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사랑 숙소는 금요일마다 아사도 고기 파티를 진행했다. 이른 아침부터 매니저가 아사도 파티에 참석할 인원을 파악하길래 내 이름도 한켠에 적어 놓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생활도 얼마남지 않았기에 시간을 내어 레꼴레타 무덤지역을 다녀올까 하였지만 귀찮아서 숙소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기 전까지 아비타 무덤은 볼 수 없을것 같았다.
저녁 무렵이 되니 사람들이 속속 복귀하기 시작했고, 쌀이나 파스타를 들고오던 사람들의 손에는 맥주나 와인이 한가득이었다. 자기 술, 남의 술 가리지 않고 한꺼번에 꺼내놓고 다 같이 마셨기에 나 또한 맥주 4병을 사들고 왔다. 옥상 한켠에 사람들이 먹은 술병을 쌓아놨는데 매니저가 이거 팔아서 맥주로 바꿔먹으라며 나를 주었지만, 나보다 더 가난한 여행자에게 주라 이야기하며 거절했다.
5시쯤 사장님이 직접와서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파티를 위해 가져온 고기의 양을 보니 배가 터질때까지 먹어도 다 못 먹을 양이었다. 몇 주전부터 물가가 요동을 치면서 오르기 시작해 원래는 50페소의 파티 참석 금액을 70페소로 올렸다며 미안해하셨다. 먹는 양과 질을 생각해봤을 때 70페소는 돈도 아니었다. 잡일을 도와주며 시간을 보내니 어느새 7시가 되었고 식탁위에도 하나둘씩 음식이 준비되었다. 매니저와 그의 남자친구 마크는 두시간동안 피자와 샐러드까지 준비해주었다. 따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으니 몸을 움직여 그들을 도와주는건 당연지사였다.
말그대로 미친 술판. 이 곳에 있는 사람 모두 술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술병은 급속도로 쌓여나갔다. 흥이 최고조로 올라올 무렵 술이 취하신 아저씨 한명이 입을 열면서부터 분위기는 급격하게 냉각되기 시작했다. 그는 약 40대의 남자였는데 여행은 나름 오래한 듯한 행색이었다.
당시 케빈형의 아버지는 아르헨티나에서 레스토랑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는 갑자기 케빈형에게 아르헨티나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한 꼴통이라니, 국가를 버린 못된 사람들이라는 빗나간 애국심으로 거친 말을 시작했다.
마크에게는 눈에다 갑자기 미스트를 뿌려 기분을 상하게 했고, 한사람 한사람 아주 꼼꼼하게 돌아가면서 쓸데없는 말을 남발했다. 나에게는 굳이 뭐하러 그렇게 여행을 길게 하냐며 전형적인 꼰대의 언어를 폭풍같이 몰아쳤다. 한 두명씩 자리를 피했고, 어느새 아저씨를 혼자두고 모두 밖에 나와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모두 그 아저씨의 이야기 밖에 하지 않았다. 투명한 창으로 보이는 그를 보니 홀로 처량해보였다. 우리가 이러지말고 그냥 술김에 한말 같으니 아무일 없는 것처럼 놀자 하니 모두가 착한 사람이라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 왁자지껄하게 자리에 착석했다. 아저씨는 자신의 말이 잘 못 했다는 것을 눈치챈건지, 술이 취한 건지,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는 것을 느낀건지 어느새 조용히 옥상에서 내려갔다.
자진해서 불청객이 되어버린 그가 조금은 안타까웠다.
11시쯤 남자 한명과 여자 한명이 숙소로 놀러왔다. 여자는 미인이었지만 굉장히 강해보이는 캐릭터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 계획으로 왔다하였지만 솔직한 그녀는 취업 도피성이 80%라며 실없이 웃었다. 남자 역시 장기여행자였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매력에 빠져 집을 구하고 이 곳에서 몇달간 지내다가 여행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 하였다. 둘은 이 숙소의 머무는 사람이 아니지만 집을 구하기 전에 이 곳에서 2~3주간 지냈기에 아사도 파티에 참여해 노는 것에 대해 누구도 뭐라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 새벽에 돌아갈수는 없으니 내일 아침 첫차를 타고 돌아갈 것이라 하였는데 밤새 놀아달라하였다. 술을 새벽 3시까지 먹으니 나의 체력은 바닥이 났다. 입에 술 한모금 먹지 않았지만 4시가 되니 이는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미안하다 이야기하고 침대로 돌아가 기절하듯이 쓰러졌다.
2014.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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