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일정이 꼬였다. 내가 쉬는 3층에서는 와이파이가 되지 않기에 아침을 먹는 도중 일행들에게 나갈 때 연락을 달라는 짧은 메세지를 하나 남겨놓고는 다시 3층에서 쉬었는데 그 사이 연락이 와있었다.
어차피 서로 만나기 힘들 것 같았기에 오늘은 여유있게 움직이자는 생각으로 점심을 먹고 나서야 그랜드바자르로 향했다.
그랜드바자르까지는 걸어서 갈만한 거리이기에 발길이 가는대로 걸었다. 그러다 길을 잃었다. 그랜드바자르 근처인 것 같기는 한데 상점은 보이지 않고 철물점들과 전자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들어갔다. 관광객도 몇명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집션 바자르에서 조금 외곽인 듯 하다. 거리를 돌아다니다 7리라에 밥, 수프, 케밥, 샐러드, 빵, 후식을 주는 가게를 발견하고는 저녁식사는 이 곳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조금 더 돌아다니니 시장이 나왔는데 그랜드바자르가 아닌 이집션 바자르였다. 골목은 좁은데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가게 안에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사람들이 돌아다녔다. 기념일날의 명동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기에 최대한 빨리 밖으로 빠져나오니 모스크 하나와 신사가지, 구시가지를 이어주는 갈라타 다리가 보였다.
시간이 여유로웠기에 모스크를 들어가봤지만 블루 모스크만큼의 위용이 나오지 않아 오래 구경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다리 근처에는 페리가 운행하고 있었다. 1시간 30분 정도의 투어 시간동안 10리라 밖에 하지 않았으니 거진 공짜나 다름없었지만 내일 일행들과 다 같이 페리를 타고 관광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하에 내일의 일정으로 미뤘다.
이스탄불의 모든 강태공들이 모여있는 듯 한 갈라타 다리를 지나 신시가지 쪽에서 구시가지를 바라보았다.
둥그스름한 돔과 뾰족한 미나르, 물 위에서 춤을 추 듯 나풀대는 햇빛, 약간은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빙판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페리, 먹을 것이 없나 두리번거리는 갈매기. 오랫동안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내일 일행들과 페리를 탄다면 다시 갈라타 다리를 와야만 했기에 고등어 케밥 또한 그들과 같이 먹을 생각으로 생선시장을 구경만하고는 구시가지로 돌아기로 했다.
갈라타 다리는 이중구조인데 신시가지를 올 때에는 위쪽으로 왔기에 돌아갈 때는 아래쪽으로 걸어갔다. 식당들이 줄지어 서있는 이 곳에서 해협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과 저녁식사를 한다면 참으로 낭만적일 것 같았다.
카메라를 꺼내기 위해 보조가방을 열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은 느낌. 자세히 보니 보조가방 지퍼가 고장났다.
이 보조가방을 말할 것 같으면 내가 만난 보조가방 중 최고였다. 필리핀에서 약 8000원을 주고 산 키플링 이미테이션 가방의 사이즈는 약 A5정도의 크기로, 작지도 크지도 않았으며 수납공간이 너무나 세분화 되있어서 물건을 나눠담기 아주 편했다.
안쪽에는 여권이 들어갈만한 숨겨진 공간이 있었고 앞 오른쪽 공간에는 '위대한 게츠비' 미니북이 딱 들어갔으며 왼쪽 공간에는 아이폰 4을 정확하게 보관할 수 있었으며 중간에는 동전을 넣을만한 공간이 있기에 잔돈들을 보관하고 꺼내 쓰기에 아주 용이했다.
말 그대로 사랑스러운 보조가방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스러운 보조가방이 고장난 것이었다. 지퍼가 닫히지 않는 보조가방은 쓸모가 없는 가방. 그러나 버리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가방에 대한 애착보다 예정에 없던 지출을 해야한다는 것이 싫었을 수도 있다.
돌아가는 길에 이집션 바자르에서 다양한 가방들을 구경했다.
그러나 너무 크거나 혹은 너무 작거나, 색이 이상하다거나, 모양이 이상하다거나, 가격이 비싸거나, 공간 분할이 잘 안되어있다던가, 재질이 싸구려라거나, 상인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지퍼가 둥글지 않다는 말도 안되는 잡다한 이유를 만들어 가방을 사지 않아야할 이유를 만들었다.
숙소로 돌아왔다. 반짓고리를 꺼내 수술을 시작했다. 30여분을 끙끙거린 결과 이 가방을 사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섰다. 왜인지 모르게 가방이 야속했다. 그러나 어쩌겠나 떠나보낼 것은 떠나보내야지.
내일 당장 가방을 살 마음을 먹고 기분 전환을 위해 낮에 찾아둔 7리라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밖에 대문짝만하게 걸어둔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지만 저렴한 가격이었기에 만족하고 먹었다.
돌아오는 길, 안개가 자욱하게 낀 거리를 걸어왔따. 사진을 이리저리 찍어봤지만 멋지게 찍히지 않는다.
왜 이렇게 사진을 못 찍을까라는 자괴감만 안은채 숙소로 돌아왔다.
2014. 0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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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7 - [여행/세계일주, 중동] - 터키 이스탄불. #57 신시가지 방랑, 그리고 새로운 여행 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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