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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9, 그리스

유럽문명의 뿌리를 찾아서, 아테네. #4 고대하던 박물관, 그리고 물긷는 작은 소년.

by 지구별 여행가 2019. 7. 23.

비몽사몽, 가장 저렴한 티켓인 슈퍼에코 등급을 구매한 것 치고는 남부러울 것 없는 잠자리였다. 영화관에서 나와 페리 내부를 구경하려다가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아테네의 일출에 반해버렸다. 

얼마전 헝가리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로 부모님, 특히 어머니가 배를 타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많이 했다. 자그마한 페리가 아니기에 걱정말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지만, 어머니의 걱정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페리에서 내리자마자 아테네에 잘 도착했다는 인증샷을 찍어 전송했다. 

부둣가를 한바퀴 돌아볼까도 했지만 볼만한 것이 없어서 셔틀버스를 타고 피레우스 항구 입구로 나왔다.



미리 예약해둔 케라메이코스 근처 숙소로 가기 위해 메트로에 탑승했다. 

지금이야 이야기하지만, 동생은 나보다 그리스에 이틀 먼저 왔는데 첫날 메트로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가방이 조금 여행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을 하여 다른 가방을 들고 가기를 권했는데 동생말로는 그 가방으로 중동, 유럽 여행시 단한번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었다. 그러나 경계가 풀어지면 사고가 나기 마련, 어쨋든 소매치기는 벌어진 일이었다. 

그 때문에 메트로 안에서 엄청난 경계를 했다. 붐비는 지하철도 아니었고, 내가 바로 옆에서 보고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숙소로 들어가 이른 체크인이 가능할지 물어봤으나 거절당했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으므로 가방만 맡겨두고 일단 나왔다.

첫날 아테네를 갔을때, 아크로폴리스를 기준으로 오른쪽 지역을 여행했기에 이번에는 왼쪽을 여행할 차례였다. 통합입장권을 이용하여 갈 곳도 많았다.


그러나 첫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있었다. 그리스를 오기 전부터 엄청난 기대를 했던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이었다. 책 몇 편을 보면서 공부를 한탓에 사진으로 보던 유물들의 실물을 영접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허나. 어찌나 날을 잘 잡았는지 일주일중 오늘만 박물관 개장이 12시였다.









12시 전까지 통합입장권을 이용해 구경한 후 박물관으로 다시 가는 길에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테네 구시가지의 대부분 유적지가 그러하듯이 입장권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구경이 가능하지만 고대 아고라만큼은 절대로 밖에서는 안의 매력을 알 수가 없었다. 통합입장권을 사지 않은 사람들도 이 곳만큼은 꼭 구경을 하는지 줄이 길었다. 고귀한 귀족이라도 되는냥 통합입장권을 들이밀면서 줄을 서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게 돈을 더 내고 비지니스 클래스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의 심정인가 싶었다.


헤파이토스 신전은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압도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과거 3,000년 전의 고대 그리스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이 풍경을 오랫동안 보고 싶은 마음에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눈에 담아두었다. 풍경자체만으로는 어쩌면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한 수 위가 아닐까 싶었다.



안에 조성되어있는 박물관도 엄청난 매력을 뽐냈다. 걔중에 내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한 그림이 하나 있었으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를 접시에 그려져있는 물긷는 소년그림이었다. 

과거 3,000년 전의 고대 그리스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접시를 만드는게 지금처럼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전 과정이 수작업이었을 것이다. 물 깃는 소년이라면 계층적으로는 노예나 하층민일텐데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낸 그릇안에 신에 대한 예찬, 혹은 압도적인 자연 풍경, 강인한 그리스 군대를 그린게 아니라 하층민의 소소한 일상을 그렸다니. 이는 당시 그리스인들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한 이러한 접시를 수도 없이 생산해낼 수 있는 고도화된 문명을 보여주는 증거라 생각했다. 

거기다가 소년의 표정을 보면, 전혀 경직되어있지가 않다. 묘한 미소와 함께 장난스러운 눈꼬리, 경쾌한 발걸음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역동감을 나타냈다.

어마어마한 느낌을 준 그릇이었다. 이 그림 하나만으로 이 곳은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었다.


과거에는 박물관이라는 곳에서 재미를 찾지 못했다. 그 도자기가 그 도자기고, 그 청동칼이 그 청동칼이라는 느낌이었으나, 그 유물들이 제작된 년도로 시간여행을 떠나 그들의 입장에서 수많은 유물들을 본다면 단순한 항아리, 그릇, 칼, 그림, 조각이 아니었다. 혼이 담겨있는 예술이었다. 

나이가 들었는지, 보는 시야가 달라졌는지, 요즘은 박물관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동생이 그리스에 와서 첫 날 먹었다는 식당에 가서 간단하게 케밥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가는내내 마음이 설랬다. 

도착하니 줄이 꽤 길었다. 별로 사람들이 박물관에 흥미를 못 느껴 여유롭게 구경할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틀렸었다. 

