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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8, 말레이시아

아기자기하고, 거대하고, 말라카. #1 일정을 바꿀만큼 좋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9. 1. 1.

회사에 일이 남아서 야근을 하고 여행을 가야하나 싶었지만, 회사 동료들의 도움으로 야근없이 회사를 떠날 수 있었다. 집에 들러서 차를 두고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왠일로 아들을 배웅해주러 공항을 가는지 물어보니, 그저 심심해서 드라이브를 간다하였다. 이런 쿨함이 좋다.


동틀무렵 도착한 말레이시아 입국심사소에서 아기를 안은 여자가 내 뒤에 줄을 서 있었는데 바로 내 앞에 있던 여자가 그녀의 손을 잡고 앞으로 끌고 갔다. 뭐,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이기에 모두가 아기를 안은 가족을 앞으로 보내주었는데 아무런 관계도 없어보이는 그 여자(아기를 안은 여자를 데려간 여자) 또한 먼저 입국심사를 받는게 아닌가. 아기를 안은 아주머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했건만 뻔뻔한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하게 새치기를 하고 유유히 입국 심사소를 빠져나갔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은 이번 여행에 방문할 쿠알라룸푸르와 말라카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무엇을 먼저가도 상관은 없었지만, 먼저 1박만 말라카에서 하고 쿠알라룸푸르를 가기로 했다.

공항에서 바로 말라카로 가는 버스가 있기에 돈을 환전해야만 했다. 공항내에는 환전소가 많았으나 환전율이 정말 극악이었다. 당시 달러-링깃 환율이 4.1~4.15 수준이었는데, 이 처참한 공항은 무려 3.75에 환전해주었다. 그나마 환전율이 좋은 곳이 3.8이었으나, 아침 8시가 넘어야 환전이 가능하다 하였다.

아침 8시까지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 급하게 환전을 하느라 50달러를 환전했는데, 돈을 받고 돌아서니 지갑에 있던 만원짜리 한장이 생각났다. 환전 손해를 낮출수 있었는데 바보같이 50달러나 환전하느라 환전 손실을 크게봤다.



말라카행 버스가 운행되는 지하로 내려가 버스표를 사는데 새벽 6시에 출발하는 버스는 이미 떠난 상태였다. 7시 30분쯤 떠나는 버스표를 사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약 7시 40분. 버스가 들어올 생각이 없었다. 많은 여행자들이 A7번 플랫폼에서 말라카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이미 버스가 떠났거나, 내가 줄을 잘 못 선것 같지는 않았다. 

약 8시즈음. 버스가 한대 들어왔다. 사람들이 우르르 버스에 탑승하려 가방을 벗는데 버스기사가 말라카행 버스가 아니라며 버스 탑승을 못하게 하였다. 이게 뭔일인가 싶어 다들 화도 내고 어이없어 하는데 가장 흥분한건 독일인 두명이었다. 

엄청나게 격앙된 목소리와 표정으로 버스기사를 다그치니, 버스기사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한발 물러났다. 눈이 마주친 나와 함께 버스티켓을 산곳으로 돌어갔다.


티켓카운터의 여자는 우리 셋이 씩씩거리며 따졌지만, 느긋했다. 손에 커피도 한잔 들려있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우리가 줄을 잘 못 섰고, 버스는 이미 떠났다 말했다. 독일인이 아주 흥분된 목소리지만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사이 우리르 뒤따라 20여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한지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녀가 데리고 온 관리자는 미안하다며 빠르게 버스를 배차하도록 하겠다 하였고, 약 8시 20분쯤 말라카행 버스에 올라탔다.


밤버스는 역시나 피곤했다. 버스에 앉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는데, 깨보니 말라카 센트럴 버스터미널이었다. 지도를 켜서 구시가지를 확인해보니 걸어서 갈 거리는 전혀 아니었다. 얼핏 시내버스가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터미널에 앉아 잠시 기다리니 한대의 버스가 들어왔고, 청소아저씨가 대합실에서 얼쩡거리던 모든 관광객들을 불러모아 태웠다.





핑크빛이 도는 네덜란드 광장에 들어왔다. 사실 이 곳이 네덜란드 광장인지는 몰랐지만, 사람이 바글거리는게 딱 봐도 중앙광장이었다. 

일단 게스트하우스부터 찾았다. 35링깃에 선풍기방, 25링깃에 조잡한 칸막이 방등을 살펴봤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원래 짐을 풀려고 생각했던 곳에서 완전히 반대 방향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직원이 아주 친절하며 귀여웠고, 방은 볕이 정말 잘 들어와서 습함이 없었다. 에어컨은 어찌나 쌩쌩한지 조금만 틀면 추웠다. 그리고 덤으로,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가 귀여웠다.

1박만 할 생각이었지만, 말라카란 도시 자체의 느낌이 좋아 2박을 결정했다.



한바가지 흘린 땀탓에 옷을 빨고, 샤워를 한 후 거리로 나왔다. 말라카 구시가지는 아주 좁은 장소에 밀집되어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 정도면 모든걸 보고 떠날 수 있었지만, 이미 도시자체에서 풍기는 향기에 홀려 2박을 결정한 상태였기에 강을 중심으로 반반씩 나눠 여유있게 구경하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우선은 식사였다. 배가 고팠다. 숙소를 구하면서 현지인들로 꽉 차있던 다리 옆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숙소를 구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다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중국 관광객이 단체로 왔는지 무법천지였다. 닭고기에 이것저것 시켜먹으려 했는데 뭐가 뭔지를 알 수가 없어 기본음식만 시켰는데 조각닭이랑 식초간이 되어있는 밥이 나왔다. 

