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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7, 태국

급작스럽게 여행을 가라고 한다면, 아유타야. #3 가슴에 품은 아유타야

by 지구별 여행가 2018. 1. 21.

생각보다 자전거는 우리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빠른 시간내에 도달시켜주었고, 걷는 것에 비하면 그다지 체력소모가 크지 않은 획기적은 동력장치였기에 굳이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아침겸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야유타야 문화유적 답사에 나서기로 하였다.

숙소 근처 렌탈샵에서 40바트에 자전거를 빌렸다. 24시간 빌려주는 곳도 있는듯했지만 그만큼 돌아다닐 체력도 없었고, 그렇게 가고 싶은 곳도 많지 않았다. 가장 큰 자전거 한대를 빌리고 하늘을 바라보니 비가 한두방울 내릴 날씨였다. 가뜩이나 작은 가방에 구겨 넣어 온 우비를 한번쯤 사용하기위해 자전거 앞바구니에 넣었다.

효율적인 움직임을 위해 외곽을 순회후 중앙을 돌파하는 루트를 만들었다. 50바트를 내고 구경하는 몇 가지 유적지중 2~3군데만 선별하여 구경하고, 40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와불정도만 구경하면 될듯하였다. 나머지 유적지는 중간중간 마음에 끌리는데로 구경키로 하였다. 


태사랑 아유타야 지도를 하나 다운받아 저장해놓고 북쪽으로 내달려 왓 탐미까랏에 도착했다. 꼭 들러보고 싶어서 간 곳은 아니었고, 거대한 불상의 머리가 보여 즉흥적으로 선택한 첫번째 유적지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기념품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20바트씩 입장료를 받는 아주머니가 길을 막아섰다. 뭔가 가짜 입장료같은 느낌이 짙었지만, 20바트에 시작부터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아 돈을 지불하고 들어갔다. 

불상을 주변으로 수많은 닭모형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어떠한 의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언제나 간단하고, 직관적인 것이 답이라 생각하는 내 기준에 '별 이유 없을 거다. 그저 닭을 숭배하나보지'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다.

한바퀴를 크게 돌아보니 군데군데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이 뚫려있었다. 역시나 20바트의 티켓은 가짜라는 의심이 짙어질 수 밖에 없었다. 예전이었으면 기분이 상했겠지만, 나이가 조금은 먹었는지 '다들 먹고 살기 위한 방편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좀 더 외곽으로 나가고 싶었기에 지도상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왓 청타로 패달을 밟았다. 관광객 한명 없는 이 곳은 규모가 크지않았다. 안에는 현지인 여학생 두명과 남학생 한명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기에 그들의 카메라에 걸리지 않도록 담뒤에 숨어 그들이 사진을 다 찍기를 기다렸다. 어딘가에서 사진을 찍을때마다 '아 저 사람좀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기에 그들을 위한 작은 배려였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쳐다보다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사진을 다 찍은 듯 손을 흔들며 나와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괜히 그들이 부담을 느꼈을까봐 아무일 없다는 것처럼 편하게 걸어나왔는데 그들이 먼저 다가와 사진을 함께 찍자고 하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랑자의 모습이었기에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기도 미안했다.

그들의 카메라로 한번, 내 카메라로 한번 찍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강이 있다면서 나에게 구경하고 가라하였다. 얼마나 멋진 강이기에 추천을 하나 싶어 한번 들어가봤으나 태국에서 흔히 볼수 있는 작은 천이었다. 바로 발길을 돌리기에는 그들이 추천해준 수고로움이 마음에 걸렸다. 잠시 그 곳을 배회하다가 왓 청타 사원을 빠져나왔다.


배가 고팠다. 한참 전에 먹었어야할 식사지만 아직까지 먹지 못했다. 왓 청타 앞에 딱 하나있는 음식점에서 단돈 50바트의 볶음밥을 주문했는데 양이나 맛이 굉장히 훌륭했다. 만일 이 음식점이 숙소 앞에 있었다면 모든 끼니를 이 곳에서 해결했을 정도였다. 

비가 슬쩍슬쩍 내려 그다지 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내 앞에까지 선풍기를 끌고와 시원한 바람을 제공해주는 청년의 배려에 감동을 받으며 식사를 마쳤다. 자전거를 오늘 밤까지가 아닌, 24시간 빌렸었더라면 한번 더 방문해서 야식을 먹고 갔음이 분명했다.





왓 로까야수타람은 거대한 와불이 있는 곳이다. 입장료도 받지 않으며, 자전거를 타고 외곽을 돌다가 들리기에 적절한 위치에 있기에 많은 여행자들이 들린다. 역시나 다른 무료 유적지와는 다르게 사람이 어느정도는 있었는데 생각보다 와불에서 압도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이 곳에서 뇌리에 깊게 박힌 한 동양인이 있었다. 그녀는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색의 옷과 악세사리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녀의 남다른 패션감각에 감탄을 금치못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비가 스물스물 내리는 이 날씨에 저런 옷을 입을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었다. 남색으로 도배한 내 옷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튀는 흙탕물과 진흙에 이다지도 더렵혀졌는데 그녀의 옷에는 주름하나 없이 그 어떤 더러움도 묻지 않았었다. 투어버스를 타고 왔더라도 저정도의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음에 감탄했다.





