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구별 여행기./18,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코 앞의 유럽으로, 블라디보스톡. #2 싸구려 입이 화를 냈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8. 12. 2.

시베리아 종단 열차의 마지막 종착지 블라디보스톡역부터 시작했다. 한국 여행객보다 중국 여행객이 한 10배는 많아보였다. 예전에 다녀왔던 세계일주를 최종루트대로 움직였더라면, 남미에서 미국을 지나 동유럽을 구경하고 러시아로 들어가서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에서 모든 여행이 마무리됐었을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못햇지만, 나에게 항상 블라디보스톡의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여행의 종착점으로 생각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시작지점이었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떠났다.




바닷길을 따라 걸으니 해군함대가 줄지어 서있었다. 사진을 찍어도 되나 싶었지만, 멀리서 카메라 렌즈를 그 쪽 방향으로 해도 제지하지는 않았다.

새하얀 정복을 입은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잠수함 박물관을 지나 영원의 불꽃 앞에 가니 가족, 연인들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느낌에 군사훈련이 끝난 신입장교들의 취임식 같았다. 물어보지는 못했으니 아주 주관적인 내 감일뿐이다. 군인들의 여자친구들은 어찌나 꽃단장을 하고 왔는지 이 추운날에도 초 미니스커트에 엄청난 높이의 하이힐을 신고 돌아다녔다. 

자신의 연인을 안고 쭉 뻗은 기찻길을 걸어가는 장교를 만났다. 건장한 사내에게 안겨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쳐 눈인사를 하고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니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그녀 역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주었다.






영원의 불꽃 뒤쪽의 이름이 가득 적힌 기념판이 있었다. 천천히 둘러보다가 이름 옆에 꽃 한 송이가 붙어있는걸 발견했다. 어떠한 심정으로 그 꽃을 붙여놨는지 느낌이 전해졌다.



니콜라스 개선문 앞에 젊은 한국인 여자여행자 둘이 전세를 낸거마냥 하루종일 사진을 찍고 있었다. 군인들이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듯 하였다. 참으로 여러각도에서 열심히도 찍었다. 그들이 카메라 구도를 바꾸는 동안 잠시 자리를 피해주고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으면 되어보였지만, 한명은 계속 자리에 앉아있고 다른 한명만 일어나서 카메라의 위치를 바꿨다. 

약 2~3분을 기다렸지만, 그들은 본채도 안했다. 말이 2~3분이지 멀뚱멀뚱 그녀들의 카메라 위치선정을 보기만 하기에는 꽤나 긴시간이었다. 재수가 없어서 그냥 가운데 들어가서 사진을 찍으니 째려봤다.

'?' 지금 누가 누굴 째려보고 기분 나쁜 티를 내는건지... 참으로... 할말이 없었다. 내가 정공법으로 그들의 사진 촬영을 반대하니 그제서야 러시아 사람들도 올라와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겨 사라졌다. 정복을 입고 가족들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먼저 찍게 하고 사람들이 사라진 후에 아무도 없는 니콜라스 개선문을 찍을 수 있었다.


고민이 생겼다. 돈이 애매하게 남았다. 아껴쓰면 내일까지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이제 직장도 다니는데 조금 더 돈을 써도 된다는 생각이 충돌했다. 남들이 보면 무식할정도로 왜 저딴 고민을 할까 하겠지만, 1년간의 가난한 여행으로 돈을 아껴쓰는게 몸에 익은 나로써는 엄청난 갈등이었다.

고민끝에 50달러만 환전을 하기로 했다. 혹시 몰라서 숙소의 직원에게 '50달러는 러시아돈으로 환전을 하고, 50달러는 달러로 돌려주세요'라고 쓰여있는 종이를 받아 환전소에 갔다.

환전소 직원이 다행히도 영어를 할줄알았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러시아어가 적힌 종이를 전달하니 웃으면서 50달러 한장과 루블을 손에 쥐어주었다. 역시나 돈이 있으니 마음이 여유로웠다. 돈은 중요하다.



짠내투어라는 프로그램이 블라디보스톡을 한번 터트리고 갔기에 이미 여행 프로그램에서 나온 음식집은 이미 한국인들이 점령한 상태였다. 그 중에 한 곳이 댑버거라는 곳이었는데 마땅히 점심식사를 할 곳이 없는 나도 그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입구부터 한국인들이 바글바글 했으면, 메뉴판도 한국어 버젼이 따로 있었다. 방송의 힘은 대단했다.

