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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아프리카

남아공 케이프타운. #142 죽음의 고비를 넘기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7. 5. 7.

아침부터 분주하게 인터넷 검색을 하고있는 히로키의 표정이 심상치않았다. 다른날 같았으면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나오미도 히로키 옆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컴퓨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함께 테이블마운틴을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려했지만 그들의 표정을 보니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무슨일이지 물어보니 자신들의 신용카드에서 1,000만원이 빈트훅에서 인출되었단다. 거래내역을 같이 살펴보니 호텔에서 200만원, 음식점에서 200만원, 가구점에서 600만원정도가 인출되어있었다. 카드를 복제당한게 분명했다. 일단 사용정지는 시켰는데 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날짜상 카드 사용일이 우리가 남아공으로 넘어오고 나서였기에 입국기록을 일본 은행에 전달하면 충분히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 위로했지만 그들의 머리속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빈트훅에서 차를 렌트할때 만났던 직원이 의심되었다. 우리가 차를 반납한 날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실제로 카드를 사용한 것도 렌트를 할 때 뿐이었단다. 약 2시간여를 같이 있었줬으나 내가 있는다고 크게 문제가 해결될리는 없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시내로 가는 트램을 탔다.













트램에서 바라보기에 테이블마운틴은 그다지 멀지 않아보였지만 걸어서 가니 엄청 먼 길이었다. 거기다 길을 잘 못들어 한참을 돌아 입구로 갔으니 트래킹 시작전에 이미 1시간 30분을 걸은 상태였다. 초입에는 곤돌라가 운영되고 있었는데 타고 움직일 내가 아니었다. 

성큼성큼 잘 걸어올라갔지만 점점 지쳤다. 점심도 거의 안 먹은 상태로 움직였기에 나중에는 정말 하늘이 노래질 정도로 힘들었다. 마지막에는 5분을 걷고 5분을 쉴정도로 체력을 바닥 상태였다. 약 3시쯤이면 꼭대기에 도착하지 않을까 했지만 4시가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꼭대기에서 바라본 풍경은 사실 그냥 그랬다. 시그널 힐에서 본 야경이랑 비슷한 모습이었다.

너무나 갈증이나 물을 한병 사려는데 작은 가게의 생수가 750ml에 3,000원정도로 비쌌다. 인간적으로 너무 비쌌기에 안 사먹고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마셨다. 나도 미친게 분명했다. 가장 경치가 잘 보이는 돌 위에 올라가 체력을 회복할 겸, 전망을 즐길 겸 누웠다. 어느정도 쉬니 체력이 회복되었고 더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을 시작해야만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돈이 아까워도 곤돌라를 타고 내려왔어야했다. 배가 너무 고파 아사직전이었고, 미리 가져간 물이 다 떨어져서 미치도록 타는 갈증을 해결할 방법은 없었으며 기나긴 산행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해는 눈에 보일정도로 빠른 속도로 져서 어느새 붉은 노을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심리적으로 압박감에 짖눌렸다. 

지도 어플을 켜니 지금 내려가는 길 말고 하나의 길이 더 있었기에 그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만약에 지도의 길이 틀린다면 나는 꼼짝없이 야간의 산에 갖혀있을 수 밖에 없었다.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내려오는 길, 더이상 갈증을 버틸 수 없었다. 길 옆에 작은 샘물에 다가가 물을 마셨다. 더러운 물인지 깨끗한 물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 물을 마시지 않으면 언제 다시 물을 만날 수 있을지 보장할 수 없었으며 타는 갈증을 안고 하산을 지속할 자신도 없었다. 한참을 꿀꺽꿀꺽 마신 후에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내려왔다.

'틀린 길이면 어쩌지.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데' 머리속에는 이 생각뿐이었다. 길이 끊어져있다면 수풀사이를 헤치고라도 밑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해는 이미 지평선 아래로 숨었고 어스름한 붉은 기운만이 길을 밝혀주고 있을뿐이었다. 콩닥콩닥 가슴을 조리며 내려가니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올바른 길이었다.

