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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7, 태국

급작스럽게 여행을 가라고 한다면, 파타야. #4 누군가를 만나기 바라며.

by 지구별 여행가 2018. 2. 16.

침대에 누워 다음 일정에 대해 머리를 굴렸다. 크게 3가지의 선택권이 있었다.

첫째, 아유타야에 머물자. 280밧 숙소 주제에 방의 퀄리티가 높았고, 숙박객도 별로 없어서 혼자 조용히 지내다가 떠나기에 좋았다. 내가 무엇을 하든 큰 관심이 없는 주인의 태도도 만족스러웠다. 도시 자체가 조용한게 쉬기에 아늑했다.

둘째, 방콕으로 돌아가자. 어차피 방콕은 여행의 메카이자, 마음먹고 즐기면 이 곳 만한곳도 없었다. 한국인을 만나 놀기도 좋고 늦은 시간 카오산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좋았다. 손만 뻗으면 어느곳에서나 저렴한 가격에 술을 마실수 있는 최고의 유흥도시이기에 며칠을 더 머물더라도 후회는 없는 곳이었다.

셋째, 파타야로 향하자. 깐짜나부리는 아유타야와 색이 비슷할거 같아 제외를 한다면, 방콕 근교에서 갈만한 매력적인 도시는 파타야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여행지 자체가 커플들이 대부분인 여행지이며, 과연 그 곳에서 혼자 무엇을 즐기고, 할만한 것이 있을까라는 고민이들었다. 물론 언젠가 한번쯤은 가봐야할 여행지는 분명했고, 너른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에 가장 끌리는 곳이기도 하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 내가 쉬기 좋도록 이곳저곳 재배치한 가구들을 정리하고 체크아웃했다. 파타야로 향하기로했다. 야유타야에 더 있기보다는 새로운 도시로써 매력적인 파타야를 가고 싶었다. 방콕은 살면서 한두번 오고 말 곳이 아니기에 진작에 다음 행선지로는 탈락이었다. 



파타야를 가기위해서는 어차피 방콕으로 돌아가야한다. 전과 같은 방법으로 기차를 탈까했지만, 기차역에서 모칫터미널까지는 지하철을 환승해야만 했고 한번 이용해본 대중교통이기에 다른 교통편을 이용해서 가보는게 나을듯 했다. 시내에서 운행하는 롯뚜를 타고 모칫터미널로 직행하기로 했다.

60밧을 지불하고 자리에 앉으니 현지인들만 탑승했다. 여행자가 자주 이용하는 이동수단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시간대가 맞지 않은듯 하였다. 아유타야에 있는 동안은 구름도 짙었고, 중간중간 비가 내려서 그다지 덥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방콕은 정말 찜통이었다. 내리자마자 숨이 턱 막혔지만 그보다 더 독한 것은 고물버스들이 내뿜는 매연이었다.


내 앞에 어린아이를 안고 탄 태국여자와 서양남자가 모칫터미널에서 함께 내렸다. 그들은 나에게 먼저 다가와 어디를 가는지 물었다. 파타야를 간다고하니 자신들도 파타야를 간다며 함께 버스티켓을 사러가자하였다. 인터넷에서 미리 창구위치와 가격을 체크해뒀지만 현지인을 따라가는게 훨씬 쉽게 티켓을 구할수 있기에 그녀를 따라 티켓을 샀다. 간단한 식사를 위해 그녀를 돌려보내고 혼자 편의점에서 간식으로 허기를 채웠다.

얼마 달리지 않아 파타야에 도착했고, 파타야 버스터미널에서 짐을 찾는 동안 그녀의 가족들은 미리 마중나온 사람들의 차를 타고 떠났다. 아쉽게도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특별한 이유는 없엇지만 파타야 시내의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숙소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큰 도미토리를 혼자 쓰게 해주었다. 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은듯 정말 깨끗했고, 샤워시설 역시 너무 완벽하게 정돈되어있었다. 거기다가 도미토리내에 빵빵하게 돌아가는 냉장고라니. 짐을 풀기도 전에 만족스러웠다.









파타야에는 하루만 머물 예정이었기에 바로 바다로 나갔다.

얼마만에 보는 바다인가. 대만 여행 이후 처음보는 바다였으니 거의 5개월만에 보는 바다였다. 파타야의 바다나 해운대의 바다나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그저 바다를 바라보고 있음에 기분이 좋았다. 신발을 벗고 걸으니 스르륵 모래속으로 녹아들어가는 발의 촉감이 부드러웠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니 시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영복겸 입을 수 있는 바지를 입을걸 후회했다.