맛이야 어느정도 보장을 할테니 아무거나 주문을 했는데, 우와 맛있었다. 허겁지겁 햄버거를 다 먹으니 대놓고 팁을 요구하는 직원을 무시하고 정가만 지불했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또 다른 한국인이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블라디보스톡은 사실 정말 할게 없다. 마땅히 볼 것도 없다. 얼마나 심각하냐면 블라디보스톡역 앞에 있는 레닌 동상도 관광포인트로 친다. 볼게 많은 여행지였다면 이 정도 수준의 동산은 그냥 지나가다 들르는 수준 정도였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면 구경을 다 할수 있을정도였다.

그러니 다른 곳에 눈이 돌아갔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 신한촌이라는 과거 만주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기념비가 있다는 소식에 그 주변을 여행하기로 했다.







신한촌으로 가는 길에 포크롭스키 성당에 잠시 들렀따. 문이 굳게 닫혀있었기에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인가 하고 신한촌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한 모녀가 두꺼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기에 따라 들어갔다.

경건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진지했다. 발걸음 소리조차 내면 안될것 같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거닐었다. 그들의 신성한 의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궁금했지만, 아무래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예의가 없는 행동인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기 전에 최대한 프레임에 사람이 걸리지 않도록 한 장의 사진만을 찍었다.

바로 옆의 성당 부속건물에 잠시 구경하고 돌아가려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한마리가 튀어나왔다. 귀여워서 사진을 찍으려니 내 다리 사이로 왔다갔다하면서 몸을 비볐다. 야생 고양이는 아닌듯 하였다. 더 놀아주면 평생 따라올 것 같아서 서로의 정을 교류하기 전에 헤어졌다.





슬슬 다리가 아파 쉴 곳을 찾는데 마켓이 보였다. 신식건물로 지어진 시장이라 재래시장의 느낌은 나지 않겠지만, 시장은 언제나 만족스러운 재미를 준다는 설렘이 있었다. 특별히 볼 것은 없었지만, 각종 잡동사니들과 식재료들을 구경하고 나왓다. 빵집의 빵굽는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사온 작은 빵은 덤이었다.


걸어가기에는 꽤 먼 지점에 기념비가 있었다. 위치도 뜬금없는 곳에 있어서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올 만한 곳은 아니었다. 전혀 다른 관광지와 연계포인트도 없었고, 인터넷으로 알아보지 않는다면 그냥 길가에서 의미없이 지나칠 비석이었다. 
단체 관광객들 한무더기가 기념비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잠시 귀에 꼽은 이어폰의 노래소리를 줄였다. 너무 가까이 가서 듣기도 민망하여 조금 멀리 떨어져있었는데 가이드의 설명은 잘 들리지 않았다. 비석에 적힌 글을 한번 훑어 보고 이동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귀기울여 설명을 듣고 있었다.

 




신한촌을 오기 전에 대략적으로 블로그를 통해 몇가지 포인트등을 확인하고 왔었는데 그 중에서도 기억나는 곳은 마트로 바뀌어버린 과거 독립 운동가의 집터였다. 다른곳은 개인이 찾기가 어려우니 이 마트라도 잠시 들리기로 했었다.
약간 방향을 잘 못잡아 마트까지 조금은 돌아갔지만, 사진에서 봤던 마트는 그대로 있었다. 장사가 잘 되는 마트인지 안에 사람도 많았다. 그들에게는 그저 집 근처 마트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잠시나마 발길을 붙잡아둘 유적지라 생각하니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평범한 마트 안으로 들어가니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물건들을 구매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김에 물이라도 하나 집어들었다. 
분명 숙소 주인아저씨는 마트보다 자기네들이 파는 물이 더 저렴하다하였지만, 역시나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어디서 내리는지를 몰라 타이밍을 놓쳤다. 결국 블라디보스톡 역 앞까지 갔다. 내일 아침에도 아르바트 거리를 둘러볼 생각이었지만, 너무 이른 아침부터 돌아다녀서인지, 블라디보스톡이 볼 게 없는건지 더이상 갈 곳이 없었기에 다시한번 해양공원으로 향했다. 가장 안쪽으로 안쪽으로 들어가도 크게 볼 것은 없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안쪽의 '블라디보스톡 데스 브리지'라 적힌 곳에서 돌아나왔다. 날씨는 쌀쌀했고, 슬슬 배가 고팠다.

