면 더욱더 조심스럽게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둘째, 아와사로 가는 길. 의료의 질이 조금 낮아도 약 20시간 정도면 도착이 가능하다 하였다.


당장 급한 것은 의료의 질보다 시간이었다. 의사들 모두 아와사를 추천했다.

문제는 우리였다. 우리 모두 비자가 없는 상태이며, 밤이 늦었기에 입국심사대 역시 문을 닫아서 긴급비자를 발급 받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 무엇도 우리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이었다. 경찰은 긴급상황이니 국경을 넘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응급차에 홍콩 아저씨를 태우고 병원비를 지불하는 동안 숙소로 뛰어가 부부와 내 가방을 들고 왔다. 일본인 부부는 자신들의 짐은 상관없다며 일단 에디오피아로 함께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 5명은 아무런 비자 없이 칡흑같은 어둠 밑에서 에디오피아로 다시 입국했다.


2016. 0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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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9 - [지구별 여행기./세계일주, 아프리카] - 에디오피아 모얄레. #95 돈과 사람, 그들은 돈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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