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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9, 그리스

유럽문명의 뿌리를 찾아서, 산토리니. #2 밤보다는 햇살을 받은 낮의 모습을.

by 지구별 여행가 2019. 7. 22.

새벽 4시. 머리속에 잠이라는 단어 밖에 없었다. 동생은 나름대로 시차에 적응하고 그간 체력을 아껴두었는지 잘 일어났다. 만약 동생이 없었더라면 비행기를 안타더라도 잠을 자고 싶을 정도였다.

신타그마 광장을 지나가면서 보니 몇몇의 술집은 성업중이었다. 걔중 통유리로 이루어진 바안에서는 사람들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어느나라나 젊은이들에게는 밤이 길었다.

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 잠을 잘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자리가 불편하여 잠을 자지는 못했다. 


셀프체크인을 하고 공항으로 들어가는데 몇 번이나 QR코드를 찍어야만 했다. 여간 귀찮은게 아니었다. 신기한것은 여권과 티켓을 대조하지 않았는데, 탑승구 앞에까지 가니 그제서야 확인을 했다. 

상당히 이른 시간인 아침 7시였지만, 산토리니로 가는 사람은 많았다. 

비행기에 오르며 잠을 자야겠다 굳게 다짐했지만, 결국 이 곳에서도 잠을 자지는 못했다. 정말로, 정말로, 조금이라도 자고 싶었는데...



산토리니 피라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고 우리 숙소앞의 정류장에 내렸다.

생각외로 컸고, 깔끔했다. 수영장도 마음에 들었다. 할게 없으면 선베드에 누워 한숨 잠을 자기에도 좋아보였다. 숙소와 피라마을까지는 약 700~800미터 정도 떨어져있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적당한 가격에 좋은 숙소를 구했음에 만족했고, 관광지 안쪽은 수많은 사진기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수영장에는 이미 한 명의 서양인은 태양빛을 쐬며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체크인을 일찍하고 잠을 자고 싶은 마음에 리셉션에 기웃거려봤지만, 단호하게도 12시 이후에 돌아오라는 답변을 들었다. 썬베드에 누워 잠을 잘까했지만, 일단은 피라마을을 다녀오기로 했다.





시원하고 기분 좋은 풍경이었지만, 사진에서 보던만큼의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도 푸른 바다와 새하얀 집들이 나름 멋드러지는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바닷길을 따라 나있는 산책길을 걷다가 돌담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이상하게 시원한 맥주가 생각났다. 밤에 다시 찾게 된다면 맥주를 한병 들고 오리라.


평범했다. 끊임없이 계단식으로 이어진 담벼락 때문에 탁 트인 맛이 하나도 없이 시야가 답답했다. 

숲속에서는 숲이 보이지가 않는다. 바다와 집들이 조화를 이룬 풍경을 보기 위해서라면 피라마을에 숙소를 잡는 것이 그다지 좋은 판단은 아닌듯 했다. 만일, 방문을 열자마자 푸른 바다를 보고 싶다면 굳이 비싼 피라, 이아마을이 아닌 다른 지역에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숙소를 충분히 구할 수 있었다.




그래도 탁 트인 바다를 보기 위해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동생은 맥주를, 나는 그릭커피를 시켰다. 커피면 커피지 그릭커피는 뭔지 궁금했다. 

주문시 생각한 모습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모습이었는데 전혀 다른 모습의 아주 작은 컵에 한잔이 나왔다. 바보같이 에스프레소같은 종류를 시킨 건가 싶었다. 예전에 어렴풋이 들었던 크레마니 뭐니 하는 이야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입을 살짝 데어보니 꽤 달달한 맛의 그리 어렵지 않은 커피의 맛이 올라왔다. 다행이다 싶었다.


숙소로 돌아가면서 몇 곳의 식당에 들러 아침식사를 하려했으나, 마땅치가 않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인도음식점을 발견했지만 가격이 너무나 비쌌고, 작은 카페에서는 펜케익을 팔고 있었지만 아침부터 시럽이 잔뜩 들어간 펜케익은 전혀 끌리지가 않았다. 

그나마 무난한 샌드위치 집으로 들어갔다.



샌드위치 가격이 무려 6유로, 약 10,000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 비싼거 아닌가 싶었지만 정말 아쉽게도 선택권이 없었다. 

문제는 아주 사소한 곳에서 터졌는데, 동생은 콜라를 하나 먹고 싶어하였고 나는 물이 공짜로 나오는 마당에 무슨 콜라까지 마시냐는 말도 안되는 문제로 다툼이 발생했다.

