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3명 모두 곤히 잠들어있기도 했으나 그것보다 우비를 꺼내는게 너무나 귀찮았다. 그냥 비를 맞으며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내내 도통 체력이 회복되지가 않는다 생각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체력 회복 방해를 한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고 있었다.
병원 앞으로 가니 이미 대사관 직원이 나와있었다.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만나 한국말로 이야기했다. 차에서 흘러나오는 한국의 음악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9시부터 근무 시작이지만 러시아워를 피해 일찍 대사관에 도착했다.
한시간쯤 기다리니 정실장님이라는 여직원이 나와 사건의 경위서를 적어달라했다. 최대한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고 사건의 경위를 담담히 적어나갔다. 워낙 복잡한 이야기라 A4용지 두장을 빼곡하게 적은 후에야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됐다. 실장님에게 경위서를 주고 기다리는데 몇번을 찾아와서 헷갈리는 부분을 확인해갔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이번에는 서기관님이 찾아왔다. 그는 먼저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냈다. 그의 눈빛은 상당히 신뢰감이 있었으며 모든 이야기를 침착하게 들어주었다. 그에게 경위서를 근거로 상세하게 다시 설명했다.
약 11시쯤 에디오피아 외교부에 제출할 레터가 완성되었다. 잠시 전화를 빌려 일본부부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아직 레터를 받는 중이라 하였다. 작성이 끝난 후 시내에 있는 입국심사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주에디오피아 대사관측에서는 하루동안 내가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운전사와 차량을 지원해주었다. 최대한 일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입국심사대로 달렸지만 차가 막혀 결국 점심시간에 걸렸다. 서기관님이 같이 점심을 먹자며 불러 다시 대사관으로 돌아갔다. 한인 식당으로 가서 1년 반만에 갈비탕을 먹었다. 만감이 교차하며 눈물이 날뻔했다.
입국심사대로 가기 전 외교부로 향했다. 모든 것은 레터를 읽어보는 것으로 진행되었고, 중간중간 담당자가 이해 못하는 부분이 발생할 때마다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쉽고 간략하게 대답했다.
이 곳에 와서 느낀 것이지만 이 문제는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외교부 내에서도 이곳 저곳을 가서 심사를 받아야만 했으며, 도장을 받고 영수증을 받고 다시 그 서류는 어디론가 갔다가 돌아왔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다시 어딘가로 끌려가서 기다렸다가 또 다시 인터뷰가 진행되는 등 상당히, 아주 상당히 복잡했다.
웃기게도 중간에 정전이 되는 바람에 잠시동안 모든 업무가 마비되었다. 한나라의 외교부 건물이 정전되다니. 얼마나 전력난이 심각한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건물도 허름했다.
우여곡절 끝에 외교부에서 새로운 레터가 발급되었다. 다음은 입국심사소였다. 그 곳에서 일본 부부를 만났는데 외교부 도장이 없어서 서류 통과에 실패했단다. 결국 그들은 이 날 비자 신청을 실패했다.
4시쯤 되어서야 겨우 입국심사소에서 비자처리가 완료되었고 이틀 후에 다시 오라는 확답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에디오피아를 떠나 케냐로 가야만 했기에 이제는 케냐 대사관을 가서 불법출국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이미 5시를 바라보는 시간이었기에 오늘의 일정은 이 곳에서 끝내고 내일 혼자 케냐 대사관을 가기로 결정했다.
도와준 운전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서기관님과 실장님 두분께 연락을 드려 비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 것에 감사를 전했다.
병원으로 돌아가 일본 부부와 숙소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Hiroko아줌마는 오늘 병원에 있겠다 이야기했다. baro호텔로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외교부에서 작성해준 레터를 보여주니 저렴하게 방값을 받았다. 돈을 내고 싶어도 수중에 돈이 없었다. 급하게 환전한 20달러로 숙박비를 겨우 지불할 수 있었다.
호텔 방에 누우니 우리 모두 Hiroko 아줌마가 걱정되었다. 병원으로 돌아갔다.
병원에서 우리는 또 한번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했다. 한 아시아인이 응급실로 한명을 업고 들어왔는데 업힌 사람은 물론 업은 사람까지 피 범벅이었다. 상황을 들어보니 우리가 묵던 호텔 근처(이 곳이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와 같은 곳이다)에서 술에 취한 흑인이 자신들을 불렀는데 친구가 무시하고 길을 가다가 맥주병에 머리를 맞았단다. 사실 말을 섞으면 위험할 수 있기에 욕을 하건 추행을 하건 그 자리를 빨리 피하는게 답이긴하다.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재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도저히 미니버스를 타고 올 자신이 없었다. 숙소 바로 앞까지 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나중에 다시 병원에 갔을 때 그를 만났는데 그의 친구 목숨은 살렸지만 오른쪽 눈을 실명했단다.
샤워를 끝마치고 숙소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이렇게까지 하면서 여행을 지속해야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2014.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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