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사파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가장 큰 문제는 샤워. 꼭, 떠나기 전 샤워를 하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형님에게 연락을 하여 떠나기 전 샤워를 할 수 있을지 물어보니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든든하게 조식을 먹고 여유있게 휴식을 취했다.
약 10시쯤, 형님에게 문자가 왔다. 주말이 되면서 숙박비가 비싸져 아무래도 숙소를 옮겨야 할 것 같다했다. 나도 오후 일정을 진행하기 전, 형님과 어떻게 연락할지 이야기를 해야했기에 우리는 사파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광장 주변은 현지인들로 넘쳐났다. 하노이의 더운 날씨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온 듯 했다. 큰 축제가 열리는 듯 길 곳곳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히 플랜카드를 걸고 있었다. 숙소에 자리가 없을만 했다.
11시가 되니 멀리서 형님이 슬슬 걸어왔다. 숙소를 새로 구하는 사람이 짐이 없었다. 숙소를 먼저 구하고 짐을 가져올 예정이란다. 왔다갔다 두번하는게 귀찮으니 잠시 무겁더라도 들고 다니는게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전적으로 그의 개인적 스타일이기에 간섭하지는 않았다. 나는 버스티켓을, 형은 숙소를 알아봐야했기에 1시간 반 후 이 곳 광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어제 한국 커플을 호스텔에 데려다주면서 봤던 카멜 버스 회사로 향했다. 가면서 중간중간 여행사들을 들러봤지만 하나같이 불만족스러운 가격이었다.
역시나 카멜 버스회사에서 부른 버스티켓이 가장 저렴했다. 바로 구매를 할까 했지만 형님의 일정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오늘 숙소를 구하지 못하면 나와 함께 하노이로 갈 것이라 했기에 일단 가격만 확인하고 그와 상의 후 결정하기로 했다. 다시 만난 그는 숙소를 구하지 못했다. 나와 함께 카멜 버스 회사로 움직였다. 그는 가면서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더니 결국 내일 가는 버스티켓을 구매해야겠다 했다. 낮의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의 매력을 느끼고 싶단다. 혼자 떠나는 오늘 밤 버스표를 구매했다.
버스표를 구매하고 우리는 다시 헤어졌다. 연락은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버스가 밤 9시 출발이였기에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이럴 땐 트래킹만한게 없었다. 걸어서 타반 마을까지 다녀오는게 어떨까 싶어 짐을 메고 출발했다.
원래의 목표는 라오차이 마을까지였다. 하지만 가다보니 진정한 사파의 매력을 느끼기 충분한 길이었다. 걷는 길 오른쪽으로 끊임없이 순박한 풍경이 펼쳐졌다. 지루해질만하면 작은 가게 앞에 자리를 잡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기둥에 묶여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짖는 개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집 안에서 세어나오는 큰 웃음소리, 카드게임을 즐기고 있는 남자들, 짐을 한보따리 싣고 휙휙 지나가는 오토바이 배달부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풍경에 다채로움을 더했다.
원래 목표였던 라오차이 마을에 도착하니 2Km만 더 가면 타반마을을 갈 수 있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이왕 이렇게 된거 더 걷기로 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잠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자전거를 탄 귀여운 여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현지인인듯 보인 그녀는 나에게 '타반?, 타반?' 이라며 계속 물어봤다. 나는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Yes 타반, Yes 타반'이라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 고개를 흔들며 '타반?, 타반?이라 다시 물었다. 다시, 'Yes 타반, Yes 타반' 이라 말하는 기묘한 대화가 지속되었다. 그러다 이번엔 '바이크, 바이크'라 이야기했다. 어쩌라는 건지...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자전거를 타고 타반마을로 향했다. 참 이상한 대화라 생각하고 10여분을 가는데 '아! 타라는 거였구나!' 싶었다. 눈치가 없으면 몸이 고생이다.
가는 길 내내 오토바이는 나를 보면 멈췄다. 그러고는 타반을 가냐며 태워준다 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그러나 6~7Km를 이미 걸어왔는데 오토바이를 타기는 아쉬웠다. 미친 듯이 힘들었지만, 근성으로 8Km를 걸어 타반마을에 도착했다. 길들지 않은 신발때문이기도 했다.
마을 안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파에서 투어가 있는지 미니벤이 몇 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처럼 혼자 온 사람에게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룹 관광객들에게 붙었다. 다행히도 편하게 마을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바로 나로부터 시작이었다. 3시간을 걷는 동안 팔이 익어버렸다. 너무 타서 햇빛을 1분만 받아도 팔이 너무 쓰라렸다. 긴팔 하나 없이 1500m에서 직사광선을 받은 내 탓이었다.
돌아갈려니 자신이 없었다. 팔이 너무 아팠다. 그늘에 앉아 피부를 진정시킨 후 짐이 있는 오토바이를 노려 가는길에 태워달라 하는 계획을 세웠다. 마을 입구에 서서 '사파~ 사파~' 소리를 지르니 다행히 자리에 섰다. 5000동 한장을 꺼내주며 손에 쥐어주니 'Two'라고 소리쳤다. 음... 2만동을 달라는 건지, 5000동 두장을 달라는 건지 헷갈렸다. 밑져야 본전이니 5000동을 한장 더 쥐어주고 표정을 살폈다.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꾸깃꾸깃 주머니에 돈을 넣는 동안 말을 바꾸기 전에 오토바이 뒷자석에 올라탔다.
3시간을 걸어간 거리를 10분만에 도착했다. 문명의 위대함을 느꼈다. 순식간에 사파에 도착했으니 그에게 감사 인사를 꾸벅하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고된 걸음을 해서 그런지 발이 너무 아팠다. 체력도 예전에 비해 확실히 떨어졌음을 느꼈다.
형님에게 연락을 하여 호텔 로비에 있다고 하니 형은 자신도 이 곳 숙소로 옮겼다면서 지금 로비로 나오겠다 연락이 왔다. 짐을 모두 싸들고 그의 방에서 편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약 3시간 동안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함께 맥주를 마시고, 멀리 산을 보며 사파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는 내가 시계가 없고, 핸드폰 시계는 계속 오류를 일으켜 시간을 볼 수 없다하니 자신의 손목에 찬 시계를 기꺼이 풀어 나에게 주었다. 안 받으려 했지만 너무나도 필요했고, 형님도 기분 좋게 받아달라 말씀하셨기에 감사하게 시계를 받아 손목에 걸었다.
너무나 행복한 샤워를 마치고 우리는 헤어졌다.
하노이보다 훨씬 시원한 날씨 때문에 좋기도 했지만, 사파에서 참 기분 좋은 인연들과 소통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고 떠난 곳이었다.
돌아가는 길 마을에 열린 축제를 잠시 구경하며 카멜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다시, 살인적인 더위의 도시 하노이로 향했다.
2016.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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