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히 잘 수가 없었다. 자다깨다 반복을 하다보니 어느새 발권시간을 2시간 앞둔 상태였다. 습관적으로 와이파이를 켜보니 다행히도 미약한 신호가 잡혔다. 다시 잤다가는 쉽사리 잠에서 깨지 못할 것 같아 남은 시간은 한국과 관련된 뉴스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저 멀리 사람의 몸채만한 캐리어를 끌고오는 동양인의 여자가 보였다. 한국사람일 듯 한 느낌이었지만 여행스타일이 달라보여 말을 걸지는 않고 뉴스 읽기에 집중했다.
발권시간이 다되어 비행기 티켓을 받았는데 빳빳한 일반적인 비행기 티켓이 아니라 바코드가 인쇄되어있는 영수증이었다. 비행기 내부는 얼마나 조그마한지 좌석간의 간격이 너무나 비좁았다. 재밌게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엘 칼라파테까지 졸면서 갔는데 잠결에 정확히는 세지 못했지만 내 기억속에만 착륙횟수가 무려 3번이었다. 비행기가 버스같이 섰다. 저가항공 치고 샌드위치에 음료수까지 주는 호기로움은 만족스러웠다.
기내 방송에서 뭐라 떠드는데 알아들 수 없었으나 느낌상 엘 칼라파테에 도착한 듯 했다. 건너편 자리의 승객에게 물어보니 역시 엘 칼라파테에 착륙한다는 말이 맞았다. 대단한 육감에 소름이 돋았다. 짐을 챙겨 내리려는데 아까 공항에서 스쳐지나간 동양인 여자 두명은 아직 자고 있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99%확률도 엘 칼라파테에 갈 확률이 높았기에 살짝 흔들어 깨워주었다.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고는 곁눈질로 쓱 쳐다보고는 아무말 없이, 전혀 고맙다는 말 없이 몸을 쏙 빠져나갔다. 그냥 깨워주지 말걸 그랬다.
공항에 내리니 우리 셋이 전부였다. 같이 움직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혹시나 후지민박에 갈 건지 물어보니 '아니요'라고 하고는 도망가듯 떠났다. 몹쓸 짓을 한 것도 없는데 왜 저러나 싶었다.
40여분 기다리면 시내로 가는 셔틀버스가 온다하여 구석에 앉아 일기를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는데 큰 비행기가 도착한 듯 하였다. 그 무리 안에서 일본인 한명을 만났는데 대화를 하다보니 그 역시 목적지가 후지민박이었다. 김C를 닮은 그와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후지민박은 한국인 여사장님과 일본인 남사장님이 운영하는 민박이다. 일본인들에게도 꽤나 유명한 숙소이기에 보통 5:5의 비율로 한국인과 일본인이 다녀가고는 했다. 내가 남미사랑 호스텔에 있을 때 휴가를 나오셨던 후지민박 사장님 내외를 만났기에 엘 칼라파테 숙소를 이곳으로 정한 것이었다. 가난한 여행자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곳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면서 무료로 숙박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곳은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부부가 사장님을 대신해 숙소를 지키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일본인은 한명이 없었다. 타시키는 조금 실망한 듯 보였다.
린다비스트로 가서 엘 칼라파테와 엘 찰튼의 일정을 조율하기로 했다. 타시키는 엘 찰튼을 당일치기로 다녀왔다가 그 다음날 모레노 빙하, 토레스 델 파이네는 마지막에 당일치기로 다녀온다 하였다. 하지만 나는 토레스 델 파이네 투어를 당일치기로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자세하게 보려면 3일 이상은 투자해야하는 투어였기에 하려면 투어를 껴서 제대로 하고, 아니면 아예 하지 않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욕심이 많은 타시키는 일단 하루라도 보고오는게 중요했다. 일정을 짜다보니 아쉽게도 출발 버스를 고려하면 그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다. 결국 엘 찰튼을 포기했다.
숙소로 돌아가니 나갔던 한국인들이 모두 돌아와있었다. 함께 스테이크를 썰며 와인을 마셨다. 오늘 모레노 빙하를 가기로 하였는데 사정이 생겨 내일 아침에 가기로 했단다. 내일 함께 출발을 하기로 하고, 세계일주중 최남단 엘 칼라파테에서의 하루를 보냈다.
2014. 0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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