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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8, 일본, 가고시마

그곳엔 기준이 있다. #3 지나친 여유속에 발견한 소소한 공간들.

by 지구별 여행가 2018. 10. 9.

옆의 깔끔하게 정돈된 이불을 보니 함께 머물던 외국인 친구는 새벽에 일찍 나간듯 보였다. 그와 비슷하게 이불을 깔끔하게 펴놓고 체크아웃했다. 밖을 보니 분무기로 물을 뿌리듯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비를 입을만큼은 아니었지만, 무시하고 다니기엔 충분히 옷을 적실만큼의 비였다. 우비를 입으니 카메라를 넣고 빼기가 불편했지만 이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만 했다.



가벼운 산행이라도 중간의 배고픔은 엄청난 고역이었다. 편의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와 김밥을 하나씩 먹고 첫날 귀신이 나올것만 같았던 시로야마에 다시 올랐다. 

가벼운 비때문에 길은 약간 축축했고, 곳곳이 진흙화되어가고 있었다. 신발이 더럽혀지는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밤에 올랐던 기분과는 또 다른 느낌의 산행이었다. 낮에는 걸어서 전망대에 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사람이 전혀 없었다. 비가 와서 그런건지, 전망대 바로 앞까지 가는 버스가 있어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전망대에 올라 사쿠라지마 화산을 바라보니 심한 안개로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이 남았다.








오늘의 일정은 시로야마에 오르는게 전부였지만, 시간 배분을 잘못하여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특별히 할게 없어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미술관이 보였다.

안에는 초등학생들의 점토 공예를 전시하고 있었다. 방문객은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아이들의 부모님밖에 없었다. 나의 초등학교 때의 실력이 어느정도였는기 기억해내려 노력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몇가지 흥미로운 아이들의 작품을 구경하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미술관다운 그림 몇개가 전시되어있었다. 몇 점 없는 그림중에서 내가 아는 작가는 피카소뿐이었다. 특별 전시회 기간도 아니라 몇몇의 그림을 빼고는 당연하게도 전부 일본 작가들의 그림이었다. 






시로야마 전망대에서 가고시마를 내려다보면 회색빛의 큰 도리이가 보인다. 평소와 같았으면 시간을 내어 방문할만한 곳은 아니었겟지만, 시간이 남아 사진이나 한장 찍으러 발걸음을 향했다. 

회색 도리이 앞으로 가니 시로야마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신사가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자그마한 장이 열려있었다. 수공예품이나 식자재따위를 팔았다. 전부 관심이 없는 것들 뿐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동전 몇개가 집혔다. 예전부터 무슨 맛인지 궁금했던 모양의 간식이 있어서 하나 사먹었다. 80엔, 우리나라돈으로 800원이었지만, 맛은 그냥 그랬다. 다음부터 사먹지는 않기로 했다. 경험은 이토록 중요하다.







안쪽의 신사를 들어가보니 자그마한 행사가 진행중이었다. 이 신사가 어떤 영혼을 기리는지 알수가 없으니 예를 표하지는 않았다. 무심하게 그들의 행동을 관찰할 뿐이었다. 

꼬마아이가 전통 옷을 입고 어머니를 따라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쳐다봤다.


이래도, 이래도 시간이 남았다. 그나마 점심시간에 가까워져 덴몬칸 근처 식당들을 방황했다. 초밥을 먹으러 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하여 장사준비를 하고 있는 라멘집을 하나 점찍어두고는 근처 카페에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샌드위치를 먹는 일본인 말고는 사람이 없었다. 카운터도 없었고, 직원도 없었다. 순간 개인공간인가 싶어 멀뚱멀뚱 서있는데 일본인이 나를 쳐다보더니 밖을 가리키고는 왼쪽으로 가라했다. 


일단 그의 말을 따라가니 바로 옆옆 건물의 빵집에서 커피와 먹거리를 주문하고 아까 그곳에서 마시고 먹는 시스템이었다. 귀찮아서 그냥 먹지 말까 하려는 찰나에, 빵을 굽는 아르바이트생이 예쁘게 생겨서 커피를 하나 주문했다.

사실, 카페를 온 이유가 와이파이를 하려고 온 것이었는데 와이파이는 연결이 안되었다. 혼자 덩그러니 앉아 홀짝홀짝 커피를 마셨다. 할거는 없었지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 만족했다.



라멘집이 장사준비를 마쳤을듯 하였다. 손님은 없었기에 가장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했다. 배가 고팠고 돈도 많이 남아 덮밥하나와 라멘하나를 시켰다. 양이 꽤나 많았지만 못먹을 양은 아니었다. 거지마냥 싹싹 긁어먹고, 계산을 하니 동전이 몇개가 남아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삼각김밥을 하나씩 더 사먹었다. 배가 터질듯하였지만 기분이 아주 사랑스러웠다.





사쿠라지마 화산 족욕탕에서의 피로감이 풀리던 기분을 잊을 수가 없었기에 약간 일찍 공항에 가서 노천 족욕탕에 발을 담그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가 맡겨놓은 짐을 찾으니 주인아주머니가 뛰어나와 나를 배웅해주었다. 밤마다 나는 책을 읽었고, 주인 내외는 텔레비전을 보았다. 같은 공간에 있으니 중간중간 대화를 나눴는데, 짧은 일본어와 영어, 한국어를 섞어쓰면서 약간의 대화를 했던게 감정의 교류가 되었나보다. 

꽤나 먼 거리까지 배웅해준 주인아주머니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2018. 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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