참으로 궁색하기 이를때 없지만 나는 여행을 굉장히 가난하게 하는 편이다. 과거 1년간의 여행동안 돈을 아껴쓰는 습관을 들이다보니 그냥 몸에 붙어버린 습관이 되어버렸다. 나름대로 습관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쉽게 고쳐지지는 않았다. 동생은 그런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중에 한명이었기에 나의 여행 습관을 최대한 배려하기 위해 노력했고, 나 또한 동생이 먹고 싶다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토를 달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이 '콜라 한병'에서 다툼이 일어난 것이다. 

동생은 기분이 상했고 나도 쓸데 없이 기분이 상해버렸다. 밥을 먹으면서 냉기가 흘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깟 콜라한병때문에 싸울일은 아니었다. 

'콜라한잔 마실래?' 먼저 물어봤다. 삐쳤는지 됐다고 하였다. 자진해서 먼저 콜라를 하나 시켰다. 나 혼자만의 여행이 아닌데 내 여행 스타일을 고집하는 추태는 부리지 말아야했다. 그래도 서로의 여행을 가장 잘 아는 사이이다보니 금세 풀렸다.


우리는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곧바로 다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 곳의 종업원이었다.

그는 잘 생긴 얼굴이었지만, 상당히 느끼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는 종업원으로서는 어마어마한 매력을 뽐냈다. 이러한 작은 카페에서 받기에는 상당한 친절을 베풀어주었는데,

이를테면, 고작 샌드위치지만 친절하게 음식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고, 하나의 음식을 서빙할때마다 검은색 장갑을 정갈하게 갈아끼고 대접했다. 아주 고급스러운 통에 고급스러운 몸짓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정렬해주었고, 물과 컵을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놓고 갈 수 있었지만 정성스럽게 잔에 따라주었다. 

별거 아니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6유로의 샌드위치집에서 받기에는 부담스러운 서비스였다.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남은 돈은 팁으로 남겨두었다.



12시에 체크인이라 하였지만, 1시반까지 더 기다려야한다고 했다. 수영장으로 올라가 썬베드에 누워 책을 봤다. 저질의 몸이지만 남부끄러움 없이 옷을 잘 벗기에 훌렁훌렁 윗옷을 한쪽에 벗어두고 누웠다. 

바람은 시원하고, 햇살은 뜨듯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종일 누워있는 저 앞의 서양인이 이해가 되었다.


방에 체크인을 하니 나름 호텔식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작은 쪽방에는 싱글베드가 두개 있었고, 원래의 방에는 더블베드가 있었다. 엄청난 공간낭비였지만 어쨋든 방은 넓은거니 우리로서는 나쁠게 없었다.

샤워를 하면서 한 빨래를 테라스에 널어두고 맥주를 마셨다. 날씨가 좋은 맥주가 쑥쑥 들어갔다. 순식간에 알딸딸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드디어 한숨 잘 수 있었다.



대략 나가서 저녁을 먹고 피라마을로 올라가면 야경을 볼 수 있을 듯한 시간에 일어났다. 피라마을 안쪽은 값이 비싸니 바깥쪽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스테이크 하나와 그릭샐러드, 까르보나라를 주문했다. 맥주는 물론이었다.

음식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특히 까르보나라는 500그램 면을 다 삶은건지 유독 양이 많았다. 여행지에서 음식을 남기는 것은 죄악이라는 신념에 따라 둘이서 그 많은 양을 다 먹었다.



결과만 이야기하면 피라마을의 야경 모습을 그리 오랫동안 보지는 않았다. 낮보다 별로였다. 별 감흥이 없었다. 사진을 한 두장 찍고는 마을안은 들어가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봤다' 로 만족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맥주! 맥주! 맥주! 만이 우리의 목표였다. 숙소 앞의 마트는 일찍 닫아서 근처의 24시간 슈퍼마켓에서 종류별로 맥주를 샀다. 주전부리로 먹을 안주거리를 고르다가 씨앗으로 보이는 견과류를 집어들어고 왔다. 뭔가 아쉬워 슈퍼를 나서다가 아이스크림도 입에 하나씩 물었다.


우리만이 공간인 테라스로 나가 맥주를 마시며 씨앗을 씹었는데 돌맹이를 씹은 듯 딱딱했다. 자세히보니 튀기기 전의 팝콘이었다. 제기랄. 먹을만한 안주가 사라졌다. 그나마 조금 남은 나쵸를 먹으며 남은 맥주를 마셨다.

역시나 오늘도 엄청나게 피곤했다. 대량의 음주는 불가능했고, 결국 사온 맥주는 두캔이나 남았다. 

내일 오전에 일정이 없었기에 늦게까지 잘 수 있다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19.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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