'살 았 다'


역으로 직진해야만 했다. 트램이 끊기면 파인랜드까지 가는 길을 알지도 못할뿐 아니라 밤늦게 케이프타운의 외곽을 돌아다니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지도에 나오는 지름길로 무작정 걸음을 옮기니 시내로 연결이 되었다. 너무나 굶주린 상태였기에 주유소 옆 햄버거 집에 들어가 가장 비싼 햄버거를 주문했다. 치킨, 감자튀김, 햄버거, 콜라를 먹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달콤하고 부드러우면 짭짤한 음식이 또 어디있을까 싶었다.



역에 도착하니 전광판에 마지막 트램이 10분있다 출발이라 써있었으나 매표소의 문은 닫혀있었다. 트램은 운영되는데 표를 안판다니 이 무슨 조합인가 싶었지만 어쨋든 돌려 생각해보면 공짜라는 소리 아니겠는가.

늦은 시간이 그런지 트램 내부에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탄 다음역에서 흑인 4명이 올라탔는데 이들 행동이 대단했다. 일단 창가에 앉아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괜히 눈을 마주쳐 긁어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이어폰을 꽂고 창밖을 주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에게 한 남자가 다가오는게 아닌가. 쫄지 않기위해서 노래를 들으며 살짝 흥얼거렸는데 귀에 거슬렸나...

마주앉는 트램 건너편 자리에 털썩 앉더니 그는 웃으며 어느나라에서 왔는지 물었다. 나름 드레드락도 하고 있고, 여행자처럼 보이는 깔끔한 옷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단번에 여행자인걸 파악했는지 궁금했다. 한국사람이 대답하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케이프타운의 밤은 위험하다하였다. 어디에 가는지 물어보길래 파인랜드 역으로 간다하니 자신과 친구들이 너를 지켜주겠다며 그들의 친구들을 불러 내 옆칸에 앉혔다. 무서워죽을 것 같았다. 제발 나를 가만히 나둬줘.

어찌나 파인랜드까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는지, 밖을 보고만 있기에도 그렇고 그들과 눈을 마주쳐 이야기를 하기도 이상했기에 애매한 시선처리를 이어나갔다. 드디어 파인랜드 전역에 도착하니 그들이 내 어깨를 툭툭치며 다음 역이 파인랜드라 알려주었다.

'나도 알아 제발 좀 꺼져. 너네가 제일 무서워'라고 속으로 이야기했지만, 겉으로는 너무나 고맙다는 격한 리액션을 하며 살랑살랑 꼬리를 치는 애완견마냥 실실웃었다.

정말 나를 파인랜드까지 안전하게 보내주려했던것인지 그들은 역에 도착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에서 밖을 쳐다보며 안전하니 빨리 뛰어들어가라하였다. 나름 고마웠다.


감자 샐러드를 해먹으려고 큼직한 감자 2개를 사갔는데 안에는 고기파티가 진행중이었다. 그재서야 아침에 고기파티를 할 것이니 일찍 오라 한 말이 기억났다.

한발 늦었기에 그냥 감자를 먹는데 히로키가 다가왔다. 어찌되었는지 물어보니 카드는 잘 정지했고 은행의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라 하였다. 돈을 꼭 찾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있는데 숙소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한 두명씩 모여들었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여행자가 아니라 다들 봉사활동가였다.

그 중 리더 아저씨가 있었는데 꽤나 멋진 사람이었다. 나름 남아공에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던 그는 세상에 사랑과 평화가 너무 없어졌다며 회사를 팔아버리고 그 돈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하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우리에게도 도움이 필요하면 메일을 보내겠다하여 우리의 메일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들이 준 와인을 한 두잔 마시도보니 어느새 취기가 올라왔다. 조금 더 마시고 싶었지만, 오늘 하루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을 넘겼기에 휴식이 필요했다.


2014. 05.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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