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가 미쳤나보다. 오후 4시에 일어났다. 엘 칼라파테행 비행기표를 진작 사놓은게 다행이었다. 어제 하루종일 쇼파에서 뒹굴거렸는데 오늘도 그러기에는 하루가 아까웠지만, 이 시간에 나가 무언가를 하기도 애매했고 숙취도 심했다.
배가 고파 밥을 해먹고 있는데 숙소의 메이트들이 밤에 아르헨티나 클럽을 가는게 어떠냐고 하였다. 도저히 움직일 체력이 되지 않았지만 지겹도록 꼬시는 그들에게 넘어가 저녁에 같이 출발하기로 하였다. 내심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클럽이 궁금하기도 하였다. 어제 밤새 술을 마신 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역시나 숙취가 심하다며 회피를 하였고, 그나마 조금 먹은 누나를 꼬셔 넷이 가기로 약속했다.
밤 10시쯤 택시를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가장 큰 번화가로 들어섰다. 우리가 가기로 마음먹은 클럽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가장 고급 클럽이었다. 간단히 술을 한잔하고 들어가자 하여 근처 맥시코 음식점에서 데킬라와 타코를 먹은 후에 슬슬 클럽앞에 줄을 섰다.
줄이 길게 서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흥분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다짜고짜 여권검사를 하였다. 누나는 남미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르헨티나에 방문할때마다 종종 클럽을 왔을 때 단 한번도 이런적이 없었다며 직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들어가는데에는 실패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클럽을 갔는데 창피하게도 내가 입장이 불가하였다. 복장불량이었다. 그냥 편한 복장을 입고 갔는데 바로 짤려버린것이었다. 완전 창피한 상황이었지만 내 자존심보다는 기분이 좋게 놀러온 그들에게 찬물을 뿌린 것 같아 너무나 미안했다. 분위기가 다운된 것은 당연했다.
내가 죄인 모드로 위축되어 있으니 그들이 먼저 근처에 좋은 음악이 나오는 곳이 있다며 좋은 바로 안내했다. 데킬라 샷을 한잔씩 마시고 와인을 마시면서 춤을 추는데 남자와 여자가 사라졌다. 어디를 갔지 두리번거리는데 둘이 한쪽 구석에서 폭풍같은 키스를 시작했다. 나와 한명의 누나는 서로 눈을 껌뻑거리며 이게 무슨상황인가 싶었다.
남자의 리드로 춤을 추는 탱고는 작은 허리의 움직임, 몸의 템포, 손과 발의 방향을 느끼기 위해서 서로간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 춤이다. 서로의 몸을 밀착하여 작은 호흡이라도 놓치지 않기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는 이 춤을 서로 3주간 함께 쳐왔으니 자신들도 모르게 사랑이 싹터올랐나보다. 둘의 모습에서 술에 취했다는 느낌은 없었으나 점차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춤이란 말인가. 탱고는 정열과 사랑의 춤이 확실하구나'
나와 누나는 고민했다. 여기서 둘을 위해 자리를 피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는 표정으로 기다렸다가 함께 돌아가야하는 것인가.
딱 한번만 술집 안을 찾아보고 발견하지 못하면 그대로 자리를 피해 먼저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은 멀지 않은 술집 구석에 서서 서로를 안은채 춤을 추고 있었다. 못 본 척하고 자리에 앉아 누나와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그들이 먼저 돌아왔다. 서로 언제 그렇게 취했는지 얼굴이 벌게진게 보였다. 네명 모두 특별한 말없이 술집을 나와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안은 고요했다.
2014. 0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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