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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북미

미국 라스베가스. #229 쇼핑에 중독된 남자.

by 지구별 여행가 2019. 7. 15.

그랜드캐년을 가는 일정이 완전히 망가져버렸으니 할게 없는 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쇼핑을 갔다.

어제의 쇼핑이 정말 재밌었나보다. 내가 먼저 형에게 얘기하여 어제는 남쪽 아울렛을 갔으니 이번에는 북쪽 아울렛을 가자고 하였다. 

형은 낮의 라스베가스의 모습을 아직 보지 못했으므로 오전시간은 그와 함께 메인스트릿을 산책했다. 역시 밤의 라스베가스보다는 임팩트가 적기 때문에 그리 오랜시간을 보내지 않고 아울렛으로 향했다.


어제보다 더 많은 금액을 소비했다. 당시 하루 여행 비용이 약 2~3만원 정도 였는데 이틀간 거의 50만원을 썼으니 내 입장에서는 엄청난 과소비였다. 더 이상 여행을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지금까지 절약에 대한 울분이었는지 카드를 긁는데에 거침이 없었다.


형의 여동생 캐리어 바퀴가 부서져 가방을 사러 잠시 샘소나이트를 들렀는데 한 무리의 중국인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가격표를 보지도 않고 가장 큰 캐리어를 앞사람부터 주르르륵 들고 갔다. 쇼핑백이 양손에 가득 들려 더 이상 들고다닐 수 없게 되자 그것들을 담을 가방을 사러 온 것이었다.

미국 여자 점원은 영어로 떠들었지만, 손님은 중국어로 떠들었다. 전혀 주눅듬이 없었다. 미국 여자가 뭐라고 하던 말던 카드를 내밀고 결제나 하라고 했다. 계산을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캐리어를 열어 구입한 제품들을 말그대로, 구겨넣었다. 이 모든 일이 벌이지는데에는 약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결제 폭풍에 넋을 잃고 쳐다봤다. 압도적인 중국인들의 구매력이었다.


형은 마음을 굳혔다. 금요일까지 라스베가스 여행을 즐길 생각이었기에 어제의 투어회사에서 예약 가능한 일정을 받아 그랜드캐년을 다녀오기로 했다. 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 와서 그랜드캐년을 가지 않고 한국을 돌아기는 것은 너무나도 아쉽다고 했다.

숙소에서 예약을 하기 위해 메일을 보내려는데 새로운 메일 하나가 들어와있었다. 어제의 투어회사였다.

여행 정보가 담긴 메일일거라 예상하고 열어보니, 투어 확정 메일이 와있었다. 형과 형의 여동생은 물론, 나까지 포함되어있었다.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투어 확정일자가 14년 11월 8일이었다.

이건 뭐...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내일 비행기를 타고 라스베가스를 떠나기 때문에 그랜드캐년 투어를 취소한다고 보냈으며, 형은 일정을 확인해서 답장을 보낸다고 했는데 이 컨펌메일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라고 보냈다.

답장은 없었다. 수신 불가 메일인지 알 수 없는 에러코드같은 메일이 계속 수신되었다. 몇 번을 보내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돈이 빠져나갔는지가 가장 중요했기에 결제 내역을 확인해보니 이미 결제가 진행되어있었다. 

몇 번을 보내더라도 답장은 오지 않을 듯 하여 내일 투어회사로 돈을 환불받으러 가기로 했다.

조금 외곽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근처까지 버스도 운행했고, 공항까지도 걸어서 30여분이면 갈 수 있을 듯 했다. 


이래저래 머리속이 복잡했지만 오늘은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날이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가는 휴스턴을 제외한다면 공식으로는 약 23개월간의 여행일정이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함께 맥주를 마시고 일찍 헤어졌다. 노트북을 꺼내 그동안의 기록과 사진을 훑어보았다.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담담했다.


2014. 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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