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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남미

콜롬비아 메데진. #217 이상과 현실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하는 것인가.

by 지구별 여행가 2019. 5. 28.

어제의 숙소에 머물 생각을 하니 자동적으로 눈이 떠졌다. 짐을 싸자마자 체크아웃을 하고 형님네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했다. 어제 왔던 숙소였지만, 다시 찾으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 집이 그 집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어제와 비슷하게 주변사람들에게 물어 숙소를 찾았다.


침대를 배정받고 막상 누우니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이런 좋은 숙소에서 편안하게 하루를 즐기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형님과 함께 점심을 만들어 먹고 빛이 잘 들어오는 테라스의 썬베드에 누웠다.


약 4시쯤 형님이 장을 보러가자 했다. 그러면서 챙긴게 아줌마들이 마트갈때 끌고 다닐만한 작은 손수레였다. 가방을 메고 다니다가 힘들면 손수레를 꺼내 가방을 묶고 캐리어처럼 끌고다닌다고 했다. 튼튼함보다는 무게에 초점을 맞춘듯 그리 튼튼해보이지는 않았다.


주변의 작은 마트에서 고기와 각종 야채를 샀다. 저녁 메뉴는 후라이판에 고기를 구워먹기로 했다. 이후 술과 곁들여 먹을 안주거리도 장바구니에 넉넉히 담았다. 지금까지 얻어먹은게 미안한 마음에 오늘은 내가 살려고 하니 미안하게도 이번 음식들까지 형님이 계산을 했다.

혹여라도 음식이나 술이 부족하면 내가 사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덜 미안할듯 했다.





이 날 형님과 나는 죽기 직전까지 술을 마셨다. 별의 별 이야기를 다 했는데, 형님의 과거 이야기가 아주 인상깊었다.

현재 약사라는 형님의 꿈은 연극배우였단다. 20대에 대학교를 다니면서 작은 극단에 속해 연기를 함이 그렇게나 좋았었다는 형님은, 약사면허를 취득한 후에 약사가 되었지만 극단생활을 포기할 수가 없었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극단생활에 매진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모두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으며, 극단 내부의 몇몇 배우들에게 약간의 시기심을 받았단다. 

현실은 현실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극단생활을 접고 약사로서의 인생을 살다가 이제는 다시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세계일주를 떠나왔다고 했다.


훨씬 젊었을 적, 남이 여행 6개월간 해본 경험이 있다는 그는 술이 취할수록 '나는 아직 젊다'라는 말을 무의식중에 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하고 싶은 꿈에서 한발 물러나 살다가 나이가 들어도 다시 꿈을 향해 도전하는 결단력에 감탄하기도 했으며, 젊었을 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나이가 들었음에도 과거에 대한 미련이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모습에 안쓰럽기도 했다.

과연 나는 앞으로의 인생에서 꿈과 현실사이에서 어떠한 결정을 하며 살게 될지 궁금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그 많은 술이 부족해서 나가서 술을 추가적으로 사왔다. 사실 이정도면 나는 충분히 그만 먹어도 되었는데 형님의 기분이 업되어 이 분위기에 일방적으로 자리를 정리하기도 미안했다.

이후에도 술은 한참동안을 더 먹었다.


술을 먹는 도중에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이 50에 나이 20대의 젊은이와 이렇게 격없이 이야기를 나누는게 몇 년, 아니 몇 십년만이다. 내가 젊어진 것 같다.'

왜 술을 마시고 싶어하는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참으로 열린 마인드를 가진 괜찮은 아저씨이자 여행자였다.


새벽에 테라스의 의자에 쭉 뻗어버린 형님을 겨우 침대에 뉘였다. 맥주, 보드카를 섞어 마시니 나도 머리가 깨질 듯 했다. 쥐죽은듯 침대에 늘어졌다.


2014. 0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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