배도 안찼고, 맛도 그냥 그랬다. 그렇다고 싼 것도 아니었다. 어디서나 흔히 먹을 수 있는 닭고기 음식이었다.




이래저래 항상 발길이 닿는 네덜란드 광장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사진에서 보던 것과 마찬가지로 광장은 아주 작았다. 분수대를 제외하면 볼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이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5분만에 훅하고 빠져나가면 또 다른 버스가 5분만에 도착하여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 누구의 얼굴이 걸리지 않는 분수대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순간에 맞춰 동영상과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세인트폴 성당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아까 네덜란드 광장에서 본 사람들이 그대로 있었다.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나란 존재가 그 사람들에게 짜증을 낼만한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사람마다 여행 스타일이 있는거니 약간의 양보와 이해면 충분했다. 그들이 안을 구경할때 나는 밖을 구경했고, 그들이 밖으로 나오면 안으로 들어갔다. 

성당 바로 옆에서는 멋진 음악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어로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 노래를 잘했다. 심취해 듣고 있는데 한국인들이 성당 밖으로 나오자마자 노래를 아리랑으로 바꿨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좋아했다. 약간의 팁을 넣고 자리를 뜨면서 그 아저씨가 팁을 많이 받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길의 뒤쪽을 따라 걸으니 독일인 무덤이 나왔고, 좀 더 걸으니 학교가 나왔다. 그 길을 따라 쭉 걸으려 했지만, 너무 외곽으로 도는 느낌이라 원래의 길을 따라 돌아와 박물관에 들렀다.

이번 여행때 간략하게 말레이시아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하고 갔는데, 이곳 '말라카'는 여전히 해상무역에 중요한 요점인만큼 과거에도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무역거점 도시였다. 네덜란드, 영국등의 식민 시대의 과거도 있는 만큼 말라카 역사 박물관만큼은 꼭 들리려했었다.

일부로 시간을 내어 박물관에 들렀는데 역사 박물관이 아니라, 술탄 박물관이었다. 음... 박물관은 쿠알라룸푸르에서 즐기기로 했다.





내부에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있었는데 정말 매너라고는 찾아볼수가 없었다. 엄청나게, 정말 엄청난 성량의 마이크를 들고 박물관이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로 몇 명 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중국어로 설명하고 있었다. 나랑 움직이는 속도도 비슷했는데 어찌나 소리가 큰지 바로 옆에서 구경할때마다 귀가 아플정도라 볼륨을 줄여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그래... 내가 반대로 돌자...




이로써 오늘의 계획했던 일정은 끝이났다. 근처 마트에 들러서 물이나 하나 사고, 간식으로 먹을 음식이나 몇 가지 사기로 했다. 세인트폴 성당에서 대형 백화점이 하나 보였기에 안쪽에 마트가 있겠지 싶어 들어가봤지만, 전세계를 호령하는 유명 브랜드들만이 가득했다.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시원한 콜라와 2L물을 하나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넷플릭스 영화를 한 편보면서 낮잠을 자니 이 곳이 천국이었다.



내일은 야시장을 구경갈 예정이었기에 일몰시간에 맞춰 해상모스크를 방문하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대략 3Km가 조금 넘는 정도였다. 해상모스크를 배경으로 일몰을 볼 생각이었지만, 시간을 잘 못 맞춰 다리를 건너가는 도중 해가 져버렸다.

해상 모스크는 작은 다리로 연결된 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길거리에 가로등이 거의 없었다. 대규모 공사가 진행중이었고, 건물안의 방에는 남자들 10여명이 모여있는 거로 봐서 공사인부들의 집단 숙소로 보였다. 그 불빛이라도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너무나 길이 어두워 두려움에 떨면서 걸을 뻔하였다.





섬의 외곽에 위치한 해상모스크는 아쉽게도 예배시간이라 들어갈 수 는 없었지만 외관의 멋진 모습은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지 않는지 상당히 조용했고, 대형 버스도 없었다. 

아잔을 듣고 싶은 마음에 한참 기다렸지만 내가 모스크를 떠나 숙소로 돌아가기 위한 다리를 건널 무렵 아잔 소리가 들렸다. 약 20여분만 더 기다렸다 올껄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동네 식당중에는 아직 맛집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내가 머물던 숙소 1층에 정말 사람이 엄청 많은 국수집이 있었는데 저녁 6~7시면 장사를 마치는듯 했다. 그 시간에 문 연 식당도 마땅히 없어서 현지인 몇명이 식사를 하고 있는 식당에서 미고랭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바로 실망을 했는데, 일단 음식의 양이 너무 적었다. 같은 돈이라면 태국에서는 아주 푸짐하게 나왔을테지만 여기는 몇 숟가락 집어먹으면 없어질 양이었다. 둘째로, 음식 수준이었다. 이 부분은 내가 잘 몰라서 그런건데... 원래 닭뼈를 잘 손질하지 않고 음식을 만드는 것인가 싶었다. 먹을때마다 자그마한 뼈들이 내 이와 혓바닥, 입천장을 긁어댔다. 음식을 먹는데 겁이나서 씹지를 못했다. 천천히 씹어서 자그마한 뼈들을 뱉어내고서야 씹어먹었다.

앞으로, 물론 하루밖에 남지 않았지만, 다시는 오지 않기로 했다. 배가 아직도 고파 하나를 더 시켜먹고 싶었지만, 이 곳에서는 아니다 싶은 마음에 숙소로 돌아왔다.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말레이시아에서의 첫째날을 마무리했다.


2018.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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