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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6, 베트남

베트남 유랑기, 후에. #7 후에의 왕궁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by 지구별 여행가 2017. 2. 28.

뜨거운 햇빛에 입은 화상은 점점 심각해져 팔에 잠시라도 빛이 닿으면 욱신욱신했지만, 훼에와서 왕궁을 안보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 곳에 올 때 이미 왕릉은 안보기로 결심했기에 늦은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해는 뜨거웠지만 걸을만 했다. 왕궁은 구시가지에 있기 때문에 다리를 건너야하는데,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현지 시장은 꽤나 매력적인 곳이었다. 언제나 비슷한 모습의 시장이지만 나는 시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시장 매니아였기에 이번에도 시장안 깊숙이 들어갔다. 휙하고 시장을 한바퀴 둘러보는데 점심식사 시간과 겹쳤는지 대부분의 상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시장내에 배달식당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쪽으로, 안쪽으로 들어가니 식당 밀집 지역이 나왔다. 전혀 말은 통하지 않을테지만 일단 자리에 앉고는 반찬 몇가지를 찍으니 밥과 함께 한 접시에 나왔다. 가격은 20,000동. 참으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손님과 주인은 나를 재미지게 쳐다봤다. 너무 우걱우걱 맛있게 먹어서 그런듯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맛있는 표정으로 음식을 먹었고, 가끔 눈이 마주쳐 엄지를 들면 뭐가 그리 재미난지 꺄르르르 웃으며 엄지를 들어 대답해주었다.





시장과 왕궁 사이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곳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왕궁이 나올 줄 알았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상당히 규모가 넓었고, 안에는 일반 가정집들이 많았다. 어리버리하게 길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그틈을 놓치지 않고 씨클로 호객꾼이 다가왔다. 당연히 탈 마음이 없었기에 손을 휘휘져었으나 그는 끈질겼다. 겨우겨우 떼어놓으니 그가 왕궁으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겠다며 한쪽 방향을 가리키고는 사라졌다. 

고맙다 이야기하고 길을 따라갔으나 도저히 왕궁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점점 외진 곳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근처 문이 열려있는 작은 가게에 들어가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완전 반대방향을 알려줬다. 씨클로꾼이 나를 골탕먹이려고 일부로 반대방향을 알려준 것이었다. 화는 났지만 그러려니 했다. 혼자 멍하니 앉아 가게를 지키던 소녀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왕릉 3개와 왕궁을 보는 통합 입장권은 300,000동이지만 나는 왕궁만 볼 것이기에 150,000동을 내고 표를 구입했다. 입구에는 전통의상을 입고 궁의 입구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커플이 있었는데 이 더운 날씨에도 엄청 두꺼운 옷을 입고 촬영중이었다. 나였으면 분명 기절했을 것이다.


궁의 내부는 딱히 볼게 없었다. 잘 정리된 박물관의 느낌이었고 중심부에 있는 건물 몇개에만 사람이 바글거리고 외곽에 있는 건물쪽으로 가니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혼자 그늘에 앉아 쉬기 딱 좋았다. 작은 연못이 있는 한적한 건물에서 잠시 더위를 피했다.

다시 중심부로 돌아가니 할머니 한명이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참으로 멋있었다. 나도 요즘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행 중에 항상 사진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리 멋진 사진이라도 내 주관적 느낌을 담는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잘 그리는 그림은 아니었지만 그림안에는 그녀만의 세상이 담겨있었다. 그녀에게 옆에 앉아 구경을 해도 되겠는지 물어보니 밝은 미소로 끄덕였다. 그녀가 느끼는 왕궁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한참을 구경했다.

왕궁 구경을 마치고 근처의 박물관까지 구경을 마친 후에야 왕궁을 빠져나왔다. 역시나 오늘 밤을 책임질 맥주를 사고, 근처 은행에 들러 환전을 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밖에 나가 좀 더 돌아다닐까했지만, 오늘의 일정은 이 것으로 충분했다. 저녁을 먹으러 근처 골목으로 나가 길가에서 분보후에를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감자튀김 가게가 눈에 밟혔다. 저 감자튀김에 맥주를 마시면 너무나도 맛있을 것 같았다. 대략 1000원이면 100g, 2000원이면 250g이었다. 

2000원어치를 주문하고 한쪽에 서서 구경을 하는데 저울의 눈금이 200g을 가기도 전에 포장을 시작했다. 주인 아줌마의 포장을 정지시키고 다시 저울을 재달라하니 저울에 올리기 전에 감자 2~3개를 더 담았다. 감자를 담는 그녀의 눈에는 미안함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저 '에이... 걸렸네'라는 표정이었다. 다시 저울을 쟀을때에 230g도 안되었지만 그녀는 이미 포장을 시작했다. 다시 이야기할까 했지만 20g차이로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맥주를 먹으면서 먹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낮에 사놓은 맥주를 깔고, 감자튀김을 펼치니 또 한번의 진수성찬이 펼쳐졌다. 

오늘밤 역시 든든했다.


2016.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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