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남미

콜롬비아 칼리. #214 잠시 마약단속을 위한 검문이 있겠습니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9. 5. 26.

칼리는 나에게 그저 메데진으로 이동하기 위한 환승도시일 뿐이었다. 

다른 여행자들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 이 곳은 살사, 살사, 살사 그 외에는 특별한 무엇인가를 할만한게 없는 곳이다. 춤에 관심있는 여행자들이 살사를 배우거나, 공연을 즐기지만 나와같이 기본적인 배경지식도 없이 보기에는 재미가 없어보였다. 이는 그림, 춤, 박물관, 음악 모든게 마찬가지다.


같이 칼리에 도착한 형님 역시 딱봐도 춤은 젬병이었다. 누가봐도 관심이 없을 몸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칼리에 머무는 시간 없이 바로 메데진행 버스를 잡아타고 떠날 예정이었지만 버스는 저녁 시간에 단 한대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약 8시간 이상 칼리에 발이 묵기게 되었다. 그때 그때 일정을 맞춰 여행하는 자들이 숙명과도 같은 문제였다.




8시간을 버스터미널에만 있을수는 없으므로 일단 나왔다. 지도를 켜서 공원으로 표시되는 곳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 따위의 흔히 볼수 있는 정비소가 아닌 뭔가 거대한 형틀을 제작하고 수리하는 곳을 지나 지도에 표시된 곳에 도착하니, 워터파크였다. 적어도 밖에서 볼때 미끄럼틀이 있었으니 워터파크가 맞을 듯 했다.


바로 옆 육교가 하나 있었는데 형은 지독한 더위에 지쳤는지 육교한편에 앉아있었다. 형에게 다가가 꼬셨다.

'형님 물놀이나 하다가죠?'

형님은 안쪽을 쓱 보더니 저기 애기들 밖에 없는데 들어가서 우째노냐 했지만, 나는 반대였다. 몸매가 쭉쭉빵빵, 식스팩이 빵빵 있는 콜롬비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놀면 기가 죽을지도 모르나 여기서는 그런 눈치 안보고 축처진 뱃살 내놓고 놀 수 있지 않겠냐고.

형은 조금 고민하는 듯 했지만 끝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헤어져서 나혼자라도 들어갈까 했으나 워터파크에서 혼자 무슨 재미로 놀까 싶은 마음에 이내 함께 자리를 떠났다. 워터파크 하나면 8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듯 했는데... 아쉬웠다.




시장 골목을 지나 직진으로 쭉 뻗은 길 끝에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어서 올라가면 전망이 좋을 듯 하였으나 막상 올라가보니 그다지 좋은 풍경은 아니었다. 이곳 저곳 건물이 걸려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한쪽 그늘 밑에 누워있는데 어슬렁거리는 경찰이 보였다. 콜롬비아 내에서도 위험하기로 유명한 동네 중에 하나가 칼리이기에 경찰이 있음에 심리적으로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그들이 다가왔다.

뭐, 관광객에 대한 자그마한 호기심일 수 있기에 별다른 생각없이 누워서 쳐다보는데 내 앞에 멈췄다. 그리고 다음말이 상당히 어이가 없었는데,

가방을 까라고 했다. 앞뒤 전후 사정 설명도 없이 가방을 까란다. 내 옆에 있는 형님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안전을 지켜줄것이라 믿었던 경찰이 무서워졌다. 경찰은 일반 경찰도 아니었고 무장경찰이었으며, 혼자도 아닌 4명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스페인어라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니 다른 경찰이 영어로 대충 설명을 해줬다.

대략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이 주변에서 마약 거래가 많이 일어나는데 너네들이 마약 거래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니 가방을 확인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속으로 돈을 뜯어내려는 것인가 의심이 들었지만, 멀지 않은 곳에 우리를 쳐다보는 콜롬비아 커플도 있었고, 공원 바로 밑에는 시장이 있어서 사람들의 왕래가 있는 편이니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괜히 심기를 건드려 총구가 내 쪽으로 향하는 날에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지도 몰랐다. 

벤치에 누워있던 나는 어느새 정갈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당연하게도 마약은 없으니 가방을 열었다. 내 몸에 착 붙어있어서 안을 확인하기 어려웠는지 가방을 벗어서 달라고 했다. 점점 아주 상당히 의심스러웠다. 

안에는 돈, 핸드폰, 카메라는 물론, 가장 중요한 여권도 들어있었다. 경계심을 풀지 않고 가방을 벗은 후에 내가 직접 가방을 열어서 보여주었다. 도둑들이 대놓고 경찰 옷을 입고 총까지 들고 다니면서 여행객을 털어갈것 같지는 않으나, 그래도 절대 보조가방을 그들의 손에 넘겨 줄 수는 없었다. 어떤 방식으로 기가 막힌 수법으로 내 물건들을 털어갈지도 몰랐기에 눈에 불을켜고 쳐다봤다.


무장 경찰 셋이 달라붙어 가방을 이리저리 털어보았지만 뭐가 나올리는 없었다. 이제는 몸 수색도 했다. 바지 주머니는 물론 몸까지 만졌다. 상당히 불쾌했지만 방법은 없었다. 

털어도 아무것도 안나오니 그들은 우리에게서 멀어져갔다. 바로 사라져주기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다시 벤치에 누워 아무일 없다는 듯이 몇 분을 더 있다가 떠났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참 별일도 다 있네'하면서 짜증을 내니까 형님이 그랬다.

'야 너 거울부터 보고와, 누가봐도 겁나 약할것 같아' 


2014. 07. 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