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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8, 일본, 가고시마

그곳엔 기준이 있다. #1 이러다 귀신 보는거 아니야?

by 지구별 여행가 2018. 5. 22.

아주 잠시, 찰나의 시간만 꾸벅 졸면 도착하는 가고시마에 도착했다. 

공항의 입국심사소는 그 어떤 공항과 비교해도 작았다. 근래 많은 한국인들이 방문하는지 곳곳에는 한국어 표지판이 잘 정돈되어있었으며, 여권 심사 및 지문인식을 도와주는 할머니는 약간의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오니 시내로 가는 버스가 정차중이었다. 

줄이 긴 유인창구를 피해 무인자판기를 이용하려했지만 사용방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젠틀한 할아버지가 웃으며 유인창구에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의 도움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노인 일자리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해결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륜에서 뭍어져나오는 친절함은 사람을 기분좋게 만들었다.


대도시나 여행자 거리가 딱히 정해져있지 않은 나라를 여행할 때에는 간단하게 숙소를 알아보거나 예약하고 다녔다. 가고시마는 소도시였고 텐몬칸과 가고시마 중앙역에 숙소가 밀집되어있었기에 숙소 예약을 하지 않으려했지만, 숙소의 부족인지 여행객의 과잉인지 인터넷 숙소 예약 사이트 내의 객실이 전부 매진이라 급한 마음에 아주 저렴한 숙소 한 곳을 예약했다. '덴몬칸 공원'이라는 작은 숙소였는데 가격이 1,400엔이었다.



감은 참으로 무섭다. 미리 웰컴큐트패스를 구매하기위해 덴몬칸 길을 걸었는데, 느낌상 있을것 같은 곳을 향해 가니 정확히 도착했다. 숙소 역시 마찬가지였다. 간략한 지도를 본후 대충 따라가니 숙소가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가니 한국인 셋이 있었기에 짧은 인사를 하고 체크인을 하는 순간,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혔다.

숙소의 주인 아주머니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미리 예약한 종이를 보여주며 방을 달라고 했지만, 그녀는 계속 돈을 보여줬다. 지갑을 열어 돈을 냈다는 표현을 하니, 손사래를 치며 계속 돈을 보여줬다. 고작 15,000원이라도 돈은 돈이기에 두번 결제할수는 없었다. 한참을 실랑이 하는동안 어떤 남자가 슥 다가오더니 Finish란다. 뭐가 끝났다는건지 몰라 멀뚱거리니 엘레베이터를 잡아주며 올라가라했다. 

나는 지갑의 돈을 보여주면서 돈을 주려고 한게 '이미 돈을 냈다'라는 표현이었는데, 그녀는 내가 '돈을 내려고한다.'라 받아들인 듯하였다. 잠깐의 재밌는 실랑이를 지나쳐 엘레베이터에 올라탔다. 내 옆에 있던 한국인 3명에게도 '좋은 여행하세요'라는 말은 빼놓지 않았다.

사진보다는 몇배나 괜찮은 숙소였다. 큰 방에 3명씩 잤는데 와이파이 시설이 없었다. 그러나 진짜 안타까운 사실은 도미토리내에 샤워시설이 없었다. 고민끝에 하루만 묵고 다른 숙소로 옮기기로 했다.





시로야마에 올라 가고시마의 야경을 보는 것이 오늘 일정의 전부였다. 지도를 보니 대략 1키로미터정도의 거리였다. 길을 따라 걸으며 시로야마를 보니 산책길을 따라 등이 켜져있을만도 한데 어두컴컴했다. 야간에는 출입이 불가능한가 싶었지만, 관광객에게 야경을 보지 말라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계단 앞에 서니 길은 열려있었으나 등이 하나도 없었다. 나무에 둘러쌓여 칠흑같은 어둠이 감쌌다. 핸드폰 랜턴을 켜고 가도 약 5미터 앞이 보이지 않았다. 스산하게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에 나뭇잎이 칼춤을 추었다. 조금 무서웠다.