긴 백사장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한병시켰다. 다리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며칠전 받아두었던 인디음악 몇곡을 틀고, 시원스럽게 웃통을 벗고, 한손에 맥주를 들고, 누으니, 이 곳은 천국이었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맥주 한모금을 마시던 한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고, 그 시간에 맞춰 잡상인들이 돌아다녔다. 특히 헤나 상인들이 꼬였는데 어찌나 귀찮게 하는지 웃으며 미안하다고 하여도 떨어지지를 않았다. 한명은 조용히 다가와 눈을 감고 있는 나의 동의도 없이 팔뚝에 헤나를 그리려고 하는게 아닌가. 짜증을 '팍'내며 가라고 하니 그제서야 사라졌다.

어차피 맥주도 다 마셨겠다. 슬슬 해지는 바다를 걸으며 워킹스트릿까지 향했다. 시시각각 해는 땅으로 떨어졌고, 마지막 온힘을 다해 자신의 힘찬 기운을 파타야 시내에 뿌려댔다. 강렬한 순간은 언제나 항상 짧듯이. 금세 자취를 감쳐 밤이 되었고, 나는 딱 그 시간, 워킹스트릿 입구에 도착했다.



워킹스트릿은 말그대로 차의 통행을 막아둔 파타야 최대의 유흥밀집지역인데, 수많은 바가 성업중이었다. 중국인들의 필수 관광코스인듯 이미 몇대의 버스로 실어나른듯한 양의 중국인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유흥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그다지 매력적인 곳은 아니었다. 그저 한바퀴 슥 둘러보고 나오는 것으로 만족했다.


썽태우를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내가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썽태우들이 서지 않았다. 앞으로 조금씩 걸어가면서 보이는 썽태우마다 손을 흔드는데 한참을 앞으로 가서야 한대가 멈춰섰다. 몇 분이 걸리지 않아 숙소랑 대충 가까운 지점에 내렸는데 파타야 시내의 윤락거리인지 길 양옆으로 줄지어선 가게마다 헐벗은 여자가 30명씩 앉아있었다. 

어리버리하게 길을 걸으니 가게마다 여자들이 다 튀어나와서 내 팔다리를 붙잡고 끌고가는데 순간 먼저 든 생각이 '소매치기 조심하자'라는 생각이 든것을 보면 나도 정상적인 사고방식은 아니었다. 

남들이 보면 돌부처라하겠지만, 여행지에서의 유흥에 워낙 관심이 없다보니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을 뿐이었다. 몸에 달라붙은 매미들은 자기네 가게로 오라고 난리인데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근처에 친구가 이 어딘가 바에 있다고, 잠시 그를 만나고 오겠다고 해서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대단했다. 이 거리안에 헐벗은 여자만 한 500여명은 될 듯했다. 이미 바 안에서 맥주를 마시는 서양남자들위로 여자들이 올라타있었다. 윤락가의 여자가 100g당 얼마에 파는 고기덩어리도 아니었기에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썽태우에서 내려 돈을 지불할때 돈을 받던 여자가 음흉한 미소를 짓던게 이거 때문인가 싶었다.



숙소로 돌아와 동남아에서 오랜 시간 가이드를 하셨다는 사장님이 옆에 앉아았다. 그의 와이프가 사온 맥주를 마시니 자연스럽게 태국 맥주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레오는 여성이 좋아하는 맥주, 싱하는 남자가 선호하는 맥주, 창은 노인들이 즐기는 맥주라는 것이다. 역시 창이 조금더 저렴한 건 이유가 있었나 싶었다.

그와 오랜시간 이야기를 나누다 자신의 사업을 도와주는 근처 사장님 내외의 방문으로 사업이야기를 하러 안으로 들어갔다. 한 잔 남은 맥주를 마시며 밖을 바라보니 아직 파타야의 밤은 한창이었다. 분명 워킹스트릿은 후끈할테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는 곳이었다.


내가 만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맥주한잔을 가볍게 하고, 흥겨운 음악에 맞춰 살짝 몸을 흔들고, 서로 부족한 영어지만 대화를 할 수 있는 여행 메이트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여행메이트에는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없었다. 모두가 한명의 여행자로서 만날때, 가장 행복한 만남이었다.


2017. 0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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