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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아시아

인도 델리. #50 대책없는 뉴델리.

by 지구별 여행가 2015. 12. 29.

인도에서 기차표를 살 때 클리어트립 사이트에서 웨이팅 표를 신경쓰지 않고 마음에 드는 시간대에 표를 구매했다. 자리가 없어도 표만 사서 들어가면 충분히 자리는 만들 수 있다.

 

밤기차 중 가장 깔끔한 시간, 밤 11시에 타서 아침 6시쯤 델리에 도착하는 기차였다.

잔시에서 기차를 타고 표를 검사하는 직원한테 갔다. 역시나 인도사람들 한 20여명이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급하다는 표정을 하고는 표검사원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나야 뭐 급할 것 없었으니 천천히 뒤에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기다리기만 하다가는 내 차례가 오지 않을 것 같아 사람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표검사원에게 내 웨이팅 표를 보여주며 자리를 좀 달라고 이야기하니 잠시 기다리라며 나를 그의 옆에 앉혔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났기 때문에 인도사람들이 떠들던 말던 20명이건 30명이건 그냥 두고 검사원 옆에서 가방을 꼭 끓어앉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한 30여분 잤을까.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표 검사원과 나만 남았다. 그는 나에게 잠시 기다리라 하더니 열차를 한바퀴 돌고 오고는 따라오란다. 그리고 중간에 잠시 그는 귓속말로 'Give me something'이란다. 물론 Something이 무엇인지 알지만 순진한 얼굴로 '응?' 이렇게 두세번 해주었다.

이렇게 모르는 척 하고 침대를 얻은 적은 단 한번뿐이었다. 어쨌든 한번이라도 싸게 탈 수 있다면 땡큐니 두 번정도는 Something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흉내를 냈었다. 물론 거의 통하지 않기에 지갑을 열어 돈을 주었다. 지갑안에 돈이 보이면 더 달라고 하니 딱 100루피만 넣어놨다. 그럼 자연스럽게 침대가 하나 나왔다.

 

지금 기억이 잘 안나는데 아마 웃돈을 주고 살 수 있는 표가 100루피 정도 더 비싸다. 그냥 그 정도 값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그러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기차를 타고 가면 만사오케이다.

 

 

 

 

아침의 빠하르간지는 생각보다 조용하고 깨끗했다. 얼마나 더러운 거리를 생각했는지, 이 정도면 무난한 인도의 거리라 생각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묵고 있는 Good day란 호텔을 찾지 못하여 빠하르간지에 도착한지 1시간 반만에 겨우 연락을 하여 만났다. 그는 나를 한국인이 운영하는 카페로 데려가서 그가 아는 다른 일행들과 만났다. 그 곳에서 두 명의 여자와 같이 델리 일정을 보내기로 했다.

 

인도에 처음이라는 그녀들은 보통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얼굴에 뭍어났다. 무작정 인도로 날아 온 2012년의 나와 동생이 이런 표정이었을까. 나의 표정은 모르겠지만 동생은 이런 표정이었다.

그녀들은 생각보다 대책없이 왔다. 여행 루트는 조잡했고 가고 싶은 곳은 중구난방이었다. 나와 형은 그녀들이 생각한 큰 틀은 건들지 않는 범위에서 자질구레한 부분들을 정리해주었다.

 

대책없이 온 그녀들은 첫날 델리에서의 일정도 대책이 없었다. 대책없는 그녀들을 형과 내가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어디를 갈까.

나도 델리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형은 대책없는 여행자 3명을 이끌고 코넛플레이스로 향했다.

 

리바이스, 아디다, 나이키 등 다양한 매장이 늘어서 있는 코넛플레이스를 둘러보았지만 내가 살 것은 없었다. 한 쪽 구석에 잡화점에서 샴푸와 바디클랜저를 하나 샀을 뿐이었다. 우리 모두 그저 한국과 가격을 비교해 보며 이 곳에서 사면 이득일지 아닐지만 판단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득이라 판단한 후에도 우리는 물건을 사지 않았다. 다들 돈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대략 1시간 반쯤 코넛플레이스를 구경하고 걸어서 빠하르간지로 돌아오는 길, 나에게 딱 맞는 보따리 시장이 나왔다.

100루피에 반팔티를 팔고 있는 이 곳에서 가품 리바이스 티셔츠를 90루피에, 숙소 앞 좌판에서 150루피 레이벤 선글라스와, 20루피 양말 한 켤레, 120루피 9부 바지를 구매했다.

 

 

그 중, 특히 내가 아낀 옷은 120루피 9부 바지였다. 일단 디자인면에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통이 무척 넓어 바람에 펄럭였지만(요즘 스타일에 비해) 뭔가 가난해보이며 처량한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한 바지였다. 또한 1주일에 한번씩만 빨아도 티가 나지 않을 만큼 똥색에 가까웠따. 거지 같은 꼴을 내기에 적당한 바지였다.

이 바지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가끔 도서관에 갈 때 입는다.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마친 뒤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만났다. 똥색의 거지같은 바지를 입고 꽤나 좋은 식당에 들어갔다. 형은 그녀들에게 인도 첫 날을 축하한다며 근사한 저녁식사를 사줬다. 탄두리 치킨부터 갖가지 음식들이 식탁에 올라오면서 상다리를 압박했다.

풍선만큼 부른 배를 겨우 들쳐매고 근처 바에 가서 초록색 킹피셔 맥주를 한 병씩 마시기도 했다.

 

형은 나에게 따로 숙소비를 쓰지 말고 자신의 방을 같이 쓰자 했기에 따로 숙소는 잡지 않았다.

고맙게도 그 날 하루는 숙박비를 아낄 수 있었다.

 

2014. 0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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