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비자 신청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형과 여자애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형은 파슈파티나트와 보드나트를 가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여자애와 같이 택시를 타고 가다 파슈파티나트를 구경하기 위해 중간에 택시에서 내렸다
파슈파티나트 입구쪽으로 걸어 갈 때부터 나의 축복을 빌어주는 척하며 돈을 강탈해가는 수많은 수행자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이런 수행자 인척 수행자 행세를 하는 수행자가 아닌 장사꾼들을 싫어했다. 그들이 진짜 수행자인지 아닌지는 관심이 없을 뿐더러 알고싶지도 않았다. 그들이 진짜 수행자라도, 그들에 대해 가짜 수행자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그다지 미안해하지 않았다.
불쑥 얼굴을 내 앞에 들이밀고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여 기껏 찍어주면 돈을 달라하고, 이 상황이 벌어질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사진을 찍지 않고 피하면 저주를 퍼붓는다.
단 한번도 그들에게 나의 안녕과 축복을 기원해달라 한적이 없건만 그들은 무엇이 그리 내가 못마땅하여 내 뒷통수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지 알수가 없다.
수행자면 수행자 답게 행동하라는 말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의 수행 혹은 수행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 자체를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혹여 그들이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이 도달하고자하는 바를 수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생각한다면 할 말은 없다.
수 많은 거짓 수행자들을 지나쳐서 간 파슈파티나트의 입장료는 상당히 비샀다. 괜찮은 식당 달밧이 150~200루피 정도 인 것을 감안하면 나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학생 할인을 받으려고 했지만 국제학생증을 숙소에 두고 와서 어쩔 수 없이 1000루피를 다 지불하고 들어갔다.
사원 내부는 그다지 볼 것이 많지 않다. 다리를 건너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리탑같은 것들이 나오고 그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수행자들 몇몇만 보일 뿐이었다.
사원 안쪽 모습. 몇 장의 사진이 더 있지만 느낌이 다 비슷하다.
파슈파티나트는 사원이면서 인도의 갠지스강(강가)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다리를 건너기 전 양 옆으로 화장터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바라나시 강가와 가장 크게 다른점은 사진찍는 것을 허락한다는 점이다. 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무척 예의가 없는 행동이지만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꽤 오랫동안 화장터에서 화장의 과정을 지켜봤다. 바라나시 화장과 무엇이 다를까 궁금했다.
바라나시 화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지켜보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는 모르지만 일단 네팔 화장은 시신이 관에 담겨서 오면 봉인되어있던 관을 열어 시신을 꺼냈다. 그 사이 화장터에서는 불이 준비되어지고 가족들과 지인들은 그를 떠나 보낼 준비를 한다. 얼굴과 발 부분을 감사고 있던 천을 풀어 시신의 얼굴과 발을 흐르는 강물로 닦아준다. 그리고는 시신을 화장한다.
내가 지켜본 사람은 네팔의 유명인인지 시신을 두르고 있던 천과 관도 다른 일반인들과 달랐으며 화장터는 건너편은 물론 다리위까지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의 화장을 지켜봤다.
멀리서 본 시신의 얼굴은 서른 중반정도 되어보이는 젊은 얼굴이었다. 아직도 서럽게 울던 그의 아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원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사람들이 모여서 쉴 수 있는 넓은 평지가 나온다. 공원이라 부르기에는 약간 애매하지만 사람들이 쉬기에는 괜찮은 곳이었다.
가족들과 온 사람들은 돗자리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커플들은 뼈가 시리도록 부럽게 사랑을 나누었다. 사원에서 올라온 동물들인지 군데군데 원숭이들이 사람의 음식을 훔쳐가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사실 그다지 볼 것이 많은 곳은 아니라 공원을 나와 바로 보드나트로 향했다. 보드나트까지는 충분히 걸어갈만한 거리기 때문에 지도 한장을 들고 천천히 걸어갔다. 꼬마애들이 정겹게 우리에게 뛰어왔고 마을 사람들과도 눈인사를 주고 받으며 걸어갔다.
보드나트는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 입구 바로 앞은 대로가 뻗어 있어서 많은 봉고차들이 그 앞을 지나다녔다.
Bodh는 깨달음, nath는 사찰이란 뜻으로 보드나트는 힌두교의 성지가 아니라 티벳인들의 불교성지다. 스투파 한가운데에는 지혜의 눈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자세히 보고 있으면 모든 걸 관통당할 것 같은 신비로운 눈이다.
내가 갔을 때에는 스투파 보수공사 중이었다. 인부들이 줄에 메달려 스투파의 반원을 깎아내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기적으로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스투파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같이 너무나도 진지하다.
석가모니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이든, 줄에 메달려 스투파를 보수공사하는 사람이든, 스투파 주변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이든.
그러나 아무나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다듬고 정진하지 않으면 부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오체투지. 그들만의 방법으로 도를 닦는 모습이 경건했다. 괜스래 나도 마니차를 한번 돌려본다.
보드나트가 지혜의 눈이 있는 스투파만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곳에서 준 지도를 보니 몇 군데 더 있는 듯 보였지만 내일 포카라를 가기 위한 버스표를 찾아봐야해서 숙소로 가야만 했다.
보드나트 입구로 나와 지나가는 봉고차에 '타멜거리~' 소리치니 타라고 손짓하길래 그냥 탔다. 한 20여분 갔을까 갑자기 내리란다. 너무 이상한 곳에서 내려줘서 주변 네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타멜거리는 한참 더 가야한단다. 이런...
다시 '타멜거리~'하고 소리치니 지나가는 봉고차 한대가 섰다. 타멜거리까지는 가지 않고 타멜거리 근처까지만 갔다. 도착해서 20분 정도를 다시 걸어갔다.
숙소에 돌아가기 전 버스표를 알아보기 위해 현지인들에게 버스터미널을 물어보니 여기서 한참을 더 가야한단다. 간이 버스정류장은 따로 없는지 물어봤지만 자세히 모르는 듯 했다. 어쩔 수 없이 숙소로 돌아와 버스표를 샀다.
관통당할 것 같은 눈이다.
라오스 중고장터에서 산 2000원짜리 파란잠바를 입고 기념촬영.
2013년의 마지막 날을 이대로 보내기에는 무엇인가 아쉬웠다. 형 역시도 마찬가지인듯 보였다.
숙소에서 잠시 쉰 뒤 우리는 무작정 술을 한잔하기 위해 타멜거리로 나왔다. 사람들이 신나서 노래를 부르고, 타멜거리 입구쪽에서는 공연을 하는지 스테이지가 마련되 있었다. 앞으로 뚫고 들어가려 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남자 둘이 맨정신에 놀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역시나 갈 곳은 술집밖에 없다. 근처 네팔인이 하는 한국식당으로 가서 술을 마셨다. 한잔 두잔 맥주를 마시다 보니 어느새 취해서 고량주를 마시고 있는 우리였다. 12시가 되기 전 나와 우리는 좀 더 괜찮은 분위기의 술집으로 옮겼다.
그 곳에서 2014년 1월 1일을 맞이했다. 술 취한 남자 둘이서.
타멜거리로 걸어가다가 육교에서 찍은 사진.
술 먹으러 갔던 곳에 밴드공연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냥 시끄러웠다.
13. 12. 31.
다음이야기
2015/07/29 - [지구별 한바퀴 - 세계일주/아시아] - 이야기 네팔 포카라. #22 결국은 안나푸르나 라운딩.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