'추아악, 촤악' 바람소리가 강하게 불면 순간순간 뒤로 핸드폰 불빛을 비추었다. 누가 따라오는 듯 했다. 처음에는 귀신이 나올까 무서웠지만 나이가 먹으니 역시나 귀신보다는 사람이 무서웠다. 


순간 '사채꾼 우시지마'라는 만화책안에 별의별 일본 사이코 양아치들이 떠올랐다. 

'등산로 커브를 돌면 사이코 양아치 30명이 담배를 피고 있으면 어쩌지?'

'여기서는 양아치에게 둘러쌓이면 도망갈 곳도 없겠다. 돈달라면 다 줘야겠지?'

그러나 앞으로 가는 길은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등산로를 따라가니 저 멀리서 불빛 하나가 보였다. 얼핏보이는 실루엣으로는 남자와 여자였다. 일본인으로 봤는데 어쩌면 중국인 관광객이 아닐까 싶었다. 위에서 사람이 내려온다는 뜻은 적어도 이제부터 앞길에 아무런 위험요소가 없다는 뜻 아니겠는가. 걸음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래도 스산한 바람은 무서웠다. 



얼마나 걸었을까. 화장실이 보였다. 드디어 전망대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 무렵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다른 길을 통해서 전망대에 오고 있었다. 가이드가 껴있는 것을 보면 그룹투어인듯 했다. 다행이었다. 적어도 이 시간에 사람이 다닌다는 뜻이니. '다시 걸어내려가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기나길 길을 돌아 내려왔다. 도깨비에 홀려 길이 바뀌진 않았을까했지만, 그런일은 상상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갈림길에 있는 지도를 보니 올라온 길이 아닌 다른 지름길이 있는 듯하여 지도를 따라 내려오니 곧장 시내로 내려왔다. 마지막날 낮에 시로야마를 한 번 더 오를 생각이었으니 이 포인트를 잘 기억해두기로 했다.





괜찮은 식당을 찾아 헤메였다. 덴몬칸 주변에 식당은 많았지만 한끼 식사를 먹을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대부분 꼬치를 파는 술집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맥주집가서 골뱅이 무침을 저녁식사로 먹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나마 가격도 저렴하고 손님도 꽤 있는 라면집을 발견했다. 주인아주머니와 밖으로 나와 디스플레이 되어있는 라면 중에 하나를 고르고 자리에 앉으니, 텔레비전에서는 평창 올림픽이 한창이었다.

타이밍이 좋게도 우리나라 선수들의 쇼트트렉 경기가 진행중이었는데 갑자기 코너에서 넘어지면서 코스를 이탈했다. 잠시 라면먹기를 멈췄고, 주변의 일본인들도 텔레비전을 주시했다. 하지만 내 걱정보다 그녀들은 대단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라면을 다 먹고 주인아저씨 사진을 몇 장 찍으니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흐뭇한 미소로 주인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자주 와서 식사를 하는지 친근해보였다. 내가 생각하던 일본의 작은 라멘가게의 모습이었다.







덴몬칸 뒷편은 바들이 즐비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은 지나가는 손님들을 유혹했고, 일명 샤기컷을 한 호스트들이 호객했다. 근처 오락실에도 잠시 들렀다. 아는 게임이라도 있으면 할까 했지만, 초등학교 이후로 오락실을 가본적이 없는 나에게 그토록 화려한 오락실 게임은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두캔 사서 숙소의 1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공동공간이 따로 없었기에 편하게 앉아서 책을 볼만한 곳은 이 곳 밖에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주인내외는 세심하게 나를 배려해주었다. 맥주를 다 마시니 책의 반이 넘어가있는 상태였다. 내일 밤에도 읽을만큼의 분량을 남겨놓고 도미토리로 돌아갔다. 

한명의 외국인은 이미 잠자리에 들어선듯 신나게 코를 골면서 자고 있었고, 샤워시설이 없으니 간단한 세수로 몸에 붙어있던 피곤을 털어내고 나 역시 잠자리에 들었다.


2018. 0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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