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방비엔의 꽃은 뭐니뭐니 해도 튜빙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시즌'
내가 갔을 때는 비시즌이었다. 마을에 여행자들이 별로 없었고 앞서 쓴 이야기의 블루라군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그 유명한 곳도 별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튜빙을 할 때에도 사람이 별로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했다. 라오스를 다녀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가 유치원생도 아니고, 튜브를 타려고 튜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진정한 튜빙의 목적은 강을 따라 양 옆으로 늘어져 있는 노상 술집에서의 파티를 즐기기 위함이다.
강물을 따라 튜브를 타고 둥실둥실 떠다니다가 가고 싶은 술집이 있으면 손만 들면 된다. 그러면 물가에 나와있는 술집 직원들이 페트병이 달린 긴 줄을 내쪽으로 던진다. 어찌나 정확한지 못잡을 일이 거의 없다. 줄을 잡으면 직원들이 열심히 술집 방향으로 끌어당긴다. 완전히 다 끌어당기면 튜브에서 내려 술집으로 입장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튜브 파킹까지 풀코스로 대접해준다.
술집을 들어가면 술집마다 다르지만 농구, 배구, 족구 코드 등 다양한 코드들이 있으며 이것 저것 잡다한 게임들이 널부러져있고 한 쪽에는 술을 살 수 있는 곳이 있다. 방비엔의 시내 슈퍼보다 비싸지만 2000원정도면 맥주 한 병을 살 수 있다. 그저 그 곳에서 술을 마시면서 그 곳 사람들과 진탕 놀다가 다시 튜브를 잡아타고 둥실둥실 강물을 떠다닌다. 만약 다음 술집에 가고 싶다면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그저 손만 들면 된다.
그러나 술을 먹고 물놀이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실제로 과한 음주를 하고 강에 빠지거나 목숨을 잃었다는 소문을 쉽게 들을 수 있다. 소문인지 진실인지는 각자가 판단 할 몫이다.
아,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냥 강물 따라 튜브타는 것으로 만족하면 된다.
튜빙을 하기 위해서는 튜브만 빌리면 되는데 60000킵정도로 아주 저렴한 편이다. 튜브를 빌린 곳에서 썽태우를 타고 강의 상류지점으로 데려다준다. 썽태우를 타기 전에 돈과 핸드폰을 넣을 방수팩을 급하게 샀다. 혹시 모르니 구명조끼도 하나 챙겼다. 약 15분 정도를 달린 후 멈추더니 강 쪽으로 가서 알아서 튜브를 타고 내려가면 된단다. 같이 탄 서양애들은 신나서 미쳐 뛰어갔다. 나와 형도 튜브 위에 몸을 눕혔다. 둥실둥실, 기분이 좋다. 햇살도 따사롭고 물도 시원했다. 튜브를 탄지 한 5분이 되었을까. 벌써 1번 술집이 보였다. 나와 형은 어찌 할까 이야기하다가 짝수 술집들만 가기로 결정하고 과감히 1번은 지나쳤다.
한 5분을 더 갔을까. 바로 2번 술집이 나타났다. 멀리 보이는 직원들한테 손을 흔드는 휙~하고 패트병이 날아왔다. 2번 술집 안으로 들어가니 서양 남자 2명 있었다. 망했다. 이왕 왔으니 형하고 맥주를 하나씩 사서 마시면서 농구코트에서 농구도 한 판했다. 하지만 사람이 없으니 할 것이 없었다. 맥주나 한병 더 먹으면서 한쪽에 누워 쉬었다.
조금 기다리면 사람이 올 줄 알았는데 전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번 술집을 나갔다.
