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비니를 떠나기 전 꼭 가야할 곳이 있다. 불교의 가장 중요한 성지, 기원전 600년 전 아기부처가 탄생한 곳, 마야데비 사원이다.
가방을 대성석가사에 맡기고 마야데비 사원을 들렸다 다시 돌아오기에는 소나울리행 버스를 시간에 맞출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은 걸리적거리긴 하겠지만 가방을 메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대성석가사를 나와 마야데비 사원쪽으로 걷다보면 평화를 기원하며 365일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그 곳을 지나쳐 조금 더 가면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귀여운 아기부처상을 만날 수 있다.
며칠동안 찔끔찔끔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이 게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마야데비 사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입장료를 지불하면서 가방을 맡아 줄 수 있는지 물어보니 자기네들이 맡아주겠다며 놓고 가라했다. 한결 가벼워진 어깨로 마야데비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아기부처는 태어나면서 사방으로 여섯 발자국의 걸음(여섯 윤회 :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 후 윤회를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위대한 7번째 발자국을 걸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외쳤다.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
하늘과 땅을 통틀어 내가 가장 존귀하다.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0 세상 모든 사람 괴로움에 빠졌으니, 나 이를 편안케 하리라.
그는 부처를 믿으라 하지 않고 수행자 자신을 믿으라 하였고,
그는 깨우침을 알려주지 않고 깨우치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며,
그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하였다.
그 어느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절대적 자유'
오죽하면 살불살조라 하지 않겠는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해탈은 이토록 엄격하다.
그렇다면 우린 죽을 때 까지 해탈의 길로 갈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해탈의 길로 가고 있다.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 아침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 집에서 놀고 있는 백수, 늦은 저녁 가게를 오픈 하는 술집 사장, 밤새 아픈 환자를 간호하는 간호사. 다양하다.
꼭 벽을 보거나 말을 하지 않아야만 해탈의 길로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순간순간 모든 행동이 해탈의 길로 가고 있음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 우리에게 그 어떤 것에 대하여 하나의 길만 강요한다면 그것은 '절대적 자유'의 길이 아니다.
해탈에 오르는 길. 그것이 쉬웠다면 이 땅에 내려올 때부터 '하늘과 땅을 통틀어 내가 가장 존귀하다.'라 외친 세존이 해탈을 하는데 6년씩이나 걸렸을까. 아마 우리는 평생 해탈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허나 해탈에 오르지 못하여도 좋다. 그보다 위대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한걸음, 그리고 다른 한걸음이다.
그리고 언젠가 도착할 것이다.
마치 아기부처가 7번째 발자국을 내딛었을 때처럼.
마야데비 사원 옆의 아쇼카석주와 아기부처가 태어났다는 나무, 태어났을 때 씻겼다는 곳을 한바퀴 구경하고 밖으로 나왔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곳이었다. 입구에 세워진 가방을 다시 들쳐메고 룸비니 국제사원지구를 떠났다.
버스를 타고 얼마 걸리지 않아 소나울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몇 명의 릭샤꾼들이 다가왔다. 나는 어차피 밤 버스를 타고 바라나시로 넘어갈 생각이었기에 시간여유가 많았다. 릭샤꾼들을 물리치고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2014. 0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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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4 - [여행/세계일주, 아시아] - 세계일주 사진. #6 네팔 카트만두. 룸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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