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이에서 해먹에 눕거나 카페에 눕거나 술을 먹고 뻗거나 3가지 중 하나의 활동 밖에 하지를 않아서 여행 초반부터 템포가 너무 느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이를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같이 놀던 사람들이 빠이를 떠난 것도 이유 중에 하나였다. 우리는 한국에서 보기로 약속하고 담담히 헤어졌다. 다시 혼자가 되었고 버스는 혼자 구불구불 내려가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기 전에 형, 누나들은 나를 든든이 먹여 보낸다고 밥을 사줘 이것 저것 많이 먹었는데 배부른 상태로 차를 타니 속이 뒤집어 질 것 같았다. 진심으로 버스에서 토할 뻔 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옆에 덩치가 너무 큰 아저씨가 앉는 바람에 허리를 도저히 필 수가 없었다. 차가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쉬지 않았더라면 아마 차 안에 토를 했을 것이다. 난 멀미를 하지 않을 거라는 작은 믿음이 산산이 부서졌다. 버스는 계속 구불구불 내려갔다. 국방부 시계도 시간이 가는데 고작 3시간짜리 고통이라고 안 지나가겠는가.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왔다.
원래 계획은 루앙프라방 - 방비엔 - 비엔티엔으로 가는 국민루트였지만 빠이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시판돈이라는 곳을 추천해줬다. 팍세라는 곳 근처라고 했다. 그냥 일정을 바꿔 방비엔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저녁 8시 버스 티켓을 산 후 터미널 대합실에서 책을 봤다. 빠이에서 만난 친구와 누나가 준 책이었다. 시간은 훌쩍 지나 우본랏차타니행 버스를 탔다.
태국 버스를 타 본 사람은 알겠지만 태국 버스는 정말 냉동고다. 사람들은 타기 전에 아주 두툼한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고 자리마다 있는 담요를 몸에 두른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 번 타면 나도 모르게 배낭에서 두꺼운 옷과 침낭을 주섬주섬 꺼낸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버스를 탑승해도 밤새 덜덜 떨면서 가는 것이 태국 버스다. 정말 에어컨을 너무 강하게 튼다. 왜 이렇게 에어컨을 강하게 트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짐작에는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에어컨을 심장이 얼어붙기 직전까지 트는게 고급 서비스의 표현같다. 이 이유 말고는 이렇게 뼈가 시릴정도로 강하게 틀 이유가 없다. 담요를 없애고 에어컨 세기를 줄이면 되는 걸... 조금은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안에서 내가 추워하든 더워하든 버스는 아침 6시쯤 우본랏차타니에 도착했다. 다른 버스터미널에 가서 환승을 해야하기 때문에 다른 여행객들과 택시를 쉐어하기 위해 일찍 내려 여행자처럼 보이는 사람들한테 쉐어를 하자고 물어봣지만 대부분 자기네들끼리 가거나 하루 자고 간다고 대답했다. 느낌상 다른 버스터미널이 멀 것 같지는 않았지만 하루 한대 라오스로 가는 버스 시간이 7시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나마 가장 저렴한 택시를 골라탔다.
다른 창구는 다 열려있는데 라오스 방비엔행 창구만 닫혀있다. 인터넷 정보와 달라서 약간 불안했기에 옆 창구로 가서 방비엔행 버스를 물어보니 안내원은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그저 기다리란다. 다른 무엇을 물어봐도 그냥 기다리란다. 어이가 없다. 답답은 하지만 방법이 없기에 그냥 기다린다. 7시가 넘으니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때 마침 버스터미널 청소를 하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손짓 발짓으로 물어보니 8시 반에 버스가 출발한단다. 고마웠다. 그리고 깊은 빡침이 몰려왔다. 그냥 옆 창구 그 안내원이 8시 반이라고 한 마디만 해주면 모두 다 편한 것 아닌가... 출발 시간을 알면서 불안감이 해소되니 배가 고팠다. 근처 식당을 찾아보기 위해 터미널 대합실을 통과하는데 배낭에 대문짝만하게 한국 깃발이 수놓아진 배낭과 동양인 두명을 만났다. 말을 걸어 보니 한국 사람이었다. 인사 후 행선지를 물어보니 방비엔이었다. 반가웠다. 하지만 밥이 먼저였다.
밥을 먹고 돌아와도 그들은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두 명은 딱 보기에도 나이차이가 있어보였다. 관계를 물어보니 형제지간이라 했다. 동생은 동남아시아 여행 경험이 많았고 형은 해외 첫 여행이라 했다. 그들의 일정은 9박 10일에 방콕 - 수코타이 - 빠이 - 방비엔 - 방콕을 이동하는 바쁜 일정이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 싶은 것은 누구나 하는 생각일 것이다. 일정이 짧다느니, 도시 수를 줄이라느니, 이동시간이 너무 길다느니하는 꼰대질은 마음속에 접어두었다.
형은 취업을 하고 잠시 짬을 내서 여행을 나온 듯 했다. 계속 자신의 회사와 취업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계속 툴툴거렸다. 동생을 들으라고 한 듯 했다. 동생은 이미 한두번 들은 소리가 아닌 듯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자신이 왜 툴툴거리고 있는지 꽤나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듯 장황하게 이야기 했지만 말의 요지는 '이번 여행에서 이것도 저것도 요것도 해보고 싶은데 동생이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계획을 짜서 자신은 너무 개고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생이 불쌍했다. 10일동안 형과 같이 여행 할 생각을 하며 혼자 끙끙 계획을 짰을텐데... 끙끙은 아니더라도 형보다 인터넷 검색창에 태국여행이라는 단어는 훨씬 더 많이 검색했을 것이다. 자신의 여행을 남에게 맡기고 불만을 토로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마음 편히 누군가를 의지해서 왔다면 그 사람에게 툴툴거리지는 말자. 보이지 않게 신경쓰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동생의 체념한 표정이 길게 머리속에 남는다.
얼마나 수다를 열심히 떨었는지 방비엔행 창구가 개방된 줄도 몰랐다. 창구 앞으로 달려가 표를 샀다. 인터넷에서 본 것보다 가격이 비쌌지만 눈물을 머금고 샀다. 일기에 '우정의 다리'를 건넜다고 써있는데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우정의 다리'란 곳이 많은 듯 했다. 아마 저 곳도 맞을 것이다. 다리를 통과하니 라오스 국경이었다. 입국 도장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앞쪽에 많이 보던 초록색 여권이 보인다. 몰랐는데 버스 안에 한국인이 한명 더 있었다. 그도 같이 일행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육로로 국경을 건넜지만 감흥은 별로 없었다. 국경선이 뚜렷히 그어져 있지 않은 것도 하나의 큰 이유였다. 수 많은 택시기사 자신의 택시를 타라고 호객을 하지만 무시한다. 은근 짜릿하다. 변태인가 싶다. 버스는 다시 달린다. 꾸불꾸불 덜컹덜컹 비포장도를 열심히 달려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줬다.
내리자마자 갑자기 어떤 운전기사가 우리 앞으로 오더니 다짜고짜 가방을 들고 우리를 버스에 태운다. 얼마에 버스를 타고 갈지 딜부터 하는게 우선이니 잠시 가방을 되찾고는 가격을 물어보니 공짜란다. 뭐지? 타보니 정말 공짜다. 첫인상이 좋다.
빠이에서 방비엥까지. 하루가 걸렸다.
13. 12. 19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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