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구별 여행기./13, 필리핀

With English, 세부. #3 찰나의 시간을 경험하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8. 1. 7.

대한민국을 떠나 호주에서의 약 11개월간의 고달픈 노동자 생활을 마치고, 필리핀에서의 약 1달간의 생활이 지났다. 세계일주를 떠나기가 코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지만 여행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여행의 기본장비인 카메라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여러가지 물건을 공수받아야했고,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었기에, 나의 안녕을 확인시켜줄겸 부모님을 필리핀으로 초대했다.


늦은 밤 세부에 도착한 부모님은 나를 바로 앞에 두고도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기 전까지 알아보지 못했다. 수염도 기르고 있었고, 머리도 길었으며, 살도 많이 빠져있었다. 고생을 많이 한 얼굴로 보였는지 걱정부터 했고, 약간 눈시울이 불거진 듯 하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긴 시간이 있지 않았다.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총 이틀이 전부였다.






관광보다는 같이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호텔에서 많은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택시를 타기보다는 지프니를 타고 다녔으면 하는 나의 마음에 두분다 조금은 불편했겠지만 지프니를 타고 이동했다. 혹시나 안 좋은 일이 발생할까봐 걱정했지만 그런일은 없었고, 부모님도 은근히 새로운 문화를 접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았다.

고급레스토랑을 갈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식사를 일반 음식점에서 해결했다. 물론 한끼에 몇백원짜리 Real Local식당에서는 먹을 수 없었지만, 나름 현지 입맛에 맞춰진 식당이었을텐데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셨다. 

세부시내에 있는 호텔에서 밤마다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호주에서 수해를 겪은 일도 이야기하고, 그간 어떤 일을 해왔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왔는지, 어떠한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당시 일반의 대학생과는 다르게 굉장히 히피적인 마인드가 강했기에 조금은 당황하셨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이제야 드는것을 보니 나도 나이가 조금은 더 먹었고, 환경에 적응한 사람이 되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영어학원의 친구와 우연히 방문했던 유교사원도 다녀왔는데 강한 뙤약볕 아래에서 오랜시간을 걸어야했지만, 즐거워하셨다.

필리핀까지 왔는데 스노쿨링을 안하고 보내는 것도 아쉬우니 막탄도 들렀다. 가는 택시에서 어머니가 식당에 20만원정도의 돈이 들어있는 봉투를 놓고 온 것 같다고 자책했지만, 어차피 그 돈봉투가 그 식당에 그대로 있을리가 없었기에 그냥 잊고 여행을 하자하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울상이었다. 그러나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고히 모셔져있는 돈봉투를 금세 발견하고는 웃음을 되찾으셨다.

스노쿨링은 친구들과 막탄에 몇 번 갔을때마다 이용했던 야매 아저씨를 이용했다. 돈을 조금 더 쥐어주니 우리만을 태우고 가장 큰 배를 몰고 나갔다. 수영을 못하는 어머니는 구경만 하셨고, 나는 힘들어서 오랜시간 스노쿨링을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아주 재밌어하셨다. 

배려심이 깊은 배의 선장은 떡밥 비스무리한 것을 어머니께 주고는 이걸 바다에 뿌리면서 물고기들과 놀라했다. 쪼가리를 조금 뿌리니 물고기가 순식간에 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끝끝내 어머니는 물에 들어가지 않으셨고, 아버지는 물밖으로 나올 줄을 몰랐다.







엄청난 관광지를 투어한 것도 아니었고, 내가 그런 관광지를 알지도 못했다. 그저 이틀간 함께 할 수 있음에 행복했다. 떠날때가 되니 아쉬움이 남았다. 어떤 부모가 아프리카를 간다하는 아들놈 걱정을 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가지 말라고 할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말 없이 잘 다녀오라며 응원을 해주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시간이 다 되었다는 전광판 알림에 부모님은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혼자 택시를 타고 영어학원으로 돌아오는데 찰나와 같다는 표현이 어떤 뜻인지 그제서야 느낄 수 있었다. 입에서 나오늘 말과 다르게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보이면서 한국으로 돌아간 두분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조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겠습니다.'


2013. 11. 15~1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