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코파카나의 해가, 바람이, 흙이 너무 아름다워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없을지도 모르니 간단한 세면도구와 며칠간 갈아입을 옷을 챙겨 보트에 올라탔다. 트래킹을 하기에는 어깨가 무거웠지만, 혹시나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섬을 빠져나온다면 최악의 상황이었다.
8시반쯤 출발하는 배였지만 우리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8시 40분쯤 담배를 다 태운 항해사가 작은 배를 출발시키려하니 그제서야 설렁설렁 외국인들이 걸어나왔다. 어찌 이다지도 볼리비아타임을 정확히 알고 있는지.
대략 10~20분이면 섬에 도착하는 줄 알았는데 약 2시간여를 달려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섬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미 오랜시간 같이 여행을 했기에 서로간의 여행 이야기는 들을만큼 들은 사이였다. 2시간동안 이야기의 주된 주제는 한국으로 돌아가서의 계획이었다.
다들 별 계획은 없었다. 참으로... 재밌게 사는 사람들이다.
섬의 가이드로 보이는 사람이 큰 안내판 앞으로 끌고가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었지만, 관심은 없었다. 그보다 작은 가게에서 파는 햄버거가 맛있어보였다. 싸구려 햄버거를 하나씩 손에들고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기전에 길을 떠났다.
사람마다 걷는 속도가 제각각이다. 우리는 굳이 자신의 발걸음을 서로에게 맞출필요가 없는 여행자였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으며 섬의 오른쪽 길을 따라 걸었다.
태양의 섬. 바다라고 해도 믿을만큼 널찍한 호수에 있는 이 섬은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방문하고 싶어하는 곳이지만, 나에게는 별로였다. 이는 섬의 모습이 아닌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트래킹 코스를 따라 약 20여분을 걸으니 입장료 10볼을 걷어갔다. 뭐. 그럴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이게 주된 수입원일테니. 20여분을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걸어갔는데 돈을 또다시 걷어갔다. 무슨 돌무더기가 있는 유적지라는데 별 관심도 없었고, 실제로 그의 말이 아니라면 유적지라고는 생각도 못할 그냥 그런 돌무더기였다. 구경을 할 생각이 없으니 돈을 내지 않고 가려는데, 섬의 주민은 완강했다. 우리를 보내주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이해를 하겠지만,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지쳐갔다.
점차 볼것도 없어지고, 아주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입장료 징수는 짜증을 배가 시켰다. 돈을 내기전 혹시 나와 같은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모아 항의하려했지만, 서양인들은 넙죽넙죽 돈을 지불했다. 몇몇은 실랑이를 했지만, 그다지 긴 싸움은 아니었고, 곧 그들에게 돈을 지불했다.
햇빛은 뜨거웠고 기분은 상할때로 상한 상태라 빨리 트래킹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걸었다.
몇 번의 통행료를 지불했는데 거의 섬의 마지막쯤에서 또 통행료를 징수하는 사람을 만났다. 진짜 열이 너무 받은 상태였기에 절대 돈을 지불할 수 없다고 하니, 큰 눈을 가진 어린 소녀의 눈에서 그렁그렁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딱 봐도 10대 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그녀가 무슨 죄가 있겠나 싶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5볼이었다.
그녀에게 돈을 지불했다. 어찌 이 어린아이에게 이런 일을 시킨단 말인가. 태양의 섬에 오만정이 떨어졌다.
배에 타자마자 얼마나 피곤했는지 흔들거리는 통통배의 1층 조그마한 벤치에서 잠이 들었다.
형은 내일 아침 푸노로 간다고 버스티켓을 사러갔고, 나와 누나는 혹시나해서 챙겨온 옷가지들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배는 찢어질듯 고팠지만, 이 짐을 볼때마다 코파카바나에서 만난 기분 나쁜 사람들이 떠올라 숙소에 짐을 두고 시장을 가기로 했다.
형은 숙소에서 혼자 바나나를 먹는다하였고, 나와 누나는 어제부터 봐두었던 작은 시장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누가 먼저라할 것도 없이 식사를 마친 후에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고산에서의 꽤 긴시간의 트래킹이 힘들었나보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으니 밤은 길었다. 어제 먹다남은 와인을 먹기로 했고, 잠시 나가 내일 아침 식사용 빵과 오늘의 안주거리를 몇 개 사서 돌아왔는데 그 사이 주인아주머니 대문을 잠궈버렸다. 핸드폰이 있으나 전화통화를 할 수 없는 전자기기일 뿐이니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문을 두들겨 보고 소리도 질러봤지만, 인기척이 나지는 않았다. 길바닥에서 잠을 자야하나 한참 서성이는데 문 옆에 자그마한 벨이 보였다. 혹시나 하여 눌러보니 문이 열렸다. 다행이었다.
내일 이른 시간 푸노로 향하는 형이 먼저 잠에 들었고, 나와 누나 사이에 놓여진 잔에 따라주는 와인소리만이 적막한 밤의 시간을 갈랐다.
2014.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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