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감자 몇개를 삶았다. 샤워를 하고, 핸드폰을 잠깐 만지고 있으니 감자게 알맞게 익었다. 새벽 6시에 출발하는 와라즈 69호수 트래킹을 위해 배를 든든하게 채워놔야만 했다.
버스가 아침식사를 위해 작은 식당에 들른다고 알고 있었지만, 왜인지 비쌀거 같고, 사진들을 보니 그다지 맛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점심에 배가 고플것을 대비하여 간식으로 먹을 바나나와 식빵들을 가방에 넣고 숙소를 나왔다.
간이 식당에 들르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약 3시간 30여분정도를 달리니 트래킹의 출발점에 도착했다. 약간의 평평한 지면에 내려주었는데 트래킹할 앞쪽의 멋진 산세가 눈에 들어왔다.
가이드의 말로는 약 3~4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하였다. 작은 버스를 타고 트래킹을 시작하니 이곳이 해발 3,000미터 중반의 고지대라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다 세상에서 가장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는 말들을 보니 동네 뒷산에 오르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을 배경으로 가뿐하게 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으로 보던 에메랄드빛의 호수가 보였다.
'뭐야. 벌써 끝인가... 사진하고 너무 다른데...'
사진과 현실의 격차를 한두번 겪은게 아니기에 순간 착각을 했지만, 이 작은 호숫가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이 모두가 터벅터벅 자기의 길을 걸어갔다. 그럼 그렇지. 여기는 69호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호수였다.
만일 우리나라였다면,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가 호들갑을 떨 폭포가 수십여개 보였고, 뒤에 설산을 배경으로 이름 모를 노란색, 보라색 꽃이 만발했기에 풍경의 아름다움에 취해 올라가는데 갑자기 길이 가파라지기 시작했다.
69호수의 위치는 4,669m에 존재하기에 69호수로 불리는데 3,000미터 중반부터 시작한 트래킹이 왕복 4시간정도 소요된다하였으니 분명히 어디선가 단숨에 고도를 올려야한다는 사실을 인지했어야했지만, 느슨한 마음으로 한 트래킹에서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리가 없었다.
슬슬 숨이 차고 머리가 띵했다. 감자 3개가 오늘 먹은 전부였기에 공복으로 인한 격한 배고픔이 느껴졌다. 식빵과 바나나를 몇개 먹었으나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지루할정도로 가파른 길을 계속 따라올라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왠지 이 고개를 넘은 69호수가 보일것 같은데 하는 희망고문이 더욱 힘들었다.
약간의 두통과 함께 가파른 길을 넘으니 느낌상, 시간상, 거리상, 69호수 앞에 도착했음을 직감했다. 동영상을 찍으며 걸어가는데 시야에서 에메랄드 빛의 무언가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보였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걸음이 빨라졌다.
절경이었다. 69호수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중후한 회색의 암벽뒤로 보이는 새하얀 설산이 69호수의 아름다움을 100여배는 증가시켰다. 색의 대비가 확실하니 단연코 에메랄드빛의 69호수를 압도적인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다.
기념사진을 찍지 않는 나조차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사진을 부탁했다. 물론 서양놈들 사진 정말 드럽게 못 찍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호수의 수평선 좀 맞춰주면 덧나나...
멋진 호수의 전경을 보면서 쉬는데 문뜩 호수의 반대편 모습이 궁금했다. 그리 크지 않은 호수이니 걸어서 반대편으로 갈 수 있을듯 하였다. 가방을 챙겨 호수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으니 금세 반대편에 도착했다.
나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 많았는지 작고, 큰 돌탑들이 있었다. 나 또한 근처의 돌들을 모아 큰 돌탑을 만들고 하산을 시작했다.
원래 트래킹이란 등산보다 하산이 위험한 법이고, 잘 못했다가는 무릎이 아작나는 고통을 겪을 수 있기에 만전을 기하며 내려왔다. 두통은 조금씩 가시고 있음이 그나마 큰 위안거리였다.
내가 일찍 돌아온 편인지 한참동안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약 3시 50분쯤 마지막 사람을 태우고 와라즈로 출발했다.
힘들었던 고산 트래킹이었기에 무리하지않고 마지막 페루의 밤을 보냈다. 내일은 기나긴 에콰도르 바뇨스까지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2014. 07.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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