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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9, 그리스

유럽문명의 뿌리를 찾아서, 산토리니. #3 유럽에서는 모두가 훌렁훌렁?

by 지구별 여행가 2019. 7. 23.

늘어지게 잘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생각외로 이른 시간인 9시에 일어났다. 11시에 체크아웃전까지 텔레비전을 켜놓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그리스 방송을 보며 침대위에서 뒹굴거렸다. 그 자체가 휴식이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이아마을에서 석양이 질 무렵 가서 낮의 모습도, 석양이 지는 모습도, 밤의 모습도 볼 계획이었으므로 시간은 넘쳐 흘렀다. 무작정 수영장의 썬베드에서 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산토리니섬의 다른 모습들도 보고 싶었다. 여러곳을 고민하다가 결국 정한 곳은 레드비치였다.


숙소 옆의 빵집에서 산 빵과 어제 먹다 남은 과자 쪼가리들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섬의 남쪽 끝에 위치한 레드비치를 향해 떠났다. 중간중간 차가 있다면 피라마을보다 훨씬 매력적인 숙소들이 많았다. 

동생이 왜 산토리니에서 렌트를 할지 물어봤는지 알거 같았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4륜 바이크를 타고 도로를 시원스럽게 내달리는 사람들을 접했다. 자유로워 보였다. 내가 보지 못하는 섬의 구석구석 모습을 보는 것도 부러웠다. 만일, 다음에 산토리니에 다시 온다면 꼭 바이크를 빌려야겠다 싶었다.






버스에서 얼마 걷지 않아 레드비치로 가는 길이 나왔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봤을 때에는 그다지 관광객들이 찾지 않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날씨가 좋은탓인지 사람이 많았다. 거무틱틱한 자갈밭 뒤로 보이는 붉은색의 암벽을 구경하며 해변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랐다. 많은 서양 여자들이 상의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당당하게 누워있었다. 심지어 바다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해변을 뛰어다녔다.

수 많은 해변을 다녀봤다고 생각했었는데... 4~5년 사이에 이렇게 문화가 바뀌었나싶었다. 아니, 유럽은 첫 여행이니 원래 유럽의 해변은 이런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너울치는 파도만 보고 올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바다에 들어가야겠다 싶었다. 챙겨온 맥주로 우리 자리를 표시해두었다.

일단 윗옷부터 벗었다. 동생이 또또 훌렁훌렁 벗는다고 했지만, 창피함은 없었다. 사실 이런곳에서 벗지 못하는게 더 창피한 일이라 생각했었다.


물로 뛰어들어가니 몸의 열이 푹~하고 식었다. 동생에게도 '서양 애들은 상의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잘만 노는데 너는 그냥 위의 옷만 벗고 들어와'라고 했으나 벗지는 않았고, 당연히 물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맥주를 한잔 마시고 바다에 담구고, 다시 맥주를 마시고 바다에 몸을 담궜다.

따로 수건을 가져오지 않아 옷이나 몸을 언제 말리나 걱정했지만 엄청난 햇살덕택에 금세 말랐다. 대충 옷이 말라 다시 숙소로 돌아갈 떄가 되니 동생이 양말을 벗고 살포시 발을 바다에 담궜다. 

그냥 돌아갔다면 내가 더 아쉬웠을 뻔 했다.


해가 진짜 길긴 길었다. 아직도 이아마을로 출발할 시간은 되지가 않았다. 책을 들고 수영장으로 가서 무작정 썬베드에 누웠다. 

그리고 다시 옷을 벗고는 수영장으로 뛰어들어갔다. 엎드려 썬텐을 하거나 책을 보던 고요한 수영장에 첨벙~하는 큰 소리가 나니 사람들이 쳐다봤으나 이내 시선은 거두어갔다.

동생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안으로 들어왔으나 물이 너무 깊어 발이 닿는 곳이 얼마 없었다. 너무 가파르게 바닥이 떨어져서 옆의 수심표시선을 보니 3m였다. 동생은 더 들어오면 익사였다.







해질녘 시간이 되니 피라마을 버스터미널은 이아마을로 가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운이 좋게도 바로 버스에 탑승 할 수 있었다. 버스에 타지 못한 사람은 또 20여분을 기다려야하나 싶었지만, 버스회사도 유동적으로 버스시간을 조절하는지 금세 다른 버스에 탑승했다.

피라마을에 비하면 이아마을은 대도시였다. 사람이 정말 많았다. 돌아갈 버스시간이 애매했기에 몇 곳의 관광포인트 위주로 구경하기로 했다. 동생이 가장 먼저 말한 곳은 굴라스 성채였다. 역시나 엄청 유명한 장소인지 조그마한 성벽위에 사람이 가득이었다. 사진 몇 장을 찍고는 다시 또 다른 포인트에 가서 풍경을 구경했다. 이 곳이 정말 유명한 포인트였는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줄 안서고 살짝 옆에 서도 충분히 풍경은 잘 보인던데... 

해가 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작정 이곳에서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동생이 산토리니 와인을 선물해줄 사람이 있다고하여 근처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선물을 사온 후에도 해는 머리 위에 있었다. 석양과 야경을 보자 페리표를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낮의 이아마을만을 보고 피라마을로 돌아왔다.



발걸음을 제촉하여 숙소로 돌아가 짐을 챙겨나오니 항구로 가는 버스 시간에 맞춰올 수 있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도착한 선착장은 생각외로 굉장히 작았다. 늦은 밤시간이라 그런지 활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이 닫힌 카페에서 사람들이 좀비처럼 앉아있을 뿐이었다.

미리 출력해둔 페리 예약 확인증을 티켓을 바꿔야했는데 페리 회사 오피스가 닫혀있었다. 다른 페리 회사에 가서 물어보니 출발 한시간 전에 문을 열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오피스 문을 걸어잠궜다.


터미널 널찍한 의자에 앉아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을 읽었다. 

11시쯤 페리 티켓을 교환할 겸, 밖의 상황을 파악할 겸 밖으로 나왔지만 사람은 너무나도 없었다. 총 인원이 50여명이 안되어 보였다. 11시 30분쯤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12시가 되니 대합실이 꽉 차버렸다.


페리 출발시간으로 알고 있던 12시가 넘었지만 페리는 들어올 생각이 없었다. 대합실 가장 앞쪽에 자리를 잡아두었기에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살짝만 정신줄을 놓으면 깊은 숙면의 세계로 빠져들 듯 하였다.

12시 30분쯤 페리가 들어왔다. 페리내에서 꼭 잠을 자둬야 내일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으므로 경쟁하듯 뛰어 페리에 올라탔다. 


3층쯤으로 되어보이는 곳까지 올라가 좋은 자리를 물색하는데 동생이 큰 소리로 '오빠 여기 좋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쳐다보니 자그마한 영화관이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지 않아 누울 공간도 넉넉했다.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통행로를 두고 건너편에 누웠다.

밤잠이 없는 아이들이 뛰어다녔지만, 하나도 중요치 않았다. 목적은 단 하나 내일 아침 아테네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자는 것 뿐.


19. 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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