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아시아

라오스 팍세. #14 길거리 헌팅 당하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5. 7. 19.

어제 형과 맥주를 한잔 하며 인터넷을 통해 방콕행 버스가 있는 다른 정류장의 위치를 찾았다. 부스스하게 일어난 형한테 걸어서 다른 버스정류장을 가보자 하니 형은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편하게 대행사에서 사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쓸데 없는 똥고집이 여기서 나왔다. '여기만 딱! 가보고 아니면 돌아와서 바로 대행사로 가요' 말하니 형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가자했다. 숙소 근처에 있는 대행사를 지날 때 왠지 형의 발걸음이 더욱 무거워보였다.

대행사를 지나쳐서 약 5km정도 떨어진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어제 갔던 길을 따라 가다 갈림길이 나왔을 때 어제와 다르게 직진을 했다.

 

 

 

차가 매연을 내뿜고 해가 내리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거리를 걸으니 땀이 줄줄나고 발은 더러워지고 코도 텁텁한게 힘들었다. 대행사비 몇 푼 아까워 이 고생 중이다. 하지만 이미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왔다. 곧 도착한다는 생각을 참아 냈다.

 

지도 어플을 어제 인터넷에 표시된 곳에 도착했다는 표시를 나타냈다.

허나 아무것도 없었다. 어제와 같은 상황이었다. 형한테 미안하고 고생해서 여기까지 온게 짜증나서 근처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몇 달전 다른 곳으로 옮겼다했다.

허탈했다. 혹시나 걸어갈 수 있는지 물어봤지만 걸어가기엔 멀단다.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늘어진 오징어마냥 몸이 축 처진 채로 다시 팍세 시내로 돌아왔다. 형과 나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대행사 중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아 표를 샀다. 내일 아침 7시 출발표였다. 형은 그제서야 얼굴이 조금 환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골목코너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Come on, Come on~'

 

그 사람들을 제외하고 사방팔방 천지를 봐도 아무도 없었다. 우리외에는. 분명히 우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뭔일인가 하고 가보니 그 곳에는 라오스 아저씨4명과 외국인 4명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 물어보며 같이 앉아 맥주를 먹자 했다.

 

말 그대로 길거리 헌팅 당했다.

 

나야 남는게 시간이니 좋다며 의자 하나 가져와서 앉았지만 형은 별로 내키지 않는지 숙소로 먼저 들어갔다.

앉아서 가만히 돌아가는 꼴을 보니, 이탈리아 사람이 팍세에서 2년정도 살다 이번에 레스토랑을 개업했는데 라오스 아저씨들이 축하 겸 술 한잔 할 겸 온 것이었다.

이탈리아 요리사는 그렇다 치고 나머지 외국인은 무슨 관계냐 물어보니 나처럼 다들 헌팅 당해서 온 사람들이란다. 가히 헌팅의 제왕, 세렝게티의 맹수와 같았다. 어쨋든 외국인들은 라오스 아저씨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저 라오스 아저씨들은 무슨 관계냐 물어보니 그냥 아는 동네 아저씨들인데 뚝뚝 운전기사란다. 옆을 보니 뚝뚝 4대가 줄지어 서있었다.

 

대충 관계 정리가 되었으니 나도 술이나 먹고 놀잔 생각으로 내가 먹을 맥주를 사러가니 라오스 뚝뚝 아저씨들이 뛰어왔다. 그러곤 내 맥주병을 뺏던니 자기가 계산했다. '이거 뭐지...?' 순간 내가 헛 것을 보고 있나? 꿈을 꾸고 있나 싶었다. 내 평생 돈을 더 내라는 뚝뚝 아저씨들만 봤지 돈을 내지 말란 뚝뚝 아저씨는 처음봤다.

레스토랑을 개업한 이탈리아 요리사가 오더니 오늘은 툭툭 기사들이 나에게 맥주를 사기로 한 날이라며 너는 그냥 재밌게 놀고 맛있게 먹고 가면 된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뚝뚝 아저씨는 내 맥주와 함께 한박스의 맥주를 더 샀다.

왠지 미안해서 길 건너편에 가 땅콩을 사왔다.

 

 

 

 

정말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나를 제외하고 미국인 한명, 네덜란드인 한명, 이탈리안 두명이었다.

미국인은 중국에서 영어 교사를 하다 그만두고 1년동안 여행을 하잔 생각으로 중국에서 라오스를 왔지만 라오스의 매력에 빠져 6개월째 라오스에서 보냈단다. 남은 6개월도 라오스에 있다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네덜란드인도 비슷했다. 3개월 정도의 아시아 여행 중 라오스가 좋아 남은 여행기간 모두를 라오스에서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했다.

이탈리아 요리사와 다른 한명의 이탈리아인은 친구사이였다. 요리사의 친구는 10일정도 시간을 내어 친구를 보러 라오스에 잠깐 온 것이라 했다.

그들은 나의 여행 계획에 대해서도 궁금해했다. 팍세에 오래 머무를 것이냐 물어보며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했지만 내일 떠난다 이야기하니 실망했다.

 

술은 술을 부르고 계속 해서 술을 마셨다. 정말 모든 술값은 뚝뚝 아저씨들이 계산했다.

 

 

 

뚝뚝 아저씨들은 술을 마시면서도 계속 영업을 했다. 중간중간 손님이 오면 술을 먹다 말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 곳에 있는 사람중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뭐 취한 사람이야 그렇다 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자기 눈 앞에서 술을 먹다 운전대를 잡는 사람의 툭툭을 타는 라오스 승객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듯 탔다.

중간중간 몇 번 운전을 더 하더니 더 이상 운전을 못하겠다며 오늘 뚝뚝 장사는 여기까지란다.

한참은 전에 접는게 정상인데 말이다.

 

 

 

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 온 사이 외국인들끼리 작은 말싸움이 일어났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면 알아들을 수 없기에 집중해서 들어보니 '어느 나라가 더 자유롭냐는 거였다'. 물론 여기서의 자유는 '언론의 자유', '개인의 자유' 따위가 아닌 '마약과 섹스'다. 한국은 할 이야기가 없으니 가만히 있었다.

 

가장 치열하게 싸운 두 나라는 역시 미국과 네덜란드였다. 미국인은 '미국 북서부의 가면 편의점에서 대마를 팔고 성문화는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장황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인은 길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였다. '나 암스테르담 출신이야'. 네덜란드의 판정승이었다.

 

 

 

술을 많이 먹어서 슬슬 몸이 힘들어졌다. 뚝뚝 아저씨들도 어디론가 한 두명씩 사라졌고 자리의 주인공인 이탈리아 요리사 아저씨도 없어졌다. 미국인과 네덜란드인은 또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이제 그만 자리를 일어나겠다하니 잘 가라며 다음에 또 한 잔 하자했다. 내일 떠나지만 알겠다며 다음에 보자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깊게 한숨 잤다. 다시 일어나니 저녁시간.

숙소 뒤편에서 이상한 방송이 나왔다. 형도 아까부터 거슬린다며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했다. 저녁도 먹을 겸 그 곳도 가볼 겸 밖으로 나왔다. 저녁을 먹고 들려보니 그 곳은 사원이었다. 불교사원은 아닌 듯 보였고 중국식 유교나 도교 사원같은 느낌이었다. 한창 예배중이라 바로 나왔다.

 

 

 

 

13. 12. 27

 

다음이야기

2015/07/21 - [여행/세계일주, 아시아] - 세계일주 사진. #2 라오스 방비엔, 팍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