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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8,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코 앞의 유럽으로, 블라디보스톡. #1 조금더 즐겼더라면.

by 지구별 여행가 2018. 11. 18.

확실히 쌀쌀했다. 공항내였지만, 한국과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비행기표를 살때 여권내에 기념스탬프가 찍혀있으면 입국불허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에 살짝 겁을 먹었지만, 역시나 문제는 되지 않았다.

블라디보스톡 공항 내에는 환전소가 하나일정도로 작은 공항이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미리 환전을 해왔는지 막심이라는 어플을 통해 택시를 잡아타고 바로바로 떠났다. 환전소는 잠시 쉬는 시간인지 문이 굳게 닫혀있었는데, 환전소 앞에 줄을 서 있으니 두명의 여자 여행자가 내 뒤에 섰다. 문이 닫혀있는 상황에 걱정이 되었는지 발을 동동 구르길래 10분후에 연다고 설명해줬다. 그제서야 다른 친구 한명이 이곳저곳 뛰어다니면서 무언가를 알아보러 다녔다.

잠시 말을 섞게 된 그녀의 첫 질문은 '혼자 오셨어요?'라는 질문이었고, 두번째는 조금 의외였는데 '무섭지 않으세요?'였다. '블라디보스톡이 안전한 여행지라 생각하고 요즘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거 아니였나?'라는 궁금증을 품고 있을 때 환전소 문이 열렸다. 환전을 하고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달렸다. 

'무섭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에는 답변을 하지 못한채로.


107번 버스는 쌩쌩 잘도 달렸다. 지도상으로 보니 시내까지 대략 30Km는 될듯하였다. 택시비가 꽤 나오지 않을까 다른 여행자들을 걱정했다. 

200루블을 내고 미니버스에서 내리니, 어느새 두번이나 다녀온 일본, 세계일주 때 여행자들의 천국이라 생각했던 동남아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유럽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아~ 이게 유럽느낌인가 싶었다. 고작 두시간의 비행으로 이정도 색다른 문화권을 즐긴다면 충분히 올만한 여행지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톡역의 입구만 잠시 구경후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아직은 여행자들이 밖을 돌아다닐 시간인지 숙소 내부는 조용했다. 침대만 배정받고 곧장 밖으로 나왔다. 오늘의 일정은 3일간 꾸준히 방문할 괜찮은 식당을 찾고, 금각교 야경을 보는 정도였다.

아르바트 거리는 관광객, 아니 한국인이 많았다. 바다쪽으로 걸어가니 러시아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춤을 추고 있었다. 카메라로 손이가서 한참 구경하고 자리를 뜰 무렵, 익숙한 음악이 흘렀다. 싸이의 'Daddy'였다. 복잡한 춤을 간소화했지만 느낌은 그럴싸했다. 새삼 세계일주때의 강남스타일 열풍이 떠올랐다. 러시아에서 그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아직 그는 죽지 않았나보다.


아르바트는 수없이 걸을 거리였다. 일요일 아침에도 들릴 계획이었기에 독수리 전망대로 발길을 돌렸다.

러시아가 확실히 붉은 혁명의 나라였던게 거리 곳곳에서 보였다. 수많은 동상들이 한블럭 건너 한블럭마다 있었다. 동상이 누군지는 몰랐다. 처음에야 몇 번 사진을 찍었지만, 나중에는 그냥 스쳐지나갔다.








뱅뱅 돌아 독수리 전망대에 올랐다. 한낮의 해가 어찌나 긴지 오랜시간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야경은 한참이나 기다려야할듯 했다. 조금더 근처를 서성이다가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에 전망대에서 내려왔는데 내 앞의 길을 막은 험상궂은 들개 때문에 어쩔수 없이 다시 독수리 전망대 위로 올랐다.

금각교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해가 지기를 기다려야겠다 생각했다. 10여분 기다렸을까. 몸이 덜덜 떨릴정도로 추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바보같은 짓이었다. 저녁을 먹고 다시 돌아오기로 하고 아파트 단지를 따라 길을 내려왔다.







블라디보스톡은 지금까지의 여행지와 식사 문제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동남아를 생각해보자. 수천 곳이 먹을 곳이다. 간이식당도 수백개는 될테고, 대충 아무런 식당에 들어가서 볶음밥이나 국수 한 그릇 뚝딱 먹기가 좋다. 우리나라로 치면 순대국밥집, 김밥천국 등 딱 봐도 간단하게 한끼 식사를 할 곳이 넘친다. 그러나 여기는 아니었다. 말그래도 레스토랑 밖에 없었다. 내가 짧은 시간 돌아다녀 잘 모르는거겠지만, 식당이 많지가 않았다. 정확히는 식당스럽지 않았다. 고급스러워서 선뜻 들어가지지가 않았다.

결국 독수리 전망대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그나마 영어로 된 메뉴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딱 봐도 비싸보였다. 후회됐지만, 나가기는 자존심이 상했다. 이젠 적어도 거지는 아니었으니. 

내가 아는 음식이고는 샤슬릭, 보르시취 밖에 없었다. 메뉴판을 펴지도 않고 샤슬릭?하고 물으니 바로 사진을 보여주었다. 종류가 여러개 되는 듯 했지만 가장 기본으로 보이는 음식을 찍고 맥주도 하나 시켰다. 술의 나라치고는 맥주가 굉장히 비쌌지만 원래 그런가보다 했다. 샤슬릭과 작은 맥주한병의 값이 거의 같았다.