이제 구시가지의 중앙을 돌파하여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총 4곳의 유료 유적지중 왕궁터가 있는 왓 프람 씨싼펫과 나무 줄기 안에 부처머리가 들어있는 왓 마하탓만 들리기로 하였다. 나머지는 모습이나 느낌이 지금까지 봐왔던 곳들과 그다지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왓 프람 씨싼펫은 입구에서 입장권을 사야하는데 왕궁터 바깥쪽은 입장권이 없이도 구경이 가능하지만 특별히 볼 것은 없다. 3개의 거대한 탑이 위용을 뽐내는 이 곳은 역시나 아유타야의 메인 유적지답게 사람이 가장 많았다. 가장 전경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살짝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첨탑의 계단은 아주 가파랐는데 한번쯤은 올라가보고 싶게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계단이었다. 맨 위에는 작은 굴안에는 향초와 재물들이 있는데 뭐가 썩었는지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하여 숨을 쉴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아유타야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는 누가뭐래도 왓 마하탓이다. 태국발 우편엽서를 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나무 안에 박혀있는 불상의 머리가 있는 곳인데, 그런만큼 사람들도 정말 많다. 기념사진 한장 못찍을까봐 걱정했지만 운이 좋았던 것인지 셀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없었기에 여유롭게 사진 몇장을 찍을 수 있었다. 저 불상의 머리 역시 버마의 침공으로 인해 철저하게 파괴된 어느 불상의 머리임이 분명해보였다. 오랜시간 이리굴려지고 저리굴려지던 불상의 머리는 수많은 나무줄기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사진에서는 불상의 크기 엄청 커보였지만 실제로 보면 그다지 크지는 않다. 이 명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야유타야 사원이 비슷한 모습을 풍기기에 유적지 투어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숙소로 돌아와 쉬었다. 빨래는 차근차근 말라가는 중이었으나, 습한 날씨탓인지 방에서 눅눅한 냄새가 났다. 방문을 잠시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다. 어차피 창밖으로 높은 건물이 없어 방 내부가 보이지 않았기에 옷을 훌훌 벗고 팬티만 입은채 방을 청소하고 남은 빨래를 마무리했다.

침대에 누워 어디를 가볼까 고민중에 아유타야 수상시장이라는 곳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한번 가보기로 했다. 방콕에서 수산시장을 갈까말까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는데 만약 이 곳이 만족스럽다면 방콕 수산시장은 건너 뛰어도 될듯했다. 


수상시장까지 가기위해서는 올드시티 밖으로 빠져나와야하는데 자전거값을 포함한 10밧의 뱃삭을 내기가 싫어 조금 길을 돌아 다리를 건너가기로 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고 자동차들이 많아서 자전거를 타고가기에는 조금 위험해보였기에 옆쪽에 다리 위 보행자도로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막상 자전거를 들고 올라가보니 어찌나 무거운지 가장 큰 자전거를 빌려온 것이 후회되었다.

신시가지는 확실히 도시의 느낌이 베어나왔다. 사람도 많았고, 차도 많았다. 자전거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차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내달리니 저 멀리 수상시장 및 코끼리 교육장이라는 간판이 나왔다. 수상시장에 덤으로 코끼리 교육장을 볼 수 있다니. 대박 관광지라는 생각에 가슴이 떨렸지만, 정말 실망스러웠다. 

수상시장은 돈을 내야만 안쪽을 구경할 수 있는데, 현지인들의 삶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된것이 아닌, 100% 관광객을 위한 수상시장이었으며 규모도 작아 그다지 볼게 없었다. 거기다가 코끼리는 가까이서 볼 수 있었지만 교육이라기보다는 학대에 가까웠다. 귀에 커다란 낫을 걸린채 끌려다니는 어린 코끼리들의 모습이 길거리에서 버젓하게 보여졌다. 이름을 코끼리 교육장이 아닌, 인간의 잔인함과 동물학대 체험 교육장이라 바뀌어도 손색이 없어보였다. 

더 이상 이 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엄청난 양의 비에 현지인들도 각기다른 모습으로 비를 피했다. 나에게 우비가 있다하여도 이 정도 폭우 속을 자전거까지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잠시 건물 밑에 들어가 비가 그치기 기다리는데 10~20분을 기다려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7시까지 자전거를 반납해줘야했기에 어쩔 수 없이 폭우속으로 자전거를 달리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진이 다 빠졌으나 점심이후에 먹은게 하나도 없으니 배가 너무 고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길거리 노점에서 팟타이 일인분, 볶음밥 일인분, 어제 먹었던 해물파전 비스무리한 것을 일인분 샀으니 총 3인분의 음식을 샀다. 추가적으로 편의점에 들러 과자와 맥주까지 샀으니 엄청난 양의 음식이었다.

오늘도 집 앞 라이브카페에서는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어제와 마찬가지로 손님은 없었다. 호객꾼은 나의 팔목을 붙잡았지만, 양손 가득든 음식들과 맥주를 보여주니 이내 손을 내려놨다. 숙소에 들어와 기분좋게 인도영화 한편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복병이었지만, 알차고 분주한 오늘의 야유타야 관광은 성공적이었다.


2017. 0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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