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게 귀찮았다. 거의 봐왔던 모든 풍경이 어디선가 봐왔던 풍경이었다. 여행의 끝이 온 듯 하였다. 과거의 일기를 보더라도 점점 지쳤다, 귀찮다라는 말이 늘어났다. 약 9~10개월간의 여행이 이정도인데 2~3년씩 여행하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기도 했다. 그들은 정말 대단한 여행 감수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화창한 날씨에 신발이 바싹 말라 기분은 좋았다. 아마 여행중에 처음으로 신발을 빨은 듯 하였다.
내일 월드컵 결승전을 보고 바로 바뇨스를 떠나 키토로 갈 예정이었기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네 중에 하나인 세상의 끝 그네를 타러 가기로 했다. 역시나 점심식사는 항상 먹던 식당안의 조그마한 좌판에서 해결했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작은 간판이 없었더라면 이 곳이 그네로 가는 길이 맞나 싶었다. 걷는 길에는 단 한명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정도 산길을 오르니 바뇨스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매일 식당 근처에만 어물쩡거려 굉장히 마을이 작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컸다. 물론 객관적으로 아주 작은 마을임은 분명했다.
여유로운 풍경들을 지나치다보니 산 중턱에 거대한 초원지에서 살고 있는 집이 나타났다. 울타리로 둘러 쌓여있는 저 길을 가로지른다면 좀 더 편하게, 좀 더 빠르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상당히 오랜시간동안 걸어서 그네 앞에 도착했다.
딱 사진에서 보던 만큼의 규모였다. 쓰러져가는 간이 매점에서는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마시고 있었고 몇몇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 바빴다.
잠시 줄을 서서 그네에 앉아 몇 번의 구름질을 한 후 그네에서 내려왔다. 그네를 다이아몬드로 도배한 것도 아니고 그네는 그저 그네일 뿐이었다. 뒤에서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는 줄을 무시하기에는 더더욱 눈치가 보였다.
그네를 타고 저 멀리 밖으로 나갔을 때의 공기는 상쾌했다.
근처 여행객에게 사진 몇 장을 부탁하고는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방에 앉아 혼자 밀린 한국 예능 영상을 보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뒹굴거리며 책을 읽었다.
마치 주말의 집에서 뒹굴거리는 한량 같았다.
2014.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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