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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남미

아르헨티나 엘찰튼. #162 마을에서 피츠로이 봉우리가 보이다니.

by 지구별 여행가 2017. 10. 23.

엘 찰튼 피츠로이 봉우리, 일명 '삼봉이'라 부르는 봉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워낙 날씨가 변덕스러워 항상 구름이 산중턱에 걸려있는 곳이기에 많은 여행자들이 아쉬움을 안고 돌아가는 곳이다. 우리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날씨 걱정부터 하였다. 그러나 방법이 있겠는가. 이미 버스비는 지불했고, 내일 간다고하여 날씨가 좋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엘 찰튼에 도착하니 이게 왠걸. 마을 초입부터 피츠로이 봉우리가 시원스럽게 보였다. 최고의 날씨였다. 값이 저렴하면서 주방도 사용이 가능한 곳에 짐을 풀고 바로 트래킹을 시작했다. 날씨가 좋은만큼 지체할 이유가 없었고, 지체할 틈도 없었다. 산에서의 허기는 과일과 빵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길이 고왔다. 만일 새싹이 만개하는 봄에 와서 나뭇잎이 무성했더라면 훨씬 단아했을 풍경이었다. Tore호수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 너무나 고요하여 정적을 깨기위해 강으로 돌을 하나 던졌다. 강은 얼어붙어있었는데 그 위는 눈이 살포시 덮혀있었다. 마치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풍경과 비슷했다. 돌은 나의 손을 떠나 얼음위로 떨어졌는데 '뾱'하는 듣도 보지도 못한 소리가 났다. 1990년대 나온 게임의 BGM에서나 들어볼만한 소리였다. 혹시나하여 다시 던져보니 역시나 '뾱' 하는 소리가 났다. 도대체 왜 이런소리가 날까 한참을 토론하는데 길 뒤로 어떤 서양여자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다. 

순간 토론을 멈추고 모두가 생각했다. 

'저래서 산에서 노래부르면 미친X같다고 하는구나'







순조롭게 길을 걷다가 시야가 갑자기 트였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위로 건널 수 있도록 만든 나무 다리를 지나, 텐트를 칠 수 있는 캠프사이트를 지나 전망대에 도착하여 봉우리를 구경하니 뜬금없이 더 위로 올라가고 싶었다. 길은 얼어붙어 굉장히 위험해보였지만 본능이 나를 이끌었다. 형들은 사서 고생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며 자리를 지키겠다 하여 나 혼자 길을 올랐다. 

오르다보니 밑에서 본것보다 훨씬 위험했다. 굉장히 경사가 가파랐기에 한번 미끄러지면 어디까지 떨어질지 감도 안왔다. 금방 올라갔다오겠다 하였지만 올라가는데에만 무려 50분이 걸렸다. 표지판이 없는 개울을 지나 마지막 돌산을 올라가니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호수가 나타났다. 꽝꽝 얼어있어서 좀 더 접근을 해봐도 괜찮을 듯 했지만, 더 이상 나아가는 것은 무모했다. 아쉽지만 가까이서 봉우리를 봤음에 만족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문제는 하산이었다. 너무나 가파른 빙판길이었기에 거의 기어 내려오다 싶이했다. 중간중간 얼지않은 땅의 흙을 한움큼 뿌려 미끄러움을 방지했고, 더욱 심해보이면 신발에 잔뜩 진흙을 문질러 엉금엉금 내려왔다. 약 한시간이 걸려서 밑으로 내려오니 형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도 안내려와서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알았단다.








슬슬 해가지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재촉하니 어둠이 짙게 깔릴 무렵 마을로 돌아왔다. 내가 조금 더 지체했더라면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산에서 길을 잃을뻔하였다. 형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마트에 들러 고기 1.5kg과 이것저것 식재료를 구입했다. 고기를 굽고, 야채 샐러드를 만들고, 토마토 스프를 끓여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가볍게 마실 와인 한병을 사왔지만 모두가 너무나 피곤하여 한 모금도 입에 대지 못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우리 모두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14.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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