좁은 블라디보스톡 시내만큼 한국인들에게 가는 유명한 식당이 길건너 하나씩 있었다. 굳이 내가 만족할만한 식당을 찾은 것도 아니었고, 낮에 먹었던 햄버거가 아주 성공적이였다는 판단에 한국 여행자들에게 가장 유명한 음식집인 수크레?로 향했다. 그러나 대기 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어갈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어제 점심을 먹었던 식당에서 먹을까하다가 바다를 보면서 식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해양공원에 열려있는 식당 한 곳으로 들어갔다. 가격도 아주 저렴했고, 이른 저녁 시간이지만 나이든 노인 세명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도 종업원이 오지 않기에 내가 먼저 종업원에게 다가가서 샤슬릭과 보르시취를 주문했다. 잠시 기다리라는 그는 주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옆집으로 달려갔다.

이때라도 주문을 취소하고 도망갔어야했는데...

약 10분을 기다리니 플라스틱 일회용 접시에 음식이 나왔다. 샤슬릭은 찔겨서 씹어먹을 수가 없었고, 보르시취는 개똥맛이었다. 그러면서 어제 먹었던 샤슬릭집에 비해서 단돈 80루블만 저렴할 뿐이었다. 배는 고팠으니 샤슬릭 고기 한두개를 뜯어먹었는데 먹다가 화가 났다. 뭘 줘도 맛있게 먹어주는 저렴한 입이 처음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화를 냈다. 
보르시치도 한두번 떠먹고는 도저히 입에 넣기가 싫을 정도였다. 최악의 식당 선정이었다. 돈을 다시 주더라도 제대로 된 저녁식사를 해야겠다 싶었다. 딱 한 두입씩 먹은 음식을 그대로 두고 계산했다. 그정도로 맛이 없어서 화가났다.




이제서야 어제 먹었던 식당이 얼마나 맛있는 음식집인지 알았다. 거의 뛰다 싶이하여 식당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아까 쓰레기 식당에서 주문했던 샤슬릭과 보르시치를 주문했다. 
사람이 많아 조금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담겨나오는 식기의 때깔부터가 달랐다. 이제서야 음식을 먹는 느낌이었다. 샤슬릭 한입을 베어무니 웃음이 나왔다. 보르시치는 먹는 방법을 몰라 종업원을 부르니 하얀색 사워소스를 빨간 토마토 스프안에 넣어주었다. 휘휘 저으라는 제스쳐를 취하고는 나를 기다렸다. 그녀의 말대로 한 후 먹어보니 아까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맛이었다. 그녀에게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려 행복한 미소를 보이니, 그녀도 살짝 웃으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끝까지 맛을 음미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맥주를 사갈까 했지만, 아직 시간이 이르니 늦은 저녁에 사람들이 맥주를 한잔 마시면 그때 사는게 날듯 하였다. 숙소에는 어제에 비해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어제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 오늘 떠난다고 하였기에 몇몇은 새로운 얼굴들이었다. 간단하게 인사만 했다.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한국사람들을 보면 가족이라도 만난듯이 쉽게 친해지고는 했는데 여기는 한국인들도 많고, 혼자 오는 여행자가 거의 없어서 그런지 인사를 해도 시큰둥했다. 한국과 가까운 여행지에서의 게스트하우스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많이 달랐다. 어쩌면 내가 더이상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는 여행자들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걸지도 모른다. 

밤이 늦도록 숙소는 조용했다. 혼자 나가서 길을 걸어볼까했지만, 이 작은 블라디보스톡내에서 밤길을 걸어볼만한 곳도 없었다. 목이 말라서 잠시 1층으로 내려가니 남자 셋이 술을 먹다가 어딘가로 나가고 있었다. 나에게 클럽을 같이 갈지 물어봤지만, 어제 다녀왔기에, 그다지 재미가 없는 클럽임을 이미 알기에 어제 다녀왔다 이야기하고는 잠자리에 누웠다.


2018. 06. 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