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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남미

콜롬비아 메데진. #215 형 그 종이 버리세요. 우리 이러다 죽겠어요.

by 지구별 여행가 2019. 5. 27.

메데진 남부터미널로에서 약 6~700미터만 걸으면 포블라도 역과 연결이 되었기에 굳이 택시를 탈 필요는 없었다. 형이 아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며 내린 곳은 산 안토니오역이었다.

어느 도시나 여행자 밀집 지역이 있기 마련인데 이곳은 조금 외곽이었다. 여행 중 만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강력하게 추천을 한 게스트하우스라고 하였다.



그를 따라가면서 수없이 많은 공사현장을 만났고, 막힌길을 두어번 돌아가는 수고를 했지만, 숙소는 찾지 못했다. 근처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없었다. 종이의 주소가 잘 못 됐거나, 그 사이에 그 끝내주는 숙소가 망해버렸거나. 둘 중 하나였다. 물론 전자겠지만.

죽을 죄를 진 사람마냥 미안해하는 그에게 상관없다 이야기하고 근처의 작은 숙소에 일단 짐을 풀었다. 주변에 숙소라고 할 곳이 이 곳 단하나였기에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나마 저렴한 값임에 위안을 삼았다.


그는 콜롬비아에 며칠 머물지 못하고 바로 보고타에서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했기에 아주 불친절한 중국식당에서 밥을 먹고 일정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보테로 박물관이었다. 대한민국 정규교육을 받았더라면 한번쯤 교과서에서 봤을만한 뚱뚱한 모나리자를 그린 사람이었다. 메데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 했는데, 넓은 광장에는 누가봐도 보테로 양식이라 불릴만한 뚱뚱한, 그러나 완벽한 근육질의 동상들이 모여있었다.

보고타에서는 보테로 미술관이 무료이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근처의 빛의 광장도 들렸다. 메데진은 위험한 치안과 마약왕 파블로의 고향답게 엄청난 양의 마약이 유통되던 악명높은 도시중에 하나였다. 물론 지금도 치안이 좋은 편은 아니나 많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생 작업과 어두침침한 골목마다 의도적으로 설치한 밝은 조명 덕에 전보다는 나은 도시가 되었다. 

빛의 광장은 메데진의 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곳이었다.


어스름이 해가진 빛의 광장 앞 벤치에 앉아 메데진의 하루를 구경하는 중 자그마한 축구공이 또르르 굴러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 셋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멀리서 손을 흔드는 아이에게 공을 패스해주니 얼마 안가 다시 또 공이 또르르 굴러왔다. 할 것도 없는데 아이들에게 다가가 같이 축구를 하자고 하니 흔쾌히 승낙했다.

아이가 셋이지만 2:2로 하기에는 밸런스가 안 맞았다. 3:2로 축구를 하기 위해 형님을 불렀지만 땀 나는 것이 극도로 싫다며 벤치에 누워버렸다. 

3:1로 축구를 했는데 기술이나 실력은 둘째쳐도 체력이 어찌나 좋은지 약 10분을 격렬하게 뛰니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땅바닥에 주저 앉아 포기의사를 밝히니 내 골대에 5~6골을 구겨넣고 인사를 고했다.


형님은 숙소를 알아온 다른 여행자에게 이것저것 정보를 많이 받아왔다. 

형의 말에 따르면 정보를 적어준 여행자가 메데진에는 진짜 끝내주는 클럽이 있으니 꼭 그곳에 들리라며 적어준 주소가 있는데, 그 끝내주는 클럽의 위치가 바로 여기라며 작은 쪽지를 펼쳤다. 얼마나 끝내주는 클럽인지는 모르겠으나 형님은 정말 이 클럽이 가고 싶었는지 아주 귀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종이에 적힌 종이를 보여주니 택시아저씨는 별 말없이 운전을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도착했다는 택시 아저씨의 말에 따라 밖을 내다보니 가로등도 띄염띄염있는 정말로 으슥한 도로 한복판이었다. 양쪽으로 건물이 있기는 했으나, 하나는 공사중으로 보였고, 하나는 높은 담에 가려져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택시기사가 혼동한듯하여 주소를 재차 확인시켰으나 여기가 확실하다고 했다. 누가봐도 이 곳에서 조금만 걸어다니면 갱스터를 만날 듯 했다.

네온 사인 하나 없는 이 거리에 무슨 클럽이 있을까 싶었으나 일단 한바퀴 둘러보자며 택시에서 내렸다. 하지만 곧 큰길로 뛰어가 다시 택시를 잡아탔다.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근방을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정말로 큰일이 날 것만 같은 골목이었다.


택시에 타서 다시 종이를 보여주면서 이 주소가 여기가 맞는지 물어보니 맞다고 했다. 이 종이를 준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형한테 이야기했다.

'형 이러다 우리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당장 그놈이 준 정보는 모두 버리세요.'


택시아저씨에게 유명한 클럽으로 가자고 이야기하니 다행히도 기본적인 영어는 알아듣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동안 달린 택시는 네온사인이 번쩍번쩍한 거리로 들어왔다.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도 많이 보였다. 멀뚱멀뚱 밖을 보고 있으니 택시 아저씨가 어느 한 클럽을 추천해주며 안으로 들어가라 하였다. 

우리가 생각했던 클럽은 춤을 추는 클럽이었는데, 여기는 전혀 아니었다. 수십명의 여성 접대부가 있는 거대한 바였다. 뭐 온 김에 가격이나 보고 가자는 생각에 앉아서 맥주를 시켰는데 우리나라 일반 술집에서 파는 술 보다 저렴했다.


맥주를 하나 시키면 여성 접대부들이 돌아다니며 자리에 앉아 맥주를 같이 마시고, 약간의 팁을 받아갔다. 현지인들 밖에 없는 곳에 낯선 동양인 두명이 오니 여성 접대부가 참으로 많이도 왔다갔다 했다. 그녀들은 영어를 전혀 못했기에 서로 할말은 없었다. 그냥 맥주만 홀짝 홀짝 마셨다.


맥주가 저렴했기에 망정이지, 우리가 먹은 6병의 맥주보다 훨씬 많은 팁과 훨씬 많은 맥주를 사주고 나왔다. 당시 환율로 1페소에 0.5원 정도였는데 한병에 2,000페소였으니 저렴하기는 참으로 저렴했다. 

이런게 호구당한건가 싶었지만 나름 재밌었다.


키토에서 칼리, 칼리에서 메데진 구간 모두 버스안에서 잠을 자고, 오늘 하루 종일 돌아다녔으니 피곤할만 했다. 정말 씻지도 못하고 기절하듯이 침대에 누워버렸다.


2014. 0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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