음식의 수준이 상당했다. 짜지도 않았고 고기도 굉장히 연했다. 토마토를 베이스로한 소스도 우수했고 입맛에 맞았다. 이정도 가격에 이정도 음식 수준이라면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9시쯤 밖으로 나와 다시 독수리 전망대를 갈려니 귀찮았다. 금각교 야경은 나중에, 아주 나중에 보기로 했다. 나중에 발레를 보러 블라디보스톡에 재방문하면, 그때 가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맥주를 샀다. 내가 레스토랑에서 마셨던 가격에 1/5였다. 어쩐지... 레스토랑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싼거였다. 숙소에 들어가면 술판이 벌어져있을거라 예상했지만, 조용했다. 사람 한명만이 지도같은 것을 그리고 있었다. 스탭인가 싶어, 샤워를 하고 다시 내려오니 역시나 사람은 없었고, 지도를 그리던 남자는 아직도 끙끙거리며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맥주를 따고 홀짝홀짝 마시는데 여행자 둘이 신라면을 들고 내려왔다. 라면을 끓이는 동안 간단한 대화가 이어졌다.

4일간 여행온 그녀들은 이미 러시아의 느끼한 음식에 지쳤다하였다. 숙소 사람들 모두가 어제 술을 많이 마셔 오늘은 잠정 휴업이라 하였다. 어제도 먹고,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는게 여행지의 밤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싶었지만, 그건 나같은 놈에게나 해당되는 소리였나보다.



한두명씩 사람들이 내려오면서 맥주를 한병씩 들고 왔다. 다들 어제 안마신 사람들이었다. 저 멀리서 지도를 그리던 청년에게도 같이 맥주를 한잔하자며 스탭인지 물어보니 그냥 여행자였다. 무슨 지도를 그리 열심히 그리는지 다가가서 보니 여행 계획표라 하였다. 대단히도 부지런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세계일주 여행자였다.

러시아에서 시작하여 동유럽과 중동을 거쳐 남아공까지 갈 것이라 하였다. 일정을 들어보니 3개월 정도였는데, 시간이 굉장히 촉박해보이긴 했지만, 할려면 못 할 시간도 아니었다. 그에게 예전에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니 눈이 빛났다. 


잠시 그의 여행 계획표를 살펴보니 내가 4년전 다녀왔던 루트와 거의 비슷했다. 그리고 나 역시 머리속으로 여행 일정을 세웠을때 했던 실수들이 똑같이 발견됐다. 이를테면, 에티오피아에서 케냐로 하루만에 가는 것, 빅토리아 폭포를 보고 에토샤를 들렀다가 빈트훅으로 가는것 등. 이는 현지 버스 사정을 전혀 고려치 않은 루트였다. 4년전 정보였지만, 아는대로 그에게 설명을 해주고 내일 낮에 다시 만나 좀 더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벌써 12시였다. 슬슬 정리를 하는데 어린 여자 여행자가 어디서 바람이 들었는지 클럽이 가고 싶다 하였다. 나는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위로 올라가려는데 라면을 먹던 여행자가 '경험삼아 가요'라 했다. 그 놈의 '경험삼아'라는 말을 경험주의자로서 듣고 흘리기는 어려웠다. 올라가서 돈을 들고 나오면서 방에서 누워있던 남자 여행자 한명을 꼬셔 로비로 내려왔다.

약 40여분후 풀 메이크업을 한 여자 여행자들이 나타났다. 불 타오르는 그녀들의 의지를 보니 나름 재밌을 듯 하였다.


쿡쿠라는 클럽이었는데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 핫한 클럽이라 그런지 현지인들은 한껏 꾸미고 왔다. 나를 빼고 다른 여행객들은 옷이 예뻤다. 안으로 들어가니 12시 40분쯤이었는데 이들에게는 아직 이른 시간인지 한적했다.

이 곳은 클럽이라 하기보다는 스탠딩 바라고 하는게 어울렸다. 스테이지보다 바가 더 컸다. 우리도 한쪽에 자리잡고 술을 하나 시켰다.


나는 춤을 못추지만 이런데 가면 가면을 벗어버리고 낯짝이 두툼해진다. 멀뚱멀뚱 서있는걸 가장 싫어한다. 허나 같이 간 일행들은 달랐다. 아까 블라디보스톡의 밤거리를 걸으며 신나하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그냥 가만히 서있었다.

춤을 추는게 싫다거나, 사람을 구경하는게 재밌을수도 있기에 그다지 신경은 쓰지 않았다. 이리저리 나혼자 돌아다니다가 돌아오니 아직도 그자리에 마냥 서있었다. 같이 놀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사실 클럽분위기가 좀 춤추고 놀기에는 맥 빠지는 뭔가가 있었다. 

다시 약 20여분 후에 돌아오니 뭔가 수다를 떨며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이제 분위기에 좀 적응했나 싶어 뭐하나 살짝 보니 우리나라 TV프로그램인 '하트시그널'을 옹기종기 모여앉아 보고 있었다. 같이 온 남자 한명은 지쳤는지 쇼파에 멍하게 앉아있었다.

'숙소로 돌아갈까요?'하니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클럽을 빠져나왔다.


재밌게 놀지 못한것도 아쉬웠지만, 거기까지 간 시간과 돈이 아까웠다.


2018.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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