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난게 기적이라 할 정도로 만취상태였다. 술이 안깨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이 안될정도였다. 출발시간 10분전에 겨우겨우 일어나서 씻지도 못하고 가방만 들고는 버스에 올라탔다.
투어버스 안에는 나와 내 친구 말고도 한국인이 한 명 더 있었다.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2달간의 동남아 여행을 한다는 그녀는 우리를 굉장히 반가워했다. 급하게 투어를 신청해서 조금 비싸게 왔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하였다. 그간의 여행에 대해서 듣고 이야기하는 동안 술이 조금씩 깨갔다.
중간에 기념품 가게에 잠시 들린 것을 제외하고는 버스는 계속 달려나가 약 12시쯤 하롱베이 입구에 도착했다. 하롱베이 투어를 하는 사람말고도 그냥 하롱베이 시티로 가는 사람이 한명 있었는데 버스운전사가 그를 하롱베이 선착장에 내려주었다. 대충봐도 하롱베이 시티까지는 이 곳으로부터 한참 걸릴 것 같았다. 당연히 승객은 불 같이 화를 냈고 버스를 출발하지 못하게 막아 한참을 열변을 토했다. 허나 따져도 큰 방법은 없었다. 5분여를 실랑이하다가 소리를 한번 지르고는 걸어서 시티 방향으로 움직였다.
꽤나 예전이긴 한데 대한항공에서 하롱베이 CF를 보여준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었기에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넘쳤다. 배에 타자마자 식사가 제공되었는데 우리 테이블은 베트남 현지 여자 2명 나와 내 친구, 인도인 노부부까지해서 6명이 함게 식사를 했다. 식사는 나름 훌륭했는데 일단 푸짐하면 훌륭하다 판단하는 나에게 아주 부합하는 식사였다. 특히 밥을 얼마나 산처럼 주었는지 한참을 먹었는데도 반이 남았다. 안타깝게도 인도 노부부는 베지테리언이었기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야채 무침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렇게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하롱베이 투어는 지속되고 있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오밀조밀하게 암석들이 모여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엄~청 띄염띄염있었다. 한눈에 풍경을 담았으면 아름다웠겠지만 하나씩 따로따로 보니 그냥 바다에 암석 몇개가 있는 것 뿐이었다. 지루한 풍경이었다. CF는 CF일 뿐이었다.
배는 밋밋한 풍경을 계속 보여주다 카약을 타는 곳에 잠시 정박했다. 사실 카약이란게 어느정도 물살의 세기가 있어야 노를 저으며 쭉쭉 나가는 맛이 있는데 이곳은 너무나 잔잔한 바다였다. 뒤에 탄 친구와 손발이 맞지않아 더디게 앞으로 나갔고, 계속 카약이 기우뚱기우뚱하니 겁이났다. 물에 빠지는 것은 둘째치고, 카메라와 핸드폰이 가장 걱정이었다.
뜨거운 태양밑에서 힘차게 노를 저으나 앞으로 나가지 않으니 재미가 있을리가. 더운 날씨에 술도 다시 올라오는것 같았다. 그래도 남들 가는 길을 따라가 사진을 한 두장은 찍었다. 내릴 때 뒤짚어질까봐 어찌나 무섭던지 한참을 어떻게 내릴지 고민하다가 카약 직원이 잡아줘서야 겨우 빠져나왔다.
이번에는 동굴이었다. 이 곳 역시 CF에서는 엄청난 장관의 관광지로 나왔지만, 역시나 별로였다. 각양각색의 조명은 너무나 인위적이어서 도저히 정감이 가지 않았다. 발길이 머무는 곳 없이 쭉쭉 앞으로 걷다보니 20여분만에 동굴 투어가 끝났다.
저녁 8시쯤 호안끼엠 호수 앞에 우리를 내려줬다. 함께 투어한 여자분은 곧바로 남부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내려갈꺼라며 우리와 저녁식사도 하지 못하고는 헤어졌다. 친구는 오늘만큼은 맛있는 식사를 하기 원한다며 좋은 레스토랑을 가자하였다. 나 또한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기에 길을 걷다 꽤 괜찮아보이는 이탈리안 퓨전 레스토랑에서 풍성한 저녁식사를 마쳤다.
오늘도 숙소에서는 프리 비어 타임을 진행중이었으나, 도저히 술은 입에 델수가 없었다.
2016.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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