얼마나 갔을까 3번 술집이 나왔다. 우리는 짝수 술집만 가기로 했기 때문에 3번을 통과했다. '10분만에 3개의 술집이 나타났는데 마지막 번호는 도데체 몇번일까'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한 20개는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러나 곧 나오는 표지판에는 다음이 마지막 바(Bar)라고 써 있었다. 정말 망했다 싶었다. 성수기에도 4개의 바밖에 없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갔을 때는 4개의 바가 끝이었다. 후회를 하더라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는 법. 튜브는 천천히 4번 바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튜브에서 슬쩍 보니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결국 마지막 바도 지나쳤다.
이제부터는 정말 둥실둥실 떠다니기만 할 뿐이었다. 물의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슬슬 지루해져서 노래를 들으려 방수팩을 꺼냈더니 안에 물이 가득하다. 물을 담기 위한 방수팩인 줄 알았다. 어이가 없었다. 순간 멍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방수팩 안의 물을 뺐지만 이미 늦었다. 핸드폰이 작동하지 않았다. 돈은 다 젖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물에 오래 있었더니 몸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유속이 느려서 재미도 없고, 핸드폰은 고장나서 노래를 들을 수도 없고, 기대했던 바는 가보지도 못하고, 손으로 노질하는 것도 힘들고.
그러나 최악은 끝나지 않았다. 강물이 코너 부분에서 갑자기 빨라졌는데 물이 너무 얕아서 엉덩이가 돌뿌리 부딪혔다. 정말 골반뼈 부러지는 줄 알았다. 엄청난 통증이었지만 계속 낮은 수심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픔을 참으며 내려갔다. 더 이상 튜브를 타고 싶지 않았다.
내릴 수도 없고 내린다고 해도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 답답하다 생각하던 그 때, 100m 앞쯤 일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둥실둥실 떠가고 있었다. 쏟아지는 햇살을 즐기는 듯한 자세로 아주 여유로워보였다. 그를 보며 '아...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나도 좀 더 여유롭게 햇살을 즐기자'는 개뿔 '저 인간은 춥지도 않나, 정말 여유있게 가네... 이게 재밌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말이라도 걸어보자는 생각에 손으로 노를 저으며 따라가는데 물의 흐름을 잘 못 타서 근처로 가지를 못하고 지나치고 말았다.
앞을 봐도 사람이 없고 뒤를 봐도 사람이 없다. 형과는 이미 한참 전에 떨어졌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일단 내리기로 했다. 있는 힘껏 손으로 노를 저어 강변으로 가니 자갈, 모래등에 걸려 튜브가 멈췄다. 무거운 튜브를 짊어매고 골목을 따라 나가니 현지인들이 사는 집들이 나왔다. 대충 튜브를 보여주고 이곳 저곳 화살표를 찍으니 한 방향을 알려줬다. 터벅터벅. 패잔병 마냥 한참을 걸어가니 마을이 나왔다.
튜브를 빌린 곳에 가서 튜브를 반납하고 형이 왔나 안왔나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아까 여유로워 보이던 일본인이 올라왔다. 근데 한국말로 욕을 하면서 올라오는게 아닌가. 한국사람이었다. 형을 기다릴 겸 인사를 하고 '아까 봤는데 너무 여유롭게 튜빙을 하는 것 같아서 대단하다 생각했다'고 이야기하니 '너무 재미없고 너무 추워서 맨탈이 나깠을 뿐'이라 대답했다.
튜빙. 중요한 것은 '시즌'이다.
형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튜브 가게 앞으로 왔다. 형 또한 올라오면서 욕을 했다.
형을 보자마자 내 핸드폰 고장났다 이야기하니 자기 것도 물이 다 세서 돈이 다 젖었단다. 바로 방으로 돌아와서 베개와 베개사이에 핸드폰을 넣어놓고 충전기를 꼽아 핸드폰을 뜨겁게 만들어 안에 있는 물기를 증발시켰다.
저녁을 먹고 오니 다행히 핸드폰이 살아났다. 하지만 스피커와 홈버튼을 잃었다.
13.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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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6 - [지구별 한바퀴 - 세계일주/아시아] - 라오스 방비엔. #12 액티비티의 천국 암벽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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