이 곳에서 그동안 책으로 봐왔던 유명한 유물들을 전부 구경했다. 특히나 좋았던 것은 역시나, 쿠로스와 코레였다. 공부를 하고 보니 단순한 남상과 여상이 아니었다. 그리스 문화의 서막을 여는 위대한 한발자국을 이 곳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만 종종 만나봤던 안타키테라 기계까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박물관을 구경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태양빛이 뜨거워 선글라스를 쓰기 위해 동생이 나에게 맡겨둔 선글라스 통을 열어보니 선글라스가 없었다. 동생은 또다시 멘탈이 무너진듯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간의 행적을 복기하기 위해 작은 호텔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선글라스통을 받은 것은 오늘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맡길때였다. 어제까지는 분명히 선글라스가 있었다. 메트로에서는 동생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나 또한 동생의 짐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기에 선글라스를 훔쳐갈 틈은 없었다. 거기다가 선글라스 통을 열어 선글라스만 쏙 빼고 통은 다시 넣어두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론은 두개였다. 메인 배낭에 두고 왔거나, 페리에서 자는 동안 누군가가 훔쳐갔던, 흘렸던. 

그리스 스타일의 유명한 커피인 프라페를 다 마시고 발걸음을 제촉하여 숙소로 돌아왔으나 가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래도 페리에서 자는 동안 뭔가 일이 터진 것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더운 날씨였기에 낮시간은 숙소에서 보내기로 했다. 동생은 첫날 소매치기를 당했던 기억과 함께 선글라스까지 없어졌다는 사실에 분이 풀리지 않는지 낮잠을 자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는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는데 슬슬 잠이 올무렵 방구석의 어떤 남자가 계속 맥주를 마시면서 토할거 같은 소리를 내었다. 10초에 한번씩 헛구역질을 했고 약 5분에 맥주캔 따는 소리가 들렸다. 이 세상 맥주를 다 마시겠다는 속도였다. 

더블룸 가격과 같은 값을 주고 행동거지가 불편한 도미토리를 바보같이 예약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습관적으로 여행을 가면 항상 도미토리를 가야한다는 나의 고정관념으로 인한 잘못된 선택이었다. 

결국 뜬 눈으로 2시간을 보내고 숙소의 공동공간으로 나왔다. 동생은 아직도 분이 안풀린듯 했다. 바로 옆에는 동양인이 한명있었는데 딱 봐도 일본인이었다. 혼자왔었더라면 말을 걸었겠지만, 굳이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한두명씩 사람들이 나와 몇몇의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밤에 그들과 맥주나 한잔 할 생각을 하고는 동생을 데리고 나왔다. 

안에 있어봤자 계속 분노에 못이겨 사람이 피폐해질것 같았다.



케라메이코스는 우리가 첫날 머물렀던 구시가지 중심부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가기는 힘들었다. 근처 마을을 한바퀴 구경하면서 저녁식사를 할 곳을 찾기로 했다.

외곽으로 빠지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허름한 집들이 보였다. 그 사이로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자그마한 음식집에서 술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았다. 저녁메뉴만 괜찮으면 식사를 하려고 했떤 곳은 완전한 술집이었기에 먹을만한 음식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숙소앞에 있는 몇 곳의 식당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 곳이 맥주값이 가장 저렴했다.


앉자마자 시원스럽게 맥주를 마시니 한병, 두병 쌓이던게 어느새 다섯병까지 쌓였다. 낮잠을 자지 않은탓에 피로감이 엄청났지만, 동생은 맥주를 계속 마시고 싶어했다. 말그대로 근성으로 마셔주었다. 맥주 한잔에 하품이 한번 나왔다. 마지막 날이니 동생이 원하는대로 마셔주고 싶었으나 한계점이었다. 잠이 필요했다. 동생도 내 상태를 알아차렸는지 슬슬 정리하고 일어나자고 했다. 


계산을 하고 일어나려는데 종업원이 맥주 한병을 들고 오더니 자리에 내려놨다. 뭔가 착오가 있는거 같아서 우리는 시킨 적이 없다고 하니 서비스란다. 맥주 한병을 서비스로주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공짜 맥주가 피곤함을 눌러버렸다. 둘이 다시 컵에 한잔씩 따라 마시면서 왜 맥주를 서비스로 주었을까 생각했다.

나름대로 생각한 것은 우리가 맥주를 많이 마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 바로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음료수 한병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밖에서 아까부터 맥주를 마시던 사람은 맥주 한병으로 약 2시간이상을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꽤나 양반의 고객이었다. 




동생은 술을 조금 더 마시고 싶어했다. 나 역시도 취해서 자리를 정리하는게 아니라 피곤함에 정리하는 것이니 동생에게 약간의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어차피 내일 돌아가면 하루종일 쉴 예정인데 그깟 맥주 한병 더 못 마셔주겠나라는 생각에 근처 바에서 한잔 더 마시고 가기로 했다.

나는 제일 작은 맥주를 하나 시켰고, 동생은 정말 마시고 싶었다며 와인을 한잔 시켜마셨다. 와인한잔 마심에 좋아하는 동생 모습을 보니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가니 우리가 생각한거 외로 공동공간은 엄청 조용했다. 다 따로따로 컴퓨터를 하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왁자지껄 맥주를 마시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심각하게 조용했다. 맥주를 굳이 사왔더라면 마시는게 불편할 정도였다. 밖에서 마시고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을 해버렸다. 너무나 몸이 피곤했다. 며칠간 잠을 잘 때 쓰러지듯 자지 않은 날이 없는듯 하